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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기억력 너무 좋은 병 걸린 공대생

사전 여덟 페이지를 쓱 훑어보더니 다 외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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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9호 박현준⁄ 2012.06.18 13:07:15

사람은 모두 한 가지씩 특기를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오락-도박에 재주 있는 사람, 사기를 교묘하게 잘 치는 사람, 돈 버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사람 등…. 매우 드물지만 기억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의대를 다닐 때 나는 몇 시간을 봐도 기억 못하는데 한 20~30분만 읽어보고도 다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기억력이 나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미국 드라마 중에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간직할 수 있는 여성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도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한 번 본 장면도 나중에 필요하면 현장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확실하게 기억해내는 여성이다. 그래서 범죄 해결에 큰 기여를 한다는 스토리다. 이 여성은 필요한 경우에만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큰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드라마에서 묘사됐다. 천재들의 이야기는 많다. 10살 남짓한 어린 아이가 어엿하게 하버드 대학생으로 입학해 교수들에게도 어려운 방정식을 술술 풀어가는 영화 등….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5~6세 남아가 중학교 수준의 학업 능력을 보였으며, 10대에 모 대학에 입학한 실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 30대에 자살의 길을 택했다. 내가 4학년 때 정신과에서 임상 실습을 할 때 이야기다. 당시 정신과 병동에는 한 구역을 막아서 문이 있고, 그 구역 내에 입원실이 있었다. 한 쪽에는 탁구대 등 놀이시설과 휴게실 개념의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곳에서 두 입원 환자(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학교 재학생)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공대 학생이 영문과 학생에게 “나는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너보다 영어를 더 잘 안다”면서 “나는 한 번 보면 영어 사전 전체를 다 외운다”는 것이었다. 내기가 붙었다. 영문과 학생이 사전을 갖고 오더니 중간에 3~4장을 접으면서 “이곳을 한 번 봐라. 그러면 내가 질문하겠다”고 제의했다. 공대생은 8페이지쯤이나 되는 사전을 한 2~3분 쓱 보고 넘겨주면서 “네가 물어 볼 것도 없다. 내가 순서대로 말하겠다”며 영어단어와 뜻을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정말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이 친구 말을 들어보니 자신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이 병원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나가야 하는데 비워지지가 않는다며 사전을 책상에 툭 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의과대학 공부를 하면서 보면 잊고, 외웠다고 생각하면 또 기억나지 않는 내 머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기억들을 망각 속으로 묻어 버리고 특히 부끄러웠던 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 인간이 아닌가. 요즈음 안경을 쓰고도 가끔 안경을 어디에 뒀나 찾고, 약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도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소하는 자연 현상으로 본다. 나는 내가 보통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생각하면 골프가 안 되는 이유 우리 뇌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

우리 신체에서 의학적으로 제일 미지의 부분은 뇌신경계라고 생각된다. 뇌신경은 한 번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어려운 조직이며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조율하는 기관이다. 최근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 뇌는 한 번에 3가지 이상의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만일 생소한 단어 20개를 외우게 한다면 다음날에 기억나는 것은 단어 3개가 고작”이라고 했다. 따라서 너무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처리하려 들면 능률도 안 나며 효과적인 수행도 불가능하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운동은 어떨까? 운동할 때 우리는 흔히 근육만 작용시키면 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운동하는 근육에 생각을 집중해야 해당 근육의 발달이 적절히 이뤄진다. 몸과 생각이 따로 노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뇌는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데는 비효율적이다. 한 가지를 생각하면서 다른 일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운동에서도 우리는 2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없다. 골프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 골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10개도 넘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공을 친다. 즉 그립, 백스윙 방법, 스윙 플랜, 오른발 안쪽에 저항 등…. 아마 20여 가지는 넘어갈 것이다. 필드에서 연습 스윙을 하면서도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공을 실제로 칠 때는 공은 전혀 안 보고 자신이 생각하던 방법만 시행하면서 공을 친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공이 곧바로 나가고 안 그러면 좌, 우 하늘로 맘대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골프 코치들은 반드시 공을 봐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싱글 골퍼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안 된다. 왜냐하면 생각을 하면 전혀 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골퍼들은 어떨까? 그들은 거의 모두 공을 끝까지 본다. 이것은 어려서 성장기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운동에서 어려서부터 했던 사람들과 성인이 돼 시작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어려서 시작한 사람은 공을 보면서 다른 근육을 조절하는 기능이 가능해진다. 어려서부터 배운 사람은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근육이 이미 발달돼 있는 것이다. 일반 골퍼들이 “또 공을 안 봤어” 하고 자책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기능이 늘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고도 공을 칠 수 있게 될 때 공은 당연히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프로골퍼들도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플레이를 하면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를 본다. 이럴 때 해설자들은 집중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즉 다른 생각을 하면서 맥박이 증가하고 공은 못 보게 되는 현상인 것이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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