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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눈먼 환자에게 백내장 수술을 하다니

한때 많이 떨어졌던 안과 의학, 지금은 큰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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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7호 박현준⁄ 2012.06.04 11:32:23

모든 의학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안과에 교수는 얼마 없었다. 그 시절 필자는 모 여대 교수 한 분이 뇌에 악성 종양이 있어서 제거를 한 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 안과를 다니게 주선해드린 적이 있었다. 한 1~2년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환자가 눈이 전혀 안 보인다고 하자 안과 의사는 백내장이라며 백내장 수술을 했다. 의사는 “수술 일주일 뒤에 안경을 맞추러 오시라”고 했다는데 그 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암흑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계신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으려니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실명의 원인을 모르는 상태로, 병으로 실명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채 백내장 수술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나도 10여 년 전 뉴질랜드에서 자외선 차단 안경 없이 빙하에 올라갔다가 눈에 문제가 생긴 일이 있었다. 귀국해서 바로 눈 감각이 이상해져 안과를 찾았더니 헤르페스 감염이란다. 한 10일간 치료를 받았는데 증세가 더욱 심해지더니 갑자기 눈에 통증이 오는 것이었다. 안과에서는 망막 박리증으로, 그 밑에 있는 삼차신경이 건드려져서 통증이 온 것이라며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통증은 계속됐다. 답답한 나는 빙하에 올라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뉴질랜드 안과 저널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때문에 뉴질랜드에는 나 같은 환자가 많다는 사실, 그리고 레이저로 수술 치료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주치의를 바꾼 뒤 레이저 치료를 몇 차례 받아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제 안과는 이비인후과 전문 병원으로, 여러 세부 분야로 나뉘어 젊은 의사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 내 전공인 소아 심장 분야도 지금 같으면 완쾌시킬 수 있는 아이들이 20여 년 전에는 많이 세상을 떠났다. 정부도, 의사도, 의학 발전에 함께 힘을 쏟아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시켜도 부족하다. 의사들이 무슨 돈을 많이 벌길래 대형병원들이 자꾸 생기냐고 비판하기 전에, 낙후된 기술 때문에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는 사람들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 못알아듣는다며 “녹음해 드릴까” 외친 의사 건강보험 수가도 문제지만 의사의 서비스 정신 실종도 큰일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서비스 정신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아침 일찍 물건을 사러 갔다가 그냥 나오면 주인으로부터 “아침부터 재수 없다”는 말을 들을까봐 오후에 상가를 들러보는 게 거의 상식이었다. 호텔이나 백화점에서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90도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았고, 작고 낡은 차를 타고 가면 차를 빨리 빼라고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내가 1980년대 일본에 있을 때 오사카의 모 백화점 10층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마침 찾는 물건이 없었다. 그러자 그 층 담당원이 나더러 따라오라고 한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밖으로 나와서 길 건너에 있는 백화점으로 가서 그 물건을 파는 곳까지 안내한 뒤 내가 찾는 물건임을 확인하자 “저희 백화점에 없어서 미안했다”며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때 ‘아! 이런 힘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구나’ 하고 절실히 느꼈다. 1980년대보다는 나아졌지만 지금도 한국의 서비스 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 필자의 누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분자 생물학교수를 한다. 꽤 유명한 의사인데도 늘 청바지, 운동화에 단발머리 차림으로 다닌다. 한국 영사관에 간단한 일을 처리하러 갔는데 영사관 직원이 “두고 가시면 연락드리겠다”며 퉁명스럽게 말하더란다. 할 수 없이 돌아서려는데 그 직원이 밖에까지 쫓아 나오면서 “00대 교수님이시죠? 진작 말씀해주셔야죠.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시면 바로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병원을 찾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도 크게 변해야 한다고 본다. 환자가 자세히 물어볼 시간을 안 줄뿐 아니라 두 번만 물으면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시골의 한 할머니를 모 과 외래에 접수시킨 일이 있었다. 상태를 알아보려고 그 외래에 들어서려는데 담당 의사의 말이 들린다.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못 알아들으시겠어요? 녹음해드릴까요?” 요즘엔 의사 한 사람이 많으면 한 나절에 150여 명씩 환자를 봐야 한다(의료보험 상 이 정도는 돼야 병원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므로 환자에게 설명해주는 간호사를 채용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그러나 환자가 돼보라. 그들은 담당의사에게 직접 설명을 들어야 안심이 되기 마련이다. 의사들의 태도도, 의료보험 수가도 모두 바꿔야 한다. 미국은 상담만 받아도 상담료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제도와 태도 모두 진화해야 한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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