요즈음 이상하리만치 의대를 선호하고 있다. 이공계의 학생들이 의대에 가려고 열중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아마도 의사들이 소득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늦은 나이까지도 일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완화되려면 다른 분야도 정년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면서 의학계도 과에 따른 차별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힘든 과, 즉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의사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반면 가장 앞으로 먼저 치고 나간 분야는 성형외과였다. 성형외과는 원래 미용 부분보다는 큰 수술 자국을 복원하거나 화상 환자의 흉터 치료가 주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미용 분야에 더 많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로 강남에 성형외과가 자리 잡으면서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될 정도로 번창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남의 주요 도로가에는 매 건물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보일 정도였고 심지어는 한 건물에 여러 성형외과가 들어섰다. 이에 따라 대학병원에서도 미용 성형만 담당하는 의사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 후 개업의 사이에 경쟁이 너무 심해져 부작용도 나타나게 됐다. 전문 분야가 아닌 의사들이 앞 다퉈 성형외과를 표방하기 시작했고, 성형을 했지만 부작용이 심해 그나마 자연스런 얼굴을 망쳐버리기도 했다. 연예계에서는 지망생에게 “이 부위, 저 부위를 성형하고 들어오라”고 지시하는 등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생겼다. 이어 의사들 사이에 심한 경쟁이 소위 성형 세일로 이어지더니 요즘은 다소 주춤한 상태다. 한 번은 아이의 심장병 때문에 수년간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던 아이의 엄마가 외래로 6개월 만에 찾아왔다. 아이가 먼저 “선생님” 하고 부르며 들어오는데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다. 듣고 보니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바뀐 이 아주머니를 비롯해, 성형수술 부작용에 고생을 하다가 우리 병원 성형외과 의사를 소개해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다음 성황을 이룬 게 안과였다. 라식 수술이 보편화되고 안경을 벗으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기 과의 선두를 달리게 됐다. 무분별하게 시행된 라식 수술은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커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이어 우리나라가 화장품 소비 대국(?)으로 부상하고 피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피부과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인기 3과’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의 앞 글자를 따서 ‘피안성’이라 부르고, 전공의 선택이 이 세 과로 몰렸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과들은 전공의 숫자를 채우기조차 힘들어졌다. 흉부외과의 경우는 유명 대학 병원에서도 전공의 지망생이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돈이면 다라는 생각이 만연하면서 예전의 소신에 따른 전공과 선택은 상실됐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생명 치료에 직접 관계되는 과들이 소외되면서 의료계가 크게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 의학의 본령이었던 산부인과-소아과-외과계가 천대받고 돈벌이 좋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또는 피부과-정신과-재활의학과로 쏠리는 흐름을 이대로 놔둘건가? 전공의 차별화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는데 요즘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 환자가 많아지고, 신체 재활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피안성에서 피정재(피부과-정신과-재활의학과)로 인기가 쏠리고 있다. 우리 의료계의 위기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흐름이다. 지난번 소말리아 납치 사건에서 총상을 입은 선장의 목숨을 구했던 의사들은 비인기과 소속이었다. 따라서 우리 의학이 계속 발전하려면 의료 시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개선책이라고 요즘 일부 과의 임금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건강보험 수가 자체를 높여야 한다. 우리의 앞날이 달려 있는 소아 진료나 수술을 담당하는 여러 과에서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현재의 시스템이라면 의료계의 후퇴는 불 보듯 뻔하다. 산소외(산부인과-소아과-외과계)가 한 몫을 할 날이 오길 기대한다. ‘수술 명의’의 수술법 “최고 수술을 받았다”며 환자는 감탄하지만… 지금은 일반 외과도 세부로 나뉘어져 같은 외과 의사라도 다른 외과 분야의 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공의 시절에는 각 분야를 다 돌며 배운다지만 전공의가 직접 집도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다보니 실제 공부와 실습은 전문의가 되면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분야만 다양해진 게 아니라 최근에는 내시경 수술, 로봇 수술 등 매우 다양한 기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30여 년 전에는 우리 병원도 외과가 세분화돼 있지 않았고 전문의 수도 많지 않았다. 우리가 외과에 학생 실습을 나가자 외과가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처럼 분야별이 아니고 세 분의 교수에 따라 구분된 것이다. 자연히 전공의도 주니어 스태프도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대내외적으로 이 세 분이 우리 병원, 아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과 의사로 인정을 받았으며, 자연히 많은 환자들이 이 세 분에게 수술을 받으려고 몰렸다. 우리가 수술방에 들어가면 오염을 시키지 않아야 하고 또 수술하는 장면을 잘 봐둬야 한다. 그런데 집도의 뒤에는 수술보조 간호사가 서고 앞에는 마취의사, 집도의사 옆과 앞에는 수술을 돕는 의사 세 분이 자리를 잡으니, 학생들이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약간 공간이 있다고 해도 수술 부위가 작고 깊은 경우가 많아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주 집도의를 제외하고 다른 의사와 간호사가 다 자리를 잡으면 집도의가 들어오면서 “준비 다 됐나? 그럼 시작하지. 자네가 열고 들어가” 하면서 수석 보조 의사에게 지시한다. 이렇게 수술이 시작되는데 대개 수술은 유명한 집도의가 직접 하지 않는다. 그는 수술방을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살피기만 하고 수술이 끝나면 환자가 깰 때 다가가 “수술이 잘 됐습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보호자를 불러 설명한다. 다른 업무가 많은 경우에는 마취 직전에 환자를 보고 수술이 끝난 뒤 수술방에 들어와서 수술복을 입고 손에 피를 문지른 뒤 보호자를 만나 “수술이 아주 잘 됐습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 한 명의 환자가 명외과 의사의 손을 거쳐 건강해진 순간이다. 집도의는 명의사의 칭호를 유지하고 그 밑의 의사는 수술을 잘 배우고…. 지금은 지나간 옛날이야기지만 지금의 명의들이 이렇게 탄생됐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외과 의사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