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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미국에서 수갑차고 횡재한 나

“손댔다”는 이유로 경찰은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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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7호 박현준⁄ 2012.03.26 11:42:08

1984년 소아 심장학을 공부하려고 미국 보스턴으로 갔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미국 생활을 시작하니 모든 일이 스트레스였다. 다행히 누나가 하버드 의대 교수로 있어서 집을 구하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두 딸을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입학시키는 일, 교장과의 면담 그리고 전화, 가스, 전기 연결하는 일들을 모두 전화로 해야 하는데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병원에 가서도 완전히 꿀 먹은 벙어리였다. 영어를 못한다고 피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들리지 않으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보스턴 지역 소아 심장학 컨퍼런스에서 환자에 대한 설명을 나보고 하란다. 지정된 환자의 차트를 보는데 왼손으로 흘겨 쓴 글씨를 알아볼 길이 없다. 과장 비서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하고 컨퍼런스 시간에 그대로 읽었는데 내 발음이 이상해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 다음 주부터는 인쇄를 해 나눠주고 읽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나 혼자 중고차 회사에서 자동차를 구입했는데(미국의 중고차 판매상들은 사기꾼 수준이다) 구입 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판매업소에 가져다주면 수리했다고 찾아가라지만 다시 고장이 나는 일이 반복됐다. 화가 난 나는 차를 팔았던 담당 직원을 찾아갔다. 사기 친 중고차 판매인의 어깨를 잡았더니 얼씨구, 그는 바닥에 나뒹굴고 출동한 미국 경찰은 사지를 벌리라더니 영화에서처럼 나를 경찰차에 밀어넣고… 그러나 그는 차를 팔 때와는 다른 태도로 고장 문제는 서비스 파트에 가라며 상대도 안 해줬다. 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려 해서 “당신이 차를 팔 때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어깨를 잡았는데 그가 넘어지고 말았다. 한 5분도 안 지났는데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 두 명이 다가오더니 두 발 벌리고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란다. 그리고 수갑이 채워지고 영화에서만 보던 경찰차 뒤에 밀어 넣어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말도 잘 안 통하는 미국에서 체포되다니…. 출발을 하면서 경찰관이 “어느 나라 사람이며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의사고 보스턴 아동병원에 공부하러 와 있는 한국인이라고 하자 그는 차를 세우면서 “삼촌이 한국전에 참전한 일이 있어 한국에 대해 들은 바가 많다”며 “그런데 당신은 미국 사회를 모르는 모양인데 미국의 프로팀 감독들은 화가 나도 뒷짐을 지고 언성만 높인다”고 했다. 손을 대면 폭행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그 경찰관은 “사기성이 많지만 중고차 판매상들에게 절대 손은 대지 말라”며 “처음이고 몰라서 한 일이니까 풀어준다”면서 돌아가라고 했다. 금방 다시 돌아온 나를 보고 놀라는 그 직원, 이번에는 친절하게 안내해서 차를 완전하게 수리받을 수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뒤차가 와서 부딪혔다. 보험회사에 가서 수리비를 책정 받았다. 그 당시 미국의 자동차 보험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보험회사가 지정하는 회사에 가서 수리하고 돈은 보험회사에서 직접 지불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험 회사로부터 내가 직접 비용을 받아 공장을 찾아가 수리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하고 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공장에 차를 맡겼다. 그런데 한 밤중에 전화가 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는데 뭔가 보험료 책정이 잘못됐다는 말, 그리고 다시 수정할 수 없겠냐는 내용 같았다. 나는 영어가 안 되니까 “노(N0)”만 연발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차를 맡겼던 공장에 가서 보험회사에서 준 수표를 보자고 하자 주인이 당황하면서 모든 수리는 물론 내부 정리와 외부 칠까지 다 해준단다. 나는 우선 수표를 보자고 우겼는데 수리비에 0이 하나 더 매겨져 있었다. 보험 회사의 착오였던 것이다. 보험회사에는 미안했지만 생전 처음 그리고 이국에서 수갑을 찼던 억울함이 상쇄되는 것 같았다. 미국, 도대체 얼마나 망가지려고… 작은 나라와 소수민족 무시하는 버릇부터 고쳐라 미국 오리건 주 유진에 당시 프로농구 팀의 최희암 감독과 함께 선수들을 보러 갔다가 유진공항에서 휴스턴행 비행기를 타게 된 일이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 안 됐기 때문에 보안 검색이 무척 심했다. 2차례에 걸쳐 보안 검색을 받고 탑승구에서 다시 한 번 검색을 받았다. 탑승구에 줄이 길게 서 있었고 표를 확인하고 들어가는 중에 무작위로 가끔 한 명씩 뽑아서 옆의 칸막이로 들어가 정밀 검색을 하는데 나도 그 중에 뽑혔다. 그런데 그 안에 4명이 있는데 나, 최희암 감독 그리고 70대의 남성 두 분까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나는 검색을 받고 나오면서 검색 대상자를 선택하는 여직원에게 “어째서 한국인만 검색을 하느냐? 대한민국이 테러리스트 국가냐?”며 항의했다. 그 여직원이 말을 못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이 나타나 자리를 옮기고 이유를 다시 물었다. 그 사이 비행기 탑승구는 닫혀 버리고 우리 둘만 남게 됐다. 잠시 후 공항 검색요원 중 다소 높은 듯한 사람이 나타나 “네가 항의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좋다. 내가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폭언을 한 것도 아니며, 단지 한국인만을 조사해서 그 이유를 물은 것인데 대답은 않고 이미 비행기를 보냈으니 그 사유서를 작성하고 사인을 하자. 나는 이 문제를 고소해야겠다”고 했다. 작은 공항이었으므로 잠시 후 공항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그냥 들어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는 인종차별이며 반드시 이 사건의 경위서를 서로 작성하자”고 했더니 그 공항장은 “당신 일행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휴스턴 공항에 도착하도록 해주겠다”며 나를 8인승 비행기에 태워 시애틀 공항으로 보내고 거기서 다시 휴스턴행 경비행기를 태워줘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공항에서 보안검색 하는데 한국인만 넷 정밀검색. “왜 그러냐”고 따졌더니 비행기도 못타게 감금시켜. “고소하겠다”고 하니, 소형비행기 태워 미국을 뱅뱅 돌게 만들고…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친구(대사 역임) 말이 “너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한 번은 미국에서 명사급 한국인이 보안 검색을 받다가 검색원이 주머니의 물건을 찢으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농담조로 “폭탄”이라고 말했다가 외교관임에도 불구하고 약 10일간 구속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러면서 “오리건 주에서 너 운이 좋았던 것이다. 미국 공항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못하는 일이 없다”고 말해줬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내세우지만 그들만의 자유민주주의인 듯하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31일 수권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말뿐이지 실제로는 미국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테러, 범죄의 의심이 있다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사살할 수도 있는 악법이라고 뉴욕타임스 등은 해설했다. 이대로라면 미국 내의 중동계 등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은 언제라도 협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 아닌가? 언젠가 미국 영화에서 선량한 중동계 사람이 테러를 잘 일으키는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죄 없이 구속당하고 고생을 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일이 있다. 미국이 어느 한 민족의 국가가 아니며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면 평등을 먼저 실천하고 소수민족과 작은 나라를 무시하는 태도 자체를 없애야 하지 않을까? 전에 미국 병사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을 때 응급실 직원들이 “가해자가 주한 미군”이라는 사실에 흥분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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