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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새 여성 원내대변인 인터뷰 ②]민주통합당 이언주

‘18년 관록’ 골리앗을 한달만에 무너뜨린 ‘여자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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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8호 심원섭⁄ 2012.06.11 13:43:13

“변화를 열망한 유권자들의 승리였고, 저는 다만 그 변화에 불을 지핀 것뿐입니다.” 지난 4·11 총선 당시 공격적인 선거운동으로 ‘여성자객’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 이언주(40) 의원은 6월7일 오후 CNB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뒤늦게나마 당선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이 답변했다. 이 의원은 지난 3월 5일 경기 광명을에 민주당 후보로 전략공천 받은 뒤 불과 38일 만에 1994년 광명시장이 된 뒤 18년 동안 이 지역에서 3선 의원에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의 거물 정치인 전재희 전 의원을 무너뜨리는 쾌거를 이뤘다. “공천을 받고 우선 광명시 곳곳을 다니면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구도’가 좋다고 생각했다. 전재희 전 의원이 정치거물이기는 했지만 나이와 경력, 그리고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대비했을 때 전 전 의원이 못 가진 장점을 내가 가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1972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주로 기업 변호사로 일해 왔던 이 의원은 민주당의 전략공천으로 경기 광명을에 출마하기 직전까지 S-OIL 법무총괄 상무이사였다. 소위 국내 30대 기업 최연소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로 ‘잘나가는’ 유명 인사였다. 따라서 이 의원이 회사에 사표를 쓰고 19대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주변에서는 “보장된 앞날을 마다했다”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더욱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지역민들에게 진정성을 알렸다. “솔직히 전도양양한 대기업 임원직을 그만두는 데는 당연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길게 고민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민은 됐다. 사람들이 흔히 ‘정치 바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 역시 현실 정치에 뛰어든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생활 제약은 물론 생활여건도 열악해지지 않나.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보다는 외곽에서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활동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고민도 했다. 사실은 당의 영입제안을 받기 전부터 각종 스터디도 하고 경제개혁연대와 같은 시민단체 소속 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출마를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했다. 당선되더라도 이전 여건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의원이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박선숙 전 의원 그리고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 여성 정치인들의 제안과 격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으로서는 관록 있는 정치인에 맞설 전문직의 젊은 여성 후보가 필요했고 수소문 끝에 이언주 변호사가 자신들이 필요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엘리트로 보이는 이 의원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IMF 전부터 가세가 기울면서 결국 아버지 회사가 부도났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학습지 교사, 호프집 종업원 같은 일로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은 실컷 하고도 월급을 떼이는 힘든 경험도 겪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저도 원래는 99%에 포함이 돼 있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1%가 된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성장을 했다”며 “아주 밑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의 절실함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경제민주화 정책을 앞세운 데에는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며 “청년들의 취업·결혼 문제, 젊은 엄마들의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소기업을 지원해 대기업만 독식하는 경제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99%의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 부담을 줄이는 데 노력해서 대한민국의 희망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나 기획재정위원회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상임위에서 공정거래, 조세정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주통합당 이언주 원내대변인과의 일문일답이다. -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 여성 임원에서 신예 정치인으로 변신한 소감은? “고민이 많았다. 현실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보다는 그저 정치권 외곽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활동을 하는 게 나에게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결국 출마를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 문화 확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싶어 민주통합당 입당을 결심했다. 이제 앞만 보고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 19대 국회가 개원됐지만 공전되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국회가 젊은이들의 시대 감각과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19대 국회는 젊은 감각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젊은 문화를 불어넣어 변화된 국회를 만드는 데 한몫하고 싶다. 국회에 들어와 보니 귄위주의적인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국회의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면 우리 보좌진들도 굳이 정장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하기 편하고 활동적인 모습의 국회가 필요하지 형식적 귄위의 국회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의원 전용 출입구 같은 것부터 없애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문화를 바꾸어 나간다면 국민들과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국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정치 초년생으로는 드물게 원내대변인으로 발탁됐다. 당에서 이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어려운 지역에서 이기고 돌아왔고, 젊은 정치인이다 보니 당에서 높은 평가해주시는 것 같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지만 성실하게 배워나가고 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매일 언론과 만나면서 정치적인 감각을 단련한다고 생각하고, 원내대변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한다기보다 젊은 정치인으로서 착실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 실제로 활동해보니 어려움은 없는가? 그리고 고쳐야 될 부분이 있다면…. “어려움이라기보다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열심히 하고 싶은 의지가 더 생긴다. 대변인의 역할은 민주통합당이 국민들에게 수권 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원내의 정책과 의정 활동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노력 중이다. 또, 우리가 집권했을 때 보다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고쳐야할 것은 많겠지만, 한 마디 한 줄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 상대는 1994년 광명시장이 된 뒤로 18년 동안 3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등 줄곧 이 지역에서 경력을 쌓아온 거물이었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제가 평상시에도 자신감이 많다. 무모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믿었다. 원래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다. 오랫동안 지역을 닦아왔다고 해서 장점만 알려지는 게 아니다. 유권자들이 단점도 많이 알게 되고 따라서 팬도 많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파고들 수 있는 틈새라고 생각했다. 거물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는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완전히 차별화할 수 있고 거기에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고 지역에서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교하는 등 싸움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우리 내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많이 따라 붙었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략이라기보다 지역구를 돌며 유권자들과 접촉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다. 특별히 정치공학적인 전략을 세울 여유도 없었고 그런 기술적인 승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능한 많은 주민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여러 주제에 대해 속깊은 얘기를 주고받는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즐겼다.” - 남편의 외조가 절대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처음부터 찬성했는가.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제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염려를 많이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진짜 큰 힘이 됐다. 돌이켜 생각하면 남편의 지지와 지원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교수인 남편이 다행스럽게 연구년이어서 상대적으로 더 힘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나나 남편이나 전혀 새로운 영역이라 그저 성실하게 힘을 모아서 임하자는 자세였을 뿐이다.” - 정치를 해야겠다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 “외환위기 때 집안이 어려워졌다. IMF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났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가 잠적하시자 어머니가 보험외판원과 부업을 하면서 저와 두 동생들을 먹여 살렸다. 당시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여동생은 아르바이트로 대학 등록금을 모았고, 고등학생이던 막내 남동생은 학업에 타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급기야 고생을 많이 하신 어머니께서 간염에 걸리셨는데 조기에 치료받지 못해 간암으로 병이 커져 돌아가셨다. 일찌감치 치료받지 못해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컸다. 이런 현실은 내 어머니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치료시기를 놓쳐 고통 받는 서민이 많다. 비단 의료문제 뿐 아니다. 절박한 삶의 문제에 봉착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챙기는 사회안전망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절감했다. 현실정치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서 서민을 위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정치를 고민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다.” - 경제민주화 정책을 많이 주장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경제민주화는 당연하고 확실한 우리나라의 당면과제다. 경제민주화가 되면 이를 통해 경제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진정한 경제 성장을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도, 상생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재벌을 개혁하거나 때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균형잡힌 국가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경제민주화의 과제, 즉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를 개선해야 우리 경제의 진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도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CSR에 대한 인식이 낮은데 선진국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제가 이미 기업에서 일하면서 피부로 느꼈던 것들이라 좋은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통합진보당 사태가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야권연대 유지가 가능하리라 보는가. “원론적으로 분열돼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통합진보당에서 내부 문제를 가능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 민주통합당도 야권연대 틀 속에 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진영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민간인 사찰 문제, 광우병 문제, 저축은행 문제 등 중차대한 현안이 자꾸 묻히는 점이다. 야권 연대는 유지가 아니라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할 문제다. 그리고 보완정비 되어야 할 대명제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유지될 것으로 확신한다.” - 국회의원으로서 지나친 특권을 내려놓고 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달라.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초선의 마음 맞는 의원들과 작은 것부터 바꿔가는 실천을 시작하고자 한다.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특권들, 국민이 이해할 수 없는 특혜 등에 대해 과감하게 룰을 바꾸려고 한다. 언론에서는 국회의원에게 200여 가지의 특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중에는 의정 활동의 효율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있지만, 단순이 권위를 위한 것들도 있다. 차근차근 조사해 조만간 실천방안을 발표할 것이다. 기다려 달라.” - 새로운 여성 리더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너무 남성적인 여성 리더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초적인 행동을 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적인 이미지를 따라간다면, 그래서 성장을 하고 출세를 한다면 그 사람은 여성으로서 성공한 게 아니다. 남성으로서 성공한 것이다. 여성으로서 더욱 탄탄해질 필요가 있다. 여성들의 장점도 많지 않은가. 여성성을 가졌다고 해서 열심히 안 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하되 가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가정도 지키고,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해야 행복한 삶이다. 불행하게 일하면 가정도 불화로 시달리게 된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여성 리더십에 대한 특강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저는 차세대 여성 리더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많이 했다. 앞으로 여성성 자체가 리더의 덕목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고, 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주인공이 저이든, 다른 사람이든 상관없다. 그런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저도 노력하고 싶다.” - 향후 정치인으로서의 계획이나 포부를 얘기해 달라. “저와 같은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싶다. 2040세대들은 자신의 실생활과 결부된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보수 혹은 진보적 성향을 자기 삶에 투영하고 있다. 이들의 실질적인 경제생활과 일상이 반영된 이념과 철학에 대해 고민하겠다. 이들과 정치가 긴밀히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통로들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겠다. 정치가 먼 뜬구름 잡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심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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