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걱정과 고민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과 고민이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의 저서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는 이런 글이 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오로지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결국 걱정의 96%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주로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걱정과 고민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니 인생이 허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다. 사람마다 고민 없고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하지만 이런 걱정과 고민을 앞에 두고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이 달라진다. 생명의 근원인 빛과 원초적 우주만물의 본질인 에너지의 파동을 선과 색, 호흡(여백의 공간)으로 표현하는 박다원 작가를 하남시 미사리조정경기장 인근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 내부는 물론 주변의 상쾌한 자연환경 탓에 사실 작업실이라기보다 고요한 마음의 휴식처를 방문한 듯한 인상이었다. 온화하면서도 편안한 미소로 반기는 그녀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불현듯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의미 없는 고민과 걱정으로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마음가짐의 자세가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시간은 우리가 만든 개념으로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만 정작 인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 이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이에요.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살아가고 에너지는 그 곳곳에 계속 있지만 우리가 보는 건 지금 여기라는 거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고민과 생각에 빠져 살지만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는 얘기에요. 제 작업 ‘지금, 여기’를 통해 그 에너지를 다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을 그리고 싶었어요.” 빈 여백의 공간에 거침없이 그어진 선. 시원한 붓질 사이에 펼쳐져 있는 여백은 눈과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다. 작품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경쾌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가냘프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가 그려내는 선이 화폭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기 때문이다. 캔버스 위에 그어져 있는 선들은 처음 봤을 때 동양적인 느낌을 풍긴다. 하지만 단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들 중 동양적인 느낌을 지닌 선 주변에 반짝거리는 수정이 붙여져 있는 작품은 팝아트적인 느낌도 든다. 선의 색 또한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시리즈로 나눠져 다양한 색으로 표현돼 신선함을 준다. 여기에는 예술을 동서양으로 구분 짓지 않고 보다 원초적인 예술 세계에 접근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묻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화집을 많이 보고 자라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미술을 모두 접한 그녀의 경험도 한 몫을 했다. “서예를 한 적도 추상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어요.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제가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것들을 꺼내 작품에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하죠.” 삶은 편안함이고 순리인데, 두 번 긋는다고 더 잘 그을 수 있나. 내가 화가로 태어났음을 깨달으니 선이 한 번에 그어지더라” “나는 화가로 태어남을 안다. 그것을 아는 순간, 나는 편안해졌다. 충만했던 유년시절과 휴지기, 태어난 자들의 영광과 굴곡을 겪어내며 우리의 삶은 점과 선, 여백으로 정리되었다. 삶은 순리이고 편안함이다. 그림 역시 그러하다. 그것을 알게 되니 두 번 긋지 아니하고 일획으로 선을 긋게 되었다.”
그녀는 아무 때나 작업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붓질 또한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평소 생활을 즐기다 마음을 비우고 가장 평안한 순간 붓을 잡고 한 번에 선을 긋는다. 빠르고 짧게 긋기도 하고 길고 부드럽게 물이 흐르듯 붓질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순수하고 집중하는 정신의 에너지를 선으로 표현하기에 명상의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가 캔버스에 선을 긋는 그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의 근원에너지의 형태를 선, 색, 호흡으로 시각화하고 이를 통해 삶을 그린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들이 어우러져 있는 공간에서는 생동감 있는 호흡이 느껴진다. 마치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이는 작품명인 ‘now and here(지금,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이유와도 같다. 이렇게 자유로운 붓질을 선보이는 그녀지만 붓으로 선을 그리는 작업을 하게 될 줄은 자신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구상 작업을 했지만 어느 순간 멀게 느껴졌던 먹이 갑자기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삶이란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그렇다면 순리대로 쉽게 가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붓을 잡게 됐어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을 성찰하며 삶의 본질적인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는 박다원. 그녀가 바라보고 또 그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들이 모두 담긴 붓질은 힘차고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럽다. 또한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다. 그런 붓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 힘차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준다. 그녀의 작품은 2011년 삼성그룹의 신년 하례식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기증되기도 했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