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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필리핀에서 언양불고기 먹고 “얼음땡”

반가운 마음에 2인분 꿀꺽했더니 극심한 저체온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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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0호 박현준⁄ 2012.06.25 11:14:09

눈이 하얗게 쌓인 산 중에서 길을 잃고 정신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저체온증을 막아주기 위해서 알몸으로 안아 몸을 비벼주며 잠들지 말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을 영화로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추우면 저렇게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괴로운 걸까? 나도 궁금했다. 학회 일로 필리핀 마카티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마카티 내에서 필리핀이 자랑하는 쇼핑센터인 그린벨트를 구경하다가 한국 퓨전 음식점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메뉴에 언양불고기가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김에 2인분을 시켜 먹어치웠다. 그리고 쇼핑센터 내를 구경하고 있는데 약 30분쯤 됐을까?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설사가 끝없이 나오면서 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려고 방향을 잡았는데 그때 마침 길거리 행사로 교통이 차단돼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호텔을 향해 서둘렀다. 그 와중에도 배가 더 아파지고 열이 오르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호텔 정문까지 가까스로 와서 안내원의 부축을 받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마침 가지고 간 항생제를 먹었다. 그런데 구토 증세가 나면서 변기통에 있는 대로 토해낸 뒤 조금 편안해지나 싶더니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이불을 겹으로 덮었으나 아래위턱이 소리를 내며 부딪칠 정도로 추위가 엄습했고 모든 근육이 아파왔다. 내가 느끼기에 당시 심박동은 200회가 넘는 듯했다. 나는 가까스로 항생제를 더 먹고 이불 속에서 몸을 벽에 대고 비벼댔으나 얼마 안 가 의식을 잃었다. 내 생각에 그때가 저녁 7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깨어보니 새벽 3시였다. 8시간 내리 잠을 잤던 것이었다. 세균이 내 몸에 들어와 급성 패혈증을 일으킨 것인데 마침 가지고 간 항생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런 경우 살아났다는 게 신기하다. 왜 의사에게 치료를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그럴 경황도 없고 일요일 오후라서 연락해도 큰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 하늘나라 올 시간이 안 됐다고 안 데려가신 것 같다. 마카티에서 언양불고기라니…. 필리핀인이 대부분인 퓨전 음식점에서 누가 언양불고기를 찾겠는가? 상한 고기를 먹었으니 그냥 균 덩어리를 먹은 셈이다. 외국 특히 후진국에서는 호텔 안 또는 초특급 음식점만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마음에 새겼다. 만일 내가 지역 응급실로 갔더라도 필리핀 의료 상황으로 봐 내 상태는 더 악화됐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심한 식중독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휴일이나 저녁 또는 객지에서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이런 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의약분업 상태로는 항생제도 급하게 구해 쓸 수 없는 것은 물론 작은 병원에서는 긴급 대처를 위한 시설, 인적, 구조 등에 문제가 적지 않다. 응급환자를 바로 보고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욱 확충돼야 한다. 복면 쓴 한국인에 ‘햇볕정책’ 필요한 이유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앞의 골프를 치는 4명이 모두 얼굴을 가리고 골프를 치고 있었다. 파 3 홀에서 밀려 있는데 우리 뒤의 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앞 팀 사람들을 향해서 “또 저 친구들이네. 왜 얼굴에 복면을 쓰고 다니는 거야! 저렇게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들은 골프를 못 치게 해야 해” 하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요사이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두텁게 바른다. 걷거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자외선 차단제는 물론 복면까지 쓴다. 한술 더 떠 요사이 자외선이 차단되는 옷도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외선이 모자란다며 가능하면 자외선을 받도록 한다. 서양에서는 수영장이나 해변은 물론 집 마당에 누워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검버섯과 주름이 많이 생기는 등 피부를 노화시킨다며 외부에 나갈 때는 지나치게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쓴다. 자외선은 몸에 나쁘게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다. 우리 건강에, 수면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많은 북반구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1년에 거의 4~5개월간 태양이 없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가 많고 태양이 없는 계절에는 다른 나라로 태양을 떠나는 현상도 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닥쳤을 때 피해를 입은 외국인 중 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눈에도 안 좋아서 가능하면 자외선 차단 선글라스를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은 자외선을 강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쬐었을 때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봄, 가을, 겨울에는 태양빛을 많이 받아도 부족한 편이다. 여름철이라도 2시간 이상만 안 쬐면 된다. 적절히 자외선을 받아야 비타민 D가 생성되고, 숙면을 취하며 우울증을 줄이는 등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화장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화장품 회사의 과잉 광고에 홀려 자외선 차단제를 무분별하게 바르고, 자외선 차단 의복을 값비싸게 구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하늘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연을 내려준 것이며, 거기에는 자외선도 포함된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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