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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문화 칼럼]미술관장과 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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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0호 박현준⁄ 2012.04.16 11:34:27

미술관장과 껌의 공통점은 무얼까? 단물이 빠지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이라는 사실이다. 미술 동네에서 일회용 관장이나 학예연구실장들의 이런 처지는 낯선 일이 아니다. 관장이란 미술관의 최고경영자인 동시에 작품의 수집과 보존, 교육, 전시 등 미술관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학예연구실장은 미술관의 학술적 연구 활동을 총괄한다. 따라서 미술관의 관장이나 학예연구실장의 역할과 성향 그리고 미학적 태도 등에 따라 미술관의 성격이 결정된다. '현대미술의 보고'라고 일컫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7세에 MoMA 초대관장으로 임명돼 1943년까지 15년간 일한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1902~1981년)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도 단순하게 발전소를 개조해 명소가 된 게 아니라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은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1946년생, 재임 기간 1988~2011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워커아트센터엔 1991~2007년 재직한 캐시 할브레이시(Kathy Halbreich) 관장이 있었고, 구겐하임의 토마스 크렌즈(Thomas Krens)도 1988년 취임 이후 2008년까지 무려 20년간 구겐하임의 글로벌 프로젝트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의 얀 후트(Jan Hoet, 1936년생)도 1975년부터 2003년까지 28년간 관장으로 근무하면서 겐트를 현대미술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부침은 미술관장들의 재직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술관의 성패가 관장의 성격과 열정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모든 관장들의 임기가 1~3년을 넘기지 못한다. 규정상 5년 이상 연임할 수 없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실험과 시행착오의 계속이다. 더구나 우리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인색했던 탓에 미술관장으로서 경영이나 미술사적인 지식, 미학적 관점을 제대로 갖춘 관장 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임기가 너무 짧다보니 중장기 발전 계획은 물론 적어도 5년마다 갱신하게 되어 있는 작품 수집계획을 수립-실행할 기회조차 없다. 용빼는 재주를 갖춘 관장이라 할지라도 그 능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구조여서 하루살이 ‘전직’만 양산하는 중이다.

미술관 업무란 적어도 1~3년 전부터 연구하고 준비해 실현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그런데 1, 2년 남짓한 임기라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예산이나 인력도 제대로 뒷받침 되지 않아 미술관장들은 무능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최대한 자신의 인맥을 통해 작품을 대여해오고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협찬이나 후원을 구해온다. 그도 저도 어려울 경우 자신의 돈을 써가면서 일한다. 미술관 살리려면 관장이 장기 프로젝트 진행해야 하는데 “기가 너무 세다” 등의 말 안되는 이유로 1, 2년 만에 관장 갈아치우면 미술관 발전 가능할까 사정은 이렇지만 지역 작가들 중에는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그룹전시가 아닐 경우 “지역 작가를 홀대한다”며 관장을 비난하기도 한다. 여기에 미술관을 지휘-감독(?)하는 문화예술계장이나 과장과의 견해차이라도 생길라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필자도 책임운영기관에 반대하며 법인화 도입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미술관에 남았을 터이다). 그래서 미술관장은 시민보다 미술인과 공무원 신분의 계장, 과장을 더 잘 모셔야한다.

게다가 그 지역 출신이 아닐 경우 더더욱 불리해서 천애의 고아나 다름없다. 언제 어디서 해임의 칼날이 날아들지 모른다. 이는 학예연구실장도 마찬가지다. 자기 동네에 근거를 둔 야구팀 외국 선수는 용인하면서 타 지역 사람이 우리 지역 미술관장을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고 다문화, 관용을 입에 올린다. 얼마나 후안무치한 일인가. 얼마 전 세계육상대회를 개최했던 도시에서 어렵사리 미술관을 개관시켜 나름의 성격을 구축하기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계약만료를 선언하는 로컬리즘의 전형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좋다. 해직도, 파면도, 계약만료도 좋다. 하지만 유능한 미술관 전문 인력을 내쳐놓곤 변명삼아 하는 말이 더욱 가관이다. 세 살 박이 아이도 아는 해직 사유를 “관장의 기가 세다”거나 독선, 근태, 소통부재, 실력부족 등으로 둘러댄다. 해임 사유에 자신들의 기분 또는 지역작가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경우 석연치 않은 이런 해명성 뒷담화(?)는 더더욱 세다. 그러고 보면 미술관장은 껌보다도 못한 신세다. 껌은 씹고 난 후 싸서라도 버리지만 미술관장은 해임 당한 뒤 해임을 변명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또 한 번 밟히기 때문이다. - 정준모 문화정책·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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