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아이돌을 내세우지 않고도 시청률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SBS 드라마 ‘추적자’를 보면 요즘 한국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서민들이야 억울함을 당하든 말든 상관 않고 자신들의 이권을 향해 달려간다. 그 길에 서민이라는 방해물이 나타나면 바로 깔아뭉갠다. 드라마 ‘추적자’를 관통하는 감정 코드는 억울함이다. 사회의 온갖 비리를 그대로 온몸으로 맞으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국 성인 남성의 억울함이 이 드라마에 절절히 깔린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설정은 진보적이다. 사회 기득권 계층을 악의 화신들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두 칼이 녹스는 양상 보여주는 인물 설정 한국 보수의 ‘전가보도의 두 칼’은 돈(경제성장론)과 안보(색깔론)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이 두 칼 모두가 녹슬고 있는 양상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경제성장의 화신이랄 수 있는 서 회장(박근형 분)은 돈을 위해서라면 딸까지 버릴 정도의 몹쓸 인간이고, 공안을 담당하는 양대 축(국정원과 검찰) 중 하나인 검찰의 검사님(송영규 분)은 야비하기 이를 데 없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드라마 속의 회장님들은 멋진 분들이었다. 성격상 하자는 있을지라도 대단히 능력 있었다. 추적자의 서 회장 역시 능력 있지만 그 능력이 좀 더러운 쪽으로 발달돼 있다. 국민 60%의 지지를 받는 ‘거의 차기 대통령’에게 자기가 먹고 남은 화채 그릇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야비하다. 이런 추악한 욕심쟁이 재벌 회장을 배불리느라 지난 수십 년간 허리띠를 졸라맸던 한국의 서민들은 지금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서 회장을 향하는 게 이 드라마 인기의 한 요인일 것이다. 또한 이런 악덕-부패 검사가 한국 드라마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 동안 TV 속 검사는 거의 항상 ‘정의의 화신들’ 아니었던가? 그랬던 검사님이 이 드라마에서는 워낙 저질이라서 시청자의 공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현재의 사법부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이다. 또한 공안론-색깔론 소동에서 진한 촌스러움을 느끼는 21세기 한국인의 시선이기도 하다. 진보 담론이 대중문화의 옷을 입으면… 종편 출범과 함께 보수언론들이 내놓은 한국전쟁 소재의 드라마들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반면 진보론적 캐릭터를 설정한 ‘추적자’는 최고 인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보수적 소재에 식상하고, 진보적 소재에 끌리는 양상이다. 지식인들 사이의 진보 담론은 보통 어렵다. 일반인들은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러나 진보적 시각이 안방극장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패 검사, 악덕 재벌회장, 두 얼굴의 대선후보에게 느끼는 보통사람들의 분노는 바로 대선에서의 표로 연결될 수 있다. 이렇기에 진보적 담론의 ‘대중문화화’는 그 파급효과가 크고 간단치 않다. 추적자의 진보론적 인물 설정이 얼마나 인기를 끌지, 시청률은 얼마나 오를지가 올해 대선을 바라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