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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안경에 연필 기둥’이면 감쪽같이 수업 잠

수업 오래하면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는 무지막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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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8호 박현준⁄ 2012.06.11 12:58:57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새벽에 농구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거의 졸곤 했다. 그것에서 유래됐는지는 몰라도 의과대학에 들어와서도 휴식시간에는 멀쩡하다가 수업만 시작되면 눈이 감겼으니…. 점심시간만 빼고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꼬박 강의가 계속되는데 어떤 교수는 열심히 가르친다고 10분밖에 안 되는 휴식시간까지 점령을 해버렸다. 그러니 나 같은 학생은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결국 벌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수들이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야단을 쳤고 심지어는 교실에 못 들어오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리적인 현상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 8시간씩 앉아 있으면서 졸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기는 했다만…. 나는 방법을 고안했다. 연필을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사이에 끼고 안경을 아래로 내리고 있으면 연필도 움직이지를 않고 안경의 테가 눈을 가리게 돼 조는지를 잘 모른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훗날 내가 교수가 돼 강의를 하는데 나의 수업시간이 점심식사 직후여서 가장 졸리는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졸 사람은 누워서 자라! 억지로 깨어 있는다고 머리에 들어가겠느냐”라고 말하곤 했다. “잘 사람은 누워 자”라니 오히려 말똥말똥 그런데 학생들 얘기가 자라고 하니까 오히려 잠이 안 오더란다. 또한 과거에는 슬라이드, 요즘은 파워포인트로 강의를 한다고 교실 불까지 꺼버리니 어두운 데서 편안히 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강의를 할 때 슬라이드나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교수가 되면 외국 학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미국 등에 가면 시차 때문에 낮에는 앉아만 있어도 졸음이 왔다. 한 번은 샌디에이고에서 초음파 학회가 있어 한국 교수들 20~30명이 참석했다. 2시간 강의였는데 이상한 소리에 잠 깨어 보니 옆자리 동료 교수가 코를 고는 소리였다. 어두운 가운데서 살펴보니 우리 일행 거의 모두가 엎드려 졸고 있었다. 아무튼 학생 시절 강의시간에 졸다보니 나는 필기를 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시대가 좋아져서 자료를 나눠주고 대대로 내려오는 강의록도 있고, 복사도 쉽게 되지만 당시는 달랐다. 시험이 가까워 오면 나는 노트를 빌려보곤 했는데 한 번은 강의 시간에 가장 앞에 앉아서 필기를 열심히 하는 친구의 노트를 빌렸다. 그런데 얼마나 자세히 썼는지 교수님의 숨소리까지 그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너무 깨알같이 자세히(?) 적어서 도통 무슨 소린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노트의 소유자에게 “네가 쓴 이 뜻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참 보고나서 자신도 모르겠단다. 정신없이 필기를 했는데 자신도 모른다니…. 그래서 다른 친구의 노트를 빌려봤는데 이 친구는 대충 제목만 적어 놓고서는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단다. 사람들의 성격이 각양각색이듯이 수업을 듣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람은 한 가지를 보면 10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의대 졸업 뒤 직장을 구하고 안정이 되는 50대 초반쯤 돼서 보니 수업시간의 필기 습관이 의사 생활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미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최근에 강의를 대폭 축소하고 책에 있는 것은 학생 각자가 공부하고 수업 시간에는 책에 없는 부분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만 강의한다. 하루 종일 강의를 하는 모습이 없어지는 현상이다. 수업시간이 많다고 유능한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학생들이 집중할 수 있게 하고 효율적인 실습제도를 도입-개선하면서, 앞으로 의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을 만들어 주는 게 기억에 남는 의대의 학창시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동기-동창들과 만나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모두가 본과 시절은 시험에 치이고, 기억도 안 나는 어려운 강의에 하루 종일 시달린 일 외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들 한다. 전문의가 돼서 보니 너무 쓸데없는 강의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는 의견통일이다. 의대생들의 시험 의예과 시절은 고등학교보다 더 수업 과목이 많았고 수업 시간도 길었다. 입학의 기쁨도 잠시일 뿐, 이공대학의 모든 과목은 물론이고 인문계까지 공부하라니…. 시험 때면 하루에 3과목씩 시험을 보는 게 예사였다. 당시 입학시험은 영어, 수학, 국어 그리고 자연과목, 화학, 물리 중 1과목을 택하는 제도였다. 자연히 고등학교 때 이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다보니 그렇지 않은 과목에 대해서는 기초가 거의 없었다. 우리 세대는 시험에 치여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공부가 부족했던 내게는 더욱 시험이 어려웠다. 매 시험마다 중간 이하 성적이어서, 힘들게 학점을 받는 것 자체에 감지덕지해야 했다. 중간시험 때로 기억하는데 화학공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수학시험을 보고 내게 하는 말이, “얼핏 들은 얘긴데 우리가 시험을 본 문제가 그대로 내일 너희 수학시험에 나온대”라는 것이었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그 시험 문제를 받았고 그것만 공부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 문제가 내일 그대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으니 공부해 보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무시했다. 다음날 수학시험 시간에 문제를 받은 순간! 순서까지도 같았다. 어제 거부하던 그 친구, 시험장에서 나를 보며 찡그리던 얼굴 표정 하고는….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던 예과를 통과하고 본과 퀴즈를 포함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매주 시험을 봤다. 특이했던 시험은 해부학이었다. 거의 책 한 권이 될 만한 문제 더미를 나눠주고 4시간 동안 감독도 없이 알아서 보는 시험이었다. 우리는 “이건 쉽다”고 시시덕거리며 좋아했지만 문제 숫자가 하도 많아 의논할 시간도 없었다. 대충대충 답을 하고 휴게실에 나와서 쉬면서 4시간을 때우는 것도 고역이었다. 100점 만점에 평균이 20점, 잘한 학생이나 못한 학생이나 그저 그런 부담 없는(?) 시험이었다. 3학년 초엔 임상과목을 주로 배웠다. 중간고사에서 정신과 시험지를 받아보니 약 200 문제가 전부 O, X로 답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43번, 내 뒤의 44번은 지금 미국에서 정신과를 전공하는 친구였다. 그는 당시 철학, 정신과 책을 많이 보고 있었고 정신과 과목은 단연 발군이었다. 나는 그에게 부탁했다. 만일 답이 O면 왼쪽 허리를, X면 오른쪽 허리를 볼펜으로 찔러 달라고. 모르는 문제라도 지나치지 말고 꼭 찔러줄 것을 당부했다. 시험을 보는 내내 양쪽 허리를 찔렸다. 200번이나. 그런데 문제는 시험 결과였다. 그 시험의 평균 점수가 40점 대였는데 나는 90점으로 1등, 나를 도와준 친구는 2등이었다. 아마도 그 친구가 나에게 정답을 찔러준 뒤 자기 답을 고친 게 틀린 것 같았다. 내가 처음으로 한 과목에서지만 재시험을 벗어남은 물론 1등까지 차지한 것이다. 다른 학생들보다 너무나 탁월한 점수를 받아 교수님이 우리 두 사람은 일으켜 세우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학기말 시험이었다. 또 O, X로 나올 리는 없고 보나마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일 텐데…. 고민 고민하다 알아보니 중간시험을 잘 봤기에 학기말 시험에 0점을 받아도 문제가 없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시험을 피해갔다. 부정행위까지 해서 1등을 했으니 즐겁기보다는 후회스러운 기억이다. 내가 쉽게 그리고 월등한 실력을 보인 시험은 한국과 미국에서 본 운전면허 시험뿐이었던 것 같다. 의대 학생 시절 정시, 재시, 3시 시험을 모두 패스 못하면 방학도 없이 2, 3번씩 시험을 보곤 했다. 이는 학생들을 괴롭혔을 뿐 학업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조교수가 돼 시험 담당을 맡았을 때 나는 재시험을 아예 없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사항만 충분히 발휘하고 성적을 위해 커닝 등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출석을 잘하고 큰 과오가 없는 학생은 낙제를 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일로 당시 추궁(?)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나는 의대 수업이 학생들에게 너무 전문적이고 과도한 지식을 요구했었다는, 그리고 그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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