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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특집]“우리 몸에 ‘한옥 유전자’ 있잖아요?”

한옥식 대형건물 디자인 하는 건축가 김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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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8-269호 왕진오⁄ 2012.04.09 15:23:02

한옥(韓屋)은 이 땅의 살림집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옥을 모르는 한국인이 더 많다. 순수주의와 고정관념, 제도 등 때문에 한옥을 현대적으로 변형, 적용하는 데 소극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옥은 거주보다는 관조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전통 속에만 머무는 화석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한옥의 현대적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옥 공간의 특징을 살린 디자인이 현실에 적용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예전처럼 전통 방식의 한옥을 짓는 게 아니라 현대 도시 생활에 맞춘 다양한 한옥 디자인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용미는 한옥 구조를 이용해 공공을 위한 대규모 시설을 설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축가다. 살림집인 원서동 주택에서 공연장, 전시관, 연회장, 휴양 시설 등 대형 공공시설로 규모를 확대해 가는 김용미 건축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여태까지 자신의 행보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목재 공학과 조립 방식, 그리고 저에너지 공학 한옥 등을 선보였다. 그는 2003년 순천 선암사 전통 야생차 문화 체험관을 시작으로 한옥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어 지하의 현대식 문화 시설과 지상의 전통 한옥 목구조를 결합시킨 서울 남산국악당과 전라남도 해남의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각각 2009년과 201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그는 독립적 한옥들이 병렬, 직렬, 직교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경남 지역 한옥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김해 한옥생활체험관을 설계했고, 세종시 국무총리공관과 돈화문 프로젝트 현상설계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김용미 건축가는 첨단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한옥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대규모 공간으로 확장했으며, 전통 한옥의 단점을 보완했다. 목재 수축에 의한 하자 발생을 차단하고, 대규모 공간 건립을 가능케 하는 공학 목재를 사용했다.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는 조립 방식도 채택했다. 또한 고단열-고기밀 벽체와 유리를 한식 창호와 결합한 ‘고기밀 창호’는 저에너지 사용 한옥을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높고 낮은 지붕이 겹겹이 중첩되면서 조형미를 만들어내면서, 단층 한옥의 한계를 극복하는 중층 한옥 모델도 제시했다. “우연히 한옥 설계 맡아 막막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거예요. 내 속에 감춰진 한옥의 추억이랄까, 유전자에 깜짝 놀랐어요” 그는 “한옥 설계를 처음 할 때는 참으로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설계를 하다 보니 마치 전에 수없이 해 왔던 일처럼 자연스럽고 힘들지 않게 술술 풀려 가는 것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경험은 어쩌면 수천 년간 거주했던 한옥의 추억 또는 유전자가 한국인의 마음에 이미 내재돼 있는 증거일지 모른다. 김해 한옥체험관을 비롯해 남산 한옥마을 안에 있는 국악공연장, 해남 윤선도 고택 바로 아래 세워진 전시관 등 한옥 설계를 거듭할수록 그는 한옥의 멋에 빠져 들었다. 그는 “한옥과 현대 건축을 접목하는 건물, 혹은 우리 정체성이 살아 있는 현대 건축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이 나의 소명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서양 건축은 대상에 집중해 형태를 만드는 것을 중히 여기는 반면 한옥에서 중요한 것은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비어 있는 공간이다. 한옥에서 건물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건물과 건물, 건물과 담장이 서로 물리면서 공간을 만들어낸다. 한옥에서 바깥의 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사랑채와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다. 그 외의 방에서도 문을 열면 각기 다른 마당의 모습이 보인다. 가까운 공간만 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먼 공간을 보게 하는 각도도 있다. 여는 곳마다 다른 공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이런 다양한 공간 구성이 한옥의 멋이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한옥은 정말 다양한 시점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질이 달라진다. 마음이 풍부해진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주택이라 하더라도 한옥만큼 그렇게 다양할까 싶다”는 게 김 건축가의 말이다. 한옥은 멀리서 바라볼 때는 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들어가서 보면 느낌이 다르다. 무엇보다 누마루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비어 있는 방에서 책을 보다가 열려 있는 문 밖을 무심히 내다볼 때 “어! 내가 이런 공간에 있었나” 하고 놀랄 수 있는 그것이 바로 한옥의 맛이다. 사실 도시 한옥, 한옥의 변화라는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한옥이라면 우리는 대개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한옥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옥 구조는 근대화 시기를 지나면서 형태나 구조가 많이 변형된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한옥의 변형을 허용하지 않았던 70~90년대를 지나 서서히 현대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한옥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로 분위기가 형성된 지금, 이제는 한옥이 지속가능한 건축으로서 계속 이어져가기 위해서는 현대 도시에 맞게끔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김 건축가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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