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5호 박현준⁄ 2012.05.21 11:19:29
예로부터 재능이 너무 다방면으로 많은 사람은 잘 살지를 못하고 또 비교적 단명한다는 말이 있다. 즉 미인박명이다. 나의 친척 중 한 분은 정말 재능이 많았다. 글을 잘 써서 현수막을 쓰는 직업도 가졌었고, 영화 간판을 그렸으며 양복점을 경영한 일도 있었다. 바둑과 장기도 고수여서 나는 ‘그 분도 못하는 게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항상 쪼들리는 살림을 했고 급기야는 환갑 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사기 치는 수법도 고수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도 타고난다고 말이 있다. 사회 각층 어느 분야에나 사기꾼은 있다. 의사 중에 만난 사기꾼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의 돈을 떼어 먹었고 인턴을 하면서는 끝날 때 회식을 한다고 돈을 걷어서는 가로챈 적도 있다. 이 친구와 학생 시절부터 사귄 간호사는 결혼 신고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먼저 건너가 생활비를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웬걸, 이 녀석은 그새 다른 여자와 사귄다는 소문이 났다. 미국에 있던 ‘기혼’ 간호사가 귀국하자 그는 “너와 언제 결혼신고를 했느냐”며 시침을 딱 뗐다. 여자가 “치사한 자식”이라며 미국으로 돌아간 후 이 친구는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 간호사들이 벼르고 결혼식장으로 쳐들어갔지만 아뿔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식장 앞에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양가의 사정으로 결혼식을 연기합니다”라고. 항의시위를 예상하고 작전을 썼으니 이 정도면 가히 귀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회식비를 거둬 착복하는 등 사기꾼 기질을 발휘하던 그 의사는 간호사와 결혼하고 돈까지 받아쓰다가 다른 여자와 몰래결혼식 올리면서 양동작전을 펼쳤으니… 사람인 이상 사귀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요사이는 신혼여행 갔다가 돌아오면서 공항에서 바로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사기는 아니다. 사기를 잘 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그 재주(?)를 발휘하는 것 같다.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기에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진해서 그런지 뻔한 사기에 잘도 넘어간다. “자본을 대면 1년 사이에 3배를 벌게 해준다” “반값에 판다” “이 약은 만병통치다” 등등…. 요즈음은 전화사기도 극성이다. 한 번은 전화가 왔는데 “선생님이 300만 원 상당의 경품에 당첨됐다”고 한다. 나는 “인심 참 좋네. 나는 필요 없으니 당신이나 가지구려” 하니 욕설을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물론 남녀 간의 관계는 이런 사건과는 좀 다르다.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는 말대로 쉽게 변하고 바뀌는 점은 이해도 된다. 그러나 결혼식조차 연기할 정도로 사기를 칠 수 있다니…. 유난히 친절한 ‘미끼 진료’ 주의보 “소개로 왔으니 돈 안 받겠다”던 한의사가… 미끼라는 말은 사전에서 ‘낚시를 하기 위한 밥’ 또는 ‘남을 꿰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요즈음 대형마트에서 미끼를 던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한 가지 물건을 아주 염가에 팔면 온 김에 다른 상품도 사가지고 가게 된다니 미끼 상품이라는 것이다. 또 어느 물건을 사면 다른 상품을 덤으로 준다든가 하는 것도 요즘 많이 쓰이는 상술이다. 병원에서도 미끼를 쓰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반값에 해준다고 선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쌍꺼풀 상담을 하면서 “코만 조금 높으면 정말 미인이 될 텐데…”라고 하면 대부분 추가 수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병원이기는 하지만 건강 진단을 한 뒤 검사치가 표준오차 범위 내인데도 이를 확인한다며 비싼 검사를 권유하는 경우도 이런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중년 여성이 한의원에 갔다. 항상 피로감이 있는 것 같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았다. 진맥을 한 뒤 약을 지어주면서 한의사는 “아는 사람 소개로 왔고, 또 처음이니 돈을 안 받겠다”면서 자주 이용해 주기나 하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어 그는 “만성 피로가 되면 안 좋으니까 무슨 원인인지를 알고 대처해야 한다”며 상담을 시작했다. 여자가 “남편도 기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자 한의사는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정의 기둥이 허약해지면 가족들이 피곤해진다”는 다른 환자들의 예를 들면서 “남편의 피로감 회복, 정력 회복을 위해 약을 지어주니 많은 효과를 봤다”는 얘기를 해줬다는 것이다. 사실 40대 중반 이상의 남성이라면 어느 직종에 종사하든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부인, 결국 남편을 위한 약들을 부탁하게 됐고 몇 가지 약을 받았다. 한의사는 “특수 약제여서 비싸다”고 했지만 여자는 무료 치료를 해 준 것이 고맙기도 했고, 남편의 문제까지 해결해 준다니 마다할 수가 없었다. 결국 미끼를 덥석 물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머리가 비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미끼가 좋다지만 건강을 담보로 잡는 ‘미끼 진료’는 이제 없어졌으면 좋겠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