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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한 사람에게 2표를 주면 선거가 이렇게 달라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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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3호 박현준⁄ 2012.05.07 12:59:17

미국의 코리아타운 중 10여 곳에는 한인회장이 2명씩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각종 선거를 건국 때부터 봐왔다. 그런데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신흥경제국인 지금까지도 선거다운 선거를 본 일이 없다. 60, 70년대의 부정 선거만 없어지고 나머지 행태는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부정한 돈을 주고받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비방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실행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밑져야 본전’ 식의 행태다. 우리나라의 선거에서 더 큰 병폐는 파당을 만드는 것이다. 이조 시대의 노론과 소론, 남인과 북인 식의 파벌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한국 선거에선 유독 이를 부추긴다. 고등학교, 대학, 동문을 따지고, 고향을 중요시해 지방간의 갈등을 부추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 대목이 절실히 생각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도 총장, 학장을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지금도 우리 대학병원에서는 학장과 의료원장을 선거로 선출한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의사들은 개성과 자만심이 매우 강하다. 이 속에서의 선거도 규모만 작았지 정치인의 선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출신 고등학교가 같은 의사들은 함께 뭉친다. 웃기는 일은 동창을 늘리기 위해 중학교 출신을 명예 고등학교 동창으로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의과대학 때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 평준화 전이라서 몇몇 고등학교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선거 때면 동창생 숫자가 많았던 2개 고등학교가 서로 맞서고, 나처럼 사립 고등학교 출신들은 양쪽의 교섭 대상에 머무른 채 두 고교 출신 중 한 명이 당선되곤 했다. 자기 편 챙기느라 편갈이하는 선거판에서 여기도 찍고 저기도 찍게 1인당 2표씩을 주니 선거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3학년이 돼 선거를 앞에 뒀을 때 나는 위와 같은 선거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한 사람이 두 표씩을 행사할 것을 제의해 수용됐다. 그러자 학생 수가 많았던 A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은 A고등학교 출신을 찍고, 우리가 내세운 후보도 찍었다. B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당연히 A고교도 아니고 B고교 출신도 아닌 우리가 내세운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의 병폐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의사들은 모두 똑똑해(?) 자신도 의료원장, 병원장이 될 자격이 있는데 안 시켜 줘서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만 보다가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제까지는 수술만 하던 의사가 갑자기 수장이 돼서 수많은 직원을 거느리며 경영을 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 큰 병원이 무리 없이 잘 굴러가는 게 불가사의하다”고…. 문제는 경영만이 아니다. 파벌이 생기고 반목이 생기는 등 선거의 이런 병폐는 환자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과 협진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기생충과 함께 사는 인생 바짓가랑이 사이에서 편충이 떨어지고…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생충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몸 속의 기생충 또한 우리 몸의 장기에 붙어서 인간의 영양분을 빼앗아 살아가고 번식한다. 이 기생충이 얼마나 많았으면 의과대학에 기생충을 연구하는 기생학 교실이 있을 정도다. 내가 어렸을 때 아마도 우리 국민 전체가 기생충 한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처음에는 검사도 없이 기생충 약을 모두에게 나눠줬다. 약을 먹고 나면 배가 뒤틀리듯 아프고 변과 함께 죽은 기생충들이 나왔다. 그 당시 야채, 과일 등 밭에서 수확하는 먹을거리들은 물론 돼지까지도 인분으로 키웠기 때문에, 기생충은 아무리 약을 써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 뒤 여러 기생충이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정기적으로 대변검사를 하고 종류에 따라서 약을 줬다. 약을 먹기 싫어서 버리는 학생들이 있으니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먹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해가 따뜻하게 비치는 마루에 앉아서 놀고 있는데 항문 근처가 가려워서 만지니 뭔가가 손가락에 잡혔다. 잡아서 끌어내보니 긴 회충이었다.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흰 조각들이 신발 옆으로 떨어지는데 이것은 편충이었다. 매우 증상이 심한 경우 기생충이 간 속까지 파고 들어갔던 경우, 또 뇌 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뇌 질환을 일으킨 경우도 봤다. 지금 환갑을 넘은 분들은 기생충에 대해 여러 에피소드를 경험하기도 했고 들은 적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끔찍한 기생충 사건이 있다. 강원도의 한 병원에 파견 나가 있을 당시 50대 부인이 내원했다. 얼마 전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최근에 와서는 배가 불러지면서 소화도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복부 진찰을 해봤지만 원인을 잘 알 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CT나 MRI 등이 없었으므로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했다. 어쨌든 장폐쇄 증상이 있어서 응급 수술을 결정했다. 배를 열고 들어가자 수술을 많이 해본 집도의, 간호사, 마취의사 등도 모두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를 질렀다. 장이 온통 회충 천지고, 복벽이고 심지어는 간에까지도 파고들고 있었다. 가능한대로 모두 빼낸 회충의 수가 어림잡아 3000여 마리! 우글거리는 회충의 무리는 몸이 떨릴 정도로 징그러웠으며 그 후 한동안 눈에 선해 밥맛도 없었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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