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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의 보석과 사랑]‘정복 못할 돌’ 다이아몬드에 여성들은 왜 쉽게 정복당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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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4호 박현준⁄ 2012.05.14 11:02:57

아름다움, 권력, 그리고 영감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영원한 사랑의 징표 다이아몬드. 옛날부터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인공이다. 다이아몬드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우리의 원초적 감정인 욕망, 정열, 로맨스, 사랑을 불러일으킬까?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은 ‘정복할 수 없다’ 는 뜻의 그리스어인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는 신의 눈물이다. 로마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수세기 동안 고대인들에게 다이아몬드는 부적으로 쓰였고, 처음 보석 용도로 사용된 다이아몬드는 연마되지 않은 상태로 헝가리 여왕의 왕관에 부착됐다. 그리고 1400년대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이 보석으로 사용할 다이아몬드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한 이후 ‘왕의 보석’이 됐다. 이후 사랑의 징표인 다이아몬드가 박힌 약혼 반지는 귀족들과 상류사회에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 기준, 4C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업체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의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입한 기준이 4가지 요소, 즉 4C(커트, 컬러, 캐럿, 투명도)다. 이어 이 기준을 전 세계의 유명 다이아몬드 회사가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잘 모르는 여자들은 다이아몬드의 크기에만 관심을 갖지만 사실 4C를 다 만족시켜야 좋은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다. 5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을 만큼 5월은 연중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달이다. 결혼에 계절이 어디 있겠냐만은…. 따뜻해지는 기온과 함께 이때가 되면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주얼리숍을 찾는 모습을 본다. 적은 비용이 아닌 만큼 여러 곳을 들러 꼼꼼하게 비교분석 하고 상담을 하는 바람이 어느덧 웬만한 전문가가 돼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예물 패턴은 진주, 다이아몬드, 루비 또는 사파이어 등을 몇 세트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이아몬드로만 간소히 마치는 추세이다. 그런 만큼 크기나 양의 문제 보다 좀 더 나은 질을 따지며 구매할 필요가 있지만, 역시 여자의 마음은 질 좋으면서도 큰 것을 찾기 십상이다.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를 주는 이유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결혼 반지로 철이나 구리로 만든 반지를 주었다고 한다. 당시 신랑이 신부에게만 주었는데, 이는 결혼의 의미보다 귀속의 의미가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이아몬드 결혼 반지의 역사는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이 버건디의 메리에게 결혼 신청을 하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때 대공은 메리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줬는데, 이는 ‘사랑의 혈관은 심장에서 곧장 손의 가장 높은 곳, 즉 셋째 손가락으로 통한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믿음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는 왼손 넷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전통으로 바뀌었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친한 친구!’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 할리우드의 전설이 된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 밤에 어떤 옷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No 5 향수를 입는다”는 기상천외한 대답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낳았던 전설적인 여배우였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 벌써 50주년이 됐지만 그녀를 향한 뜨거운 관심은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전 세계가 사랑한 마릴린 먼로의 비밀 로맨스를 다른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 지난 2월 개봉했다. 떠오르는 할리우드의 아이콘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먼로로 깜짝 변신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영화는 먼로의 대표작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의 명장면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친한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 무대를 재현했다. 핑크색 드레스와 화려한 다이아몬드, 웨이브 헤어, 뇌쇄적이면서 깜찍한 손짓과 표정까지 완벽 재현해 뜨거운 찬사를 받은 장면이다.

유혹하는 남성들을 먼로는 ‘안 돼’ 한마디로 쫓아버린다. 그러나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남성들에게 그녀는 “하지만, 난 보석이 좋아. 사람들 모두 나이가 들면 매력을 잃지만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어.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야”라고 외치고, 티파니, 카르티에, 블랙스타, 르햄, 해리윈스턴 등 명성이 자자한 보석 브랜드 이름들이 허공을 날라 다닌다. 치명적 여인을 거부할 수 없도록 유혹하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끊임없이 구애해도 허락하지 않는 그녀가 있다면 오늘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주며 고백해 보는 건 어떨까?

보석을 사랑한 먼로, 그녀를 그린 워홀 언젠가 미술 전시회에서 앤디 워홀이 그린 먼로의 초상화를 감상했다. 워홀은 왜 그토록 많은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렸을까. 워홀은 유년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았고 회복 기간 동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앤디는 영화배우들에게 매혹됐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뉴욕을 향해 떠났다. 그는 갤러리 대표들을 쫓아다니는 대신 돈벌이가 되는 상업미술에 전념하면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장악하던 당시 미술계에서 자기만의 화풍을 찾았다. 1963년 먼로가 죽자 그녀의 열성팬이었던 그는 물감 대신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스물세 점의 초상화 연작을 창조했다. 명성의 대한 존경과 비평을 동시에 담아낸 초상화였다. 뉴욕의 미술계에는 곧 팝아트가 판을 쳤고 어떤 팝아티스트도 워홀보다 유명할 수는 없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여자들, 게이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가 하면 꾸준히 자신을 언론에 노출시키기 위해 홍보 담당자를 고용하는 등 명성을 갈고 닦아 ‘앤디 워홀’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총상으로 인한 후유증과 재수술 실패로 인해 세상을 떠난 그였지만 그의 이런 혁신적인 작품들은 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관 위에 친구들은 그가 공동 창간한 ‘인터뷰’라는 잡지 한 권과 에스티 로더의 ‘뷰티풀(Beautiful)’ 향수 한 병을 얹어 주었다. - 조윤정 블루 서울아트컴퍼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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