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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소통 안 되니 치료가 될 리가…

말 잘해야 하는 건 정치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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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6호 박현준⁄ 2012.05.29 11:22:22

의사들이 환자를 보는 태도는 그 사람의 성격, 근무 장소 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권위 의식이 강하고 다소 고압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젊은 시절 같은 길을 걸었으니까. 또 환자가 많은 의사는 자신이 유명해 환자들이 몰리는 것으로 착각하며 자랑하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 우리 병원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외래 환자의 진료 예약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던 선배 의사 한 분이 외부 개인 병원으로 나가면서 내게 한 마디 왈 “내가 나가면 환자가 줄어서 타격을 입을 거야.” 그러나 환자 수가 줄어든 건 잠시뿐이었다. 한두 달이 지나자 다시 환자수가 많아졌다. 착각은 자유지요. 개인 종합 병원에서는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에게 그에 따른 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니 의사들도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모 개인 종합 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유난히 환자가 많았던 내과 의사 한 분의 비결이 있다. 병원 복도에서 환자가 인사를 하면 그는 반드시 “아, 000이시죠. 작년에 3층에 입원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으십니까?”라고 묻는다. 어떻게 기억력이 저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하고 부러워했는데 알고 보니 이 의사 분, 방에 혼자 있을 때는 환자의 얼굴부터 상세 자료를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출생률이 크게 떨어져서 소아 환자가 적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소아과가 그래도 인기 과였다. 지방 도시의 선배가 학회 참석 관계로 한 2주 동안 자리를 비워 내가 대신 진료를 맡은 적이 있었다. 첫날 아침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해 한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사무장이 “잠시 쉬면서 커피나 한 잔 하시죠”라고 한다. 커피를 들고 대기실로 나갔더니 벌어진 광경! 환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황당해 하는 나를 보고 사무장이 “저희 식을 따르면 된다”고 한다. 의자를 옆으로 3개를 놓고 환자를 보는데, 한 명에 1분씩이다. 끝나면 옆에 바퀴 달린 의자가 자동으로 앞으로 온다. 왜 이렇게 환자가 많았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보다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병원 수는 매우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지역적 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목 좋고, 배후 인구 많아야 하지만… 개인 병원을 개업하는 데도 몇 가지 유의 사항이 있었다. 목이 좋아야 하고, 해당 과의 환자가 많은 곳이었다. 소아과라면 신혼부부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 최고였다. 이런 조건 다음에는 의사의 태도와 말솜씨가 환자 숫자를 좌우했다. 한 번은 우리 과 주임교수가 김 모 군이 강남에서 개업을 했는데 환자가 없다니 자네가 가보고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점심을 약속해 놓고 조금 일찍 병원에 가서 지켜보는데 환자의 어머니가 들어와서 “선생님. 아이가 설사랑 감기가 심해서 왔는데요”라고 한다. 김 원장이 “예” 하고 진찰을 하고 처방을 쓰는 듯한데 애기 엄마가 다시 묻는다. “괜찮을까요?” 그러자 다시 “예” 하고 답한다. 그러자 엄마가 “나쁜 병은 아닌가요?” 하자 다시 “아니요” 하면서 처방전을 내민다. 예, 아니요 두 마디가 그가 하는 말의 전부였다. 다른 소아과에서는 “아기가 엄마를 닮았네요”라든지 “애가 장군감”이라며 보호자의 비위를 맞추는데 예, 아니오가 다라면 누가 이 병원에 다시 오고 싶었겠는가. 필리핀 캐디 데리고 찾아간 의사 “5년밖에 못 산다”고 날벼락 오진을 내리더니… 2011년 겨울 필리핀 가가이안데오로에 10일 여정으로 골프를 치러 다녀왔다. 필리핀의 남부 미다나오 섬에 위치한 곳인데 기온은 28~30도 안팎으로 마닐라보다 기온이 낮고 저녁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남아에서는 흔치않게 기후가 좋은 곳이다. 이곳에 선배와 함께 골프를 치던 중 22세 정도의 캐디로부터 “18살에 결혼해 벌써 두 딸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은 바나나 공장에서 일하고 자신은 골프장 캐디로, 아기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돌봐준다고 한다. 필리핀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지만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영어가 매우 서툴고 발음도 매우 이상하다. 그런데 이 캐디는 고등학교까지 다녀서 영어로 대화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도 이곳이 좋아서 가끔 찾는데 그 캐디는 이 골프장 회원인 선배의 전속 캐디로 작년부터 낯이 익었다. 캐디라고 해도 하루벌이가 400페소(우리 돈 9000원) 정도에 불과하고, 매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필리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은 마닐라, 세부 등이다. 다녀온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아주 커서 못 사는 사람들의 환경이 얼마나 나쁜지를 봐서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가가이안데오로는 훨씬 낙후된 지역으로, 대부분의 서민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1960년대 청계천변의 판자촌보다도 못한 곳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2~3주 전에 태풍이 덮쳐서 10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의료 수준도 마닐라 등 대도시의 종합병원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나 이곳은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대도시로 가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낸다. “누가 이런 엉터리 진단했느냐”고 호통 우연히 이야기하다가 내가 소아심장학 의사라는 것을 안 그녀는 이번 겨울에 내가 그곳에 가서 다시 만나니 “여동생이 19살인데 심장판막 증세로 앞으로 한 5년 정도밖에 못산다고 하더라.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만으로는 정확한 병명, 정도 등을 알 길이 없어서 병원에서 찍은 가슴 사진과 심초음파 CD를 갖고 오게 했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수술을 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슴 사진과 심장초음과 결과를 본 결과, 태어날 때부터 심장판막의 이상이 있는 질환인데 그 정도가 매우 약한 것으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였다. 나의 소견 그리고 약물이나 수술치료도 필요 없다고 적어줬더니 며칠 뒤 의사에게 다녀온 그 캐디는 “담당의사가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견을 줬냐”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확신 없이 진단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환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그 의사를 방문했다. 나의 전공 직책과 이런 환자를 수없이 많이 봐왔음을 밝히고 의견을 교환한 뒤 함께 환자에게 설명을 해줬다. 나보다 10살 쯤 아래인 일반의는 처음엔 다소 당황하고 내 방문을 불쾌히 여겼으나 한 동안의 이야기 끝에 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오진을 인정했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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