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각 국의 미술관 지원 제도를 알아본다. 나. 영국 영국의 미술관·박물관은 거의 모두가 반관반민 형태의 비정부 공공기관(NDPB, Non- Departmental Public Body)의 형태로 운영된다. 민간이 주도하지만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민관이 공동으로 설립과 관리 운영을 하는 셈이다. 영국은 1851년 열린 런던 대박람회 이후 중앙과 지방 정부가 미술관· 박물관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세기말 관광 산업의 중추로서 미술관 기능에 착안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쳤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멋진 영국’(Cool Britannia)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 창의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은 1931년 박물관 도서관 문서고 위원회(MLA, The Museums, Libraries and Archives Council)를 설립해 미술관 사업을 총괄하도록 했으며 1977년에는 영국 사립박물관 협회(AIM, The Association of Independent Museums)가 창립돼 미술관·박물관 정책을 수립-시행했다. 1988년부터 미술관·박물관 등록과 인증 평가를 실시했으며 2004년부터 인증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인증제도는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물론 기부자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술관 간 프로그램 교환, 전시 교환, 순회 전시 등이 수월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미술관들은 경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미술관·박물관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대신 상업적인 영리 활동을 제한받으며 미술관 관련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 또한 정부가 이사들을 선임하지만 미술관 운영에 대해서는 이사회가 정부로부터 독립적,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소장품을 관리하고 보존하며 공익을 위해 활용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법적인 책임을 진다. 관장은 이사회가 선출해 정부의 승인을 얻어 취임하는데, 고용 형태는 계약직이며 일반 미술관 직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영국 미술관들의 재원 조달 방식은 정부가 일정 부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미술관이 자체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수익이 발생할 경우 미술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기부금 모집과 수익 사업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 영국의 경우 개인이 미술관에 기부하면 한도 없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최고 세율 50%를 적용받는 최고 소득층의 경우 약 60%의 세금 감면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서 영국도 ‘착한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법인의 경우도 한도 없이 손금 산입이 가능한데 이 경우 약 20~26%의 세금감면 효과가 발생한다.
대부분 소득의 일정 부분 이상을 기부하는 경우 손금 산입을 해 주지 않는 데 반해 영국은 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1990년 경제가 급강하 한 뒤 영국은 기부금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기프트 에이드(Gift Aid)’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개인이 일정 범위의 금액을 현금으로 기부하면 기부 금액의 20~25% 금액을 더해 추가로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식이다. 불경기에도 지속적인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영국은 2000년 전화나 문자메시지, 인터넷 등을 통해 신용카드로 기부하는 제도를 도입했고, 또 주식 지분과 증권의 기부(Gift of shares & security)에 대해서도 조세감면을 해 주는 등 기부 문화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다. 독일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독일은 연방제 국가로서 16개의 지방자치단체에 문화, 예술에 관한 전권을 부여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문화를 포괄적으로 관장하는 부처를 두지 않고, 내무부, 교육부, 과학부 등 연방정부 전체 내에서 사안별로 지원하며, 우리의 문화예술위원회 격인 쿨투어라트(Kulturrat)가 주도한다. 이는 나치시대의 국가에 의한 문화 통제의 폐해를 경험한 독일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지방 정부와 연방 정부가 각각 부담하는 문화 예산 비율이 일정 부분을 넘지 않는다. 연방 정부의 예산 지원은 대규모 재원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에 한정되며, 대부분 예산은 주정부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연방 정부의 주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문화 예산 지원은 3% 이내라는 통계가 있다.
최근 유럽 통합 이후 주도적으로 유럽 연합을 이끌고 있는 독일은 “지원이 아닌 미래에 대한 지속적 투자”라는 개념을 세웠다. 이에 따라 최근 연방 정부의 문화, 예술 지원 예산은 10% 이상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전체 예산의 1.29%까지 올라갔다. 여기에 최근의 경제 위기를 넘기 위해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Konjunkturpaket)이 실시되면 문화 예술에 대한 간접 지원 예산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통큰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베를린 문화명소의 하나인 ‘박물관 섬(Museuminsel)’이 대대적인 보수와 증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시설의 미술관· 박물관을 대거 확충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연방 부가 지원해 2015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독일은 문화, 예술 분야의 유지는 공공지원이 맡아야 한다는 의식이 전통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민간에 의한 문화예술 지원은 미국, 영국 등보다 그리 활발하지 않다. 하지만 공적 지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민간 지원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으며 민간지원 협의기관도 설립되는 등 민간 부문의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독일의 기부금 관련 세제 혜택을 보면 기부 받는 단체가 공익, 종교 단체인 경우 소득 합계의 5%까지 또는 매출액과 임금의 합계 중 0.2% 중에서 선택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학, 자선, 또는 국가가 인정하는 문화 목적 등을 가지는 단체에 기부한 경우 소득 금액의 10%까지와 매출과 임금 합계 0.2%중 납세자가 선택하여 소득공제를 해주며 이월공제가 가능하다. (다음 호에 계속) - 정준모 한국미술산업발전협의회 실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