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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래 작가 “레드카펫 밟고 싶다고? 자칫 사람 밟아요”

진부한 공간을 몸으로 변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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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1호 김대희⁄ 2012.07.02 20:26:53

‘몸으로 말하는 예술’로 통하는 퍼포먼스가 있다. 음악, 문학, 조형예술, 연극 등 여러 장르를 포함하는 일종의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표현수단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개념이다. 미술 분야에서 퍼포먼스라 할 때는 회화와 조각 등 작품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술가의 신체를 이용해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미술가의 표현 형식으로 공인돼 현대미술의 일익을 담당하는 장르로 정착돼 있다. “주된 작업이 퍼포먼스가 아니었는데 국내에서 퍼포먼스로 더 주목 받게 됐어요. 모두들 퍼포먼스를 재미있게 봐주더군요. 다른 작업보다 퍼포먼스가 더 관심을 받았고 지난해부터 두각되기 시작했어요. 퍼포먼스는 형태만 다를 뿐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설치를 주로 하던 전미래 작가는 2008년부터 퍼포먼스를 병행했고 현재 퍼포먼스 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녀는 공간의 재활성이라는 주제로 설치 및 조형 작업을 해왔다. 사실 그녀가 하는 작업에는 틀이 따로 없었다. 있는 공간을 이용하는 작업부터 사진, 설치 등 다양하게 표현했다. “같은 장소지만 변해버린 공간들, 또는 같지만 달라 보이는 공간들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작업에 도입하며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천착해봤어요. 새로운 장소는 공간에 대한 습관적인 인식으로부터의 탈피를 가능하게 하면서, 어떠한 부수적인 목적과 고정관념 없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인지하게 해요. 더불어 새로운 장소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요소들은 또 다른 형태와 구조로 작업의 근간이 됩니다.”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10여 년을 파리에서 지내며 작업을 해왔다. 당시 해왔던 작업 중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이 7년 동안 살던 집을 작품으로 변형시킨 작업이다. 8평 크기의 집에 Rien(프랑스어로 Nothing)이라고 쓰인 포스트잇(7.6x7.6cm) 2만 5500장을 붙였다. 직접 일일이 붙이는 데 3달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보면서 진부해지고 의미를 잃어버린 공간과 오브제에게 다시 정체성을 찾아주는 설치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반적인 공간 바닥에 여러 개의 움직이는 바닥을 설치해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공간에 들어서면 걸을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바닥 설치 작품들이에요. 무심코 들어선 공간의 바닥이 흔들리면서 이성적 통제의 한계와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암시를 느끼게 되죠. 특히 화장실 같은 경우는 조심스런 개인적 공간으로 바닥이 조금만 움직여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처럼 그녀는 사람들이 항상 봐오고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던 공간을 다시 보게끔 만드는 공간의 재활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또한 관객들이 참여해야 활성화가 되고 진정한 작업이 되는 참여유도형 작업을 주로 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렸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등 남다른 독특함이 있었던 그녀는, 예고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은 판화과를 입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음을 확인하고 파리로 떠났다. 회화보다는 판화가 더 좋아서 지원했지만 막상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가 아님을 알고 배움을 중단한 것이다. 화장실처럼 내밀하고 익숙한 공간의 바닥이 갑자기 움직인다면? 사람인데 500개 바퀴를 달고 바닥을 굴러다닌다면? 그러나 판화 자체는 여전히 매력적인 예술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파리로 갈 당시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갔죠. 사실 신발 장인이 되려면 이탈리아로 갔어야 하는데…(웃음). 의상을 전공하면 3~4학년에 신발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2002년 1월에 파리로 가서 2004년에 국립미술학교를 입학해 2009년에 졸업했어요.” 그녀가 해온 공간의 재활성에 대한 작업은 프랑스에서 진행했지만 국내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이때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도 됐다. 자신이 살던 집에 포스트잇을 붙인 작업으로 2009년 창원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전에 참여 의뢰를 받은 그녀는 기존 작업이 아닌 처음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그녀가 진행한 공간의 재활성은 진부한 공간에 대한 돌아보기다. 전시 공간은 진부하지 않아 자신의 작업이 맞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 그녀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500개의 바퀴가 달린 옷을 직접 제작해 입고 걸어 다니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듯 굴러다닌 작업이다. “500개의 바퀴가 달린 옷을 입은 퍼포머는 공간 또는 사람들 사이로 미끄러져 다녀요. 관객들은 퍼포머를 밀기도 하고 만져보면서 괴상하게 생긴 퍼포머와 즐거운 교감을 하죠. 관객들은 미끄러져 지나가는 이 타인을 보며 상대적으로 미끌림을 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타인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의 교차점을 느끼게 되요.” 그녀는 퍼포먼스 작업이 기존 자신의 설치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점에서 그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이후 그녀는 1층과 지하가 45도로 기울어진 장소에서 45도로 잘려진 나무토막을 발에 고정시켜 잘라진 면으로 걷는 퍼포먼스, ‘1평수 머리 퍼포먼스’로 2x2m 두께에 약 3cm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사각형 틀을 머리에 고정시키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퍼포먼스, 밸런타인데이에 거지 복장을 하고 황금 동전 초콜릿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퍼포먼스 등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국내 및 해외에서도 공연한 퍼포먼스가 바로 레드카펫 퍼포먼스다. 짧게는 16m(대구시), 길게는 56m(프랑스 파리시) 길이의 레드 드레스를 입고 벌인 퍼포먼스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레드카펫의 붉은 색은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며 예우를 갖춘 극진한 환영의 의미도 지녀요. 레드 카펫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대우는 명예스러운 자리가 되죠. 그런데 그 카펫이 이어지는 끝에서 관객들은 자신들이 밟고 있는 이 카펫이 퍼포머의 드레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요. 처음 카펫 위에서 갖게 된 명예로운 위치가 순간 당황스러운 위치로 변하게 되며, 레드카펫의 상징성이 반대적 의미로 변하는 상황을 맞죠. 반전되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고정된 미학적 상징과 가치를 환기시켜줍니다.” 레드카펫 퍼포먼스로 유명세를 탄 그녀는 최근 퍼포먼스 초대를 많아 받지만 일반적인 포퍼먼스가 아닌 공간 작업으로 생각하기에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작업 자체가 공간 분석이며 재활성이기에 공간에 따라 작업 방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의도한 만큼 사람들이 반응하고 그 이상으로 즐길 때 자신도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 “작가들의 한계를 풀어주는 게 관객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자신의 작업은 관객들의 참여가 중요하기에 참여가 없으면 감동도 없고 소통도 이뤄질 수 없다고 한다. 그동안의 전시로 몸에 무리를 느낀 그녀는 2011년 프랑스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돌어왔다. 이제 몸과 마음을 정비하며 국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려는 그녀가 다음에는 어떤 행동과 이야기를 담은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 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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