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춰 알랑거린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아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영화가 있다. 제목까지 ‘아부의 왕’이고, 포스터에서는 두 손을 모아 비는 다소 비굴해 보이는(?) 두 남자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 말씀을’은 아부의 전형적인 문구라 웃음을 자아낸다. 정승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봤을 땐 코믹한 분위기로 그려지지만 직장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어 애잔함을 주기도 한다. 보험 영업팀에 발령받은 동식은 눈치와 센스가 부족해 늘 퇴짜 맞기 일쑤다. 그러던 중 아부계의 전설 혀고수의 존재를 알게 되고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애쓴다. 이들은 아부를 ‘감성 영업’이라 칭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작전을 펼친다. 송새벽은 처음엔 어눌하지만 점차 청출어람 제자가 돼 가는 동식 역을, 성동일은 아부 비법을 동식에게 전수하는 혀고수 역을 맡아 열연한다. 이들이 펼치는 아부 전략은 단순해보이지만 신통하기도 하다. 하수들이나 입을 나불대고 몸을 쓰지, 고수들은 침묵을 지킨다는 ‘침묵의 법칙’을 쓰다가, 3초간 상대방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4초 뒤 시선을 거두고 이것을 5초 이상은 하지 않는 ‘3-4-5법칙’까지 등장시킨다. 여기에 반가사유상과도 같은 ‘그윽한 미소’와 ‘동조와 맞장구 원칙’까지 어우러지면서 굳게 닫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다. 또 다른 아부 비법은 없는지, 이들은 아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승구 감독, 배우 성동일과 송새벽에게 들어봤다. - 이 영화에 성동일 씨와 송새벽 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정승구 감독 “송새벽 씨는 저보다 먼저 이 영화에 캐스팅 됐어요. 이 영화 제의가 왔을 때 제가 쓰고 있던 이전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송새벽 씨를 하면 어떨까 고민하던 찰나였어요.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송새벽 씨가 캐스팅 돼 있다길래 하겠다고 선뜻 제의를 받아들였어요. ‘아부의 고수’를 떠올렸을 때 우리나라에 개성 강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지만 성동일 씨가 0순위였던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 아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성동일 “아부를 해야 월급이 나오죠(일동 웃음). 그런데 꼭 사회생활이 아니더라도 가족들끼리도 적절한 아부를 하잖아요. 자신의 진심보다 더 과장된 칭찬과 표현을 아부라고 하는데, 아부는 지구가 돌아가는 데 원활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감독님과 작가님, 제작사 대표님께 아부하면서 이렇게 왔고요(일동 웃음). 아부는 영화에도 나오듯 인간의 허영심에 미사일처럼 와서 꽂히는 것 같아요. 잘하면 돈이 되기도 하죠.”
- ‘시라노 연애조작단’ ‘위험한 상견례’와 이번 영화까지 주로 코믹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데 부담되진 않았나요? 송새벽 “그런 부분엔 신경 쓰지 않아요. 연기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전 ‘코믹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고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 제의가 들어왔을 때 재밌거나 좋은 작품이면 그 때 그 때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내일 생각 안 하고 오늘을 열심히 살듯이 캐릭터적으로나 장르를 얼마나 재밌고 좋게 표현하는지를 보고 선택하는 편이에요.” - 핵심 소재를 왜 아부로 잡았고, 영화에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려 했나요? 정 감독 “‘아부의 왕’이라는 제목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부를 해야 할까’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에요. 아부 뒤에 있는 촌스러운 순정에 관한 이야기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최선과 순정이라는 단어가 민망하고 촌스러워지기까지 하는 이 시대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 같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 정말 아부하거나 아부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송새벽 “아부하고 싶은 사람은 봉준호 감독님이요. 영화를 처음 하게 만들어 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부의 왕 2’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정승구 감독님으로 하겠습니다(일동 웃음).” 성동일 “돈 많은 사람이요(일동 웃음). 돈이 많아야 아부하고 싶잖아요. 보통 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도 아버님이라는 존칭을 쓰잖아요? 아부를 받고 싶은 대상은 없어요. 돈이 들어가거든요(일동 웃음). 며칠 전 후배들한테 ‘너희들이 나를 잘 따르는 것은 정말 좋은데 술값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했어요. 아부 안 하고 진심으로 다가오면 저도 진심으로 대하는 게 낫지, 아부하는 동생들 챙기다 보면 어찌나 뒤통수를 치고 가는지…. 차라리 아부 못하는 동생이 낫습니다(일동 웃음).”
- 요 근래 한국 코미디 영화의 흥행 성적이 부진한데, 타 영화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차별화시켰고 연출은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요? 정 감독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인 ‘아부의 왕’을 들었을 땐 입에 잘 안 붙었는데, 영화를 준비하고 각색하다 보니 말 그대로 아부의 왕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만큼이나 유쾌한 코미디 장르인데 그 코미디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며 되돌아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 연극계에서 10년 정도 오랜 무명 생활을 하고 영화계로 왔는데 실제로 아부를 해야 했던 경험이 있나요? 성동일 “아부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또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거죠. 저 뿐 아니라 연극을 하는 분들이 여러 가지로 인정을 못 받고 생활고도 힘든 와중에 가장 힘든 것은 가족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남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아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아부했던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저 술을 얻어먹기 위해 ‘선배님~어디 가세요?’ 하는 정도뿐입니다(일동 웃음).” - 영화에 여러 가지 아부 비법들이 등장하는데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아부 비법이 있다면? 송새벽 “너무 많아 하나를 꼽는 게 어렵네요. 서로를 이롭게 하는, 서로를 위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아부의 왕’이라는 게 비위를 맞춰 알랑방구만 끼는 게 아니라 서로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으로 바라봐주셨으면 하네요.” - ‘지.아이.조 2’와 ‘프로메테우스’ 등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경쟁을 벌이게 됐는데 이 영화만의 강점은? 정 감독 “‘지.아이.조 2’에 칼이 있다면 우리에겐 혀가 있습니다. 제가 연출한 영화이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절대 영화 보시고 나서 허탈하게 극장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웃고 가득 만족을 채워갈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성동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희 영화가 외화보다 0.5초 반응이 빠릅니다. 자막을 안 읽어도 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애드리브와 호흡에 목숨을 걸었습니다(일동 웃음). 다음 ‘아부의 왕 2’를 찍을 때는 ‘지.아이.조 2’를 제작한 제작사에서 진행해 여러분을 뉴욕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그런 쪽으로 좋게 부탁드립니다. 애가 셋입니다(일동 웃음).” - 관객들에게 영화를 위해 진심을 다한 아부를 한다면? 정 감독 “저는 첫 영화이기도 하고, 좋은 선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그 좋은 공기가 영화에 녹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모든 배우 분들과 공손히 무릎 꿇고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극장에 와서 저희 진심을 받아가셨으면 좋겠네요.” 성동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배우는 아니고, 가격 대비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뭉쳤습니다(일동 웃음). 얼마 전에 감독님과 함께 얘기했듯이 이 영화를 보시고 즐거워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영화들 같은 특별한 감동과 메시지는 없습니다(일동 웃음). 하지만 여러분들이 즐겁게 보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제 아이 셋의 목숨이 달렸습니다(일동 웃음). 제발 ‘지.아이.조 2’와 비교는 피해주시고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송새벽 “꼭 부정적으로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이를 좋게 하는 아부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만큼 그런 것들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 하네요. 여러분이 보시기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굴하고 부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이들이 펼치는 아부 비법은 6월 21일부터 영화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담한 아부를 펼치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