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와 ‘라카지’에 이어 곧 개막을 앞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까지 해외 작품의 국내 공연 열풍이 거세다. 이런 가운데 묵묵히 국내 순수 창작 공연을 이끌어가는 30대 젊은 연출가들이 있다. 현재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전국노래자랑’을 무대에 올린 성재준(38) 작연출가(작가이면서 연출가)도 그 중 한 명이다. 음악이 좋아서 처음 뮤지컬에 빠지고, 뮤지컬 작사가로 데뷔한 그는 극본과 연출을 직접 담당하는 뚝심 있는 작연출가로 대학로에서 유명하다. 직접 쓰고 연출한 ‘싱글즈’로 2008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작사/극본 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이후에도 ‘카페인’을 통해 2인이 만드는 새로운 뮤지컬 방식을 이끌고, 랩을 소재로 한 ‘스트릿 라이프’까지 다양한 도전에 나섰다. 이토록 쉴 새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작업이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도전을 좋아한다”고 성 작연출가는 말했다. “직접 쓰고 연출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듣는데 창작의 고통보다는 재미가 더 커요.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글로 옮기는 편이에요. 길을 걷거나 책을 보면서도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이 즐거워요(웃음).” 현재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전국노래자랑’도 몇 년 전 작품 제의를 받고 재밌겠다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다. ‘전국노래자랑’은 원수지간인 김 회장과 이 회장 집안이 노래 경연 대회 우승을 앞두고 겨루던 중 김 회장의 막내아들 준혁과 이 회장의 막내딸 세연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줄리엣에게 잠자는 약 만들어주는 목사를 사이비 교주로 바꾸고 여러 번 수정을 거치고 로맨스도 더 부각됐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요즘 상황에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다. 또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소위 ‘멘붕’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뮤지컬을 쓰고 연출할 때 즐거움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각 캐릭터들을 부각시키며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고 있다.
“여러 명이 주인공인 콘셉트에요.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에서 소외됐던 캐릭터들을 패러디했죠. ‘로미오와 줄리엣’에 잘 부각되지 않았던 부모님들과 줄리엣의 원래 약혼자를 김 회장과 이 회장, 세연의 약혼남 진수로 부활시켰고요. 줄리엣에게 약을 만들어주는 목사 캐릭터는 사이비 교주 이태일로 바꿨어요. 세연을 끔찍이 아끼는 오빠 마이클리는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를 패러디했고요. 이런 관점에서 공연을 보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웃음).” 지난해 선보인 ‘스트릿 라이프’에 이어 ‘전국노래자랑’까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그에겐 ‘공연계 히트제조기’라는 칭호가 붙었다. 막강한 해외 라이선스 공연들이 공연 시장을 크게 점령하고 있는 시점에 우리 순수 창작 공연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을까. 성 작연출가는 “일단 나 자체가 뮤지컬 마니아”라고 고백했다. “제가 좋아하는 감성이 대중과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일치점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죠. 주로 즐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쓰긴 했지만 비극도 쓰고 있습니다. 아직 무대 위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작품들이 많아요. 한 쪽 방향으로만 치우쳐서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아요.” 지금은 국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순수 창작 공연을 해외에서 선보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일례로 2008년 선보인 2인극 뮤지컬 ‘카페인’은 일본 무대에 진출하기도 했다. “‘카페인’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노리고 쓴 작품이기도 했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혜영 작곡가와 함께 작업했죠. 일본 공연에서도 객석 점유율이 높았고요. 지난해 선보인 ‘스트릿 라이프’도 해외 진출을 생각했어요. 랩으로 구성된 뮤지컬이 굉장히 희소성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무도 뮤지컬적인 안무가 아닌 팝적인 안무를 가미했죠. 팝적인 부분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곧 선보일 ‘풀하우스’는 아시아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성 작연출가는 “배우들이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열심히 연기하는 것처럼 공연도 한국 무대 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부담이라고 느끼기보다는 열정을 지니고 임하고 있기에 즐거울 따름이다. “창작 공연을 만들 때 힘든 점이 있기도 하지만 감내해야 한다고 봐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코 쉬울 수만은 없죠. 현재 우리나라 창작 공연은 점점 발전해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창작팩토리나 예그린, 대구뮤지컬페스티벌 등 창작 공연을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돼 가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지원 프로그램이 더 늘어나야겠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선한 작품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좋은 창작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그런 창작자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도 만들어져야 해요.” 뮤지컬 ‘전국노래자랑’ 무대 올려. “힘들지만 재미있어서 작품 쓴다. 억지로 쓰는 작품 안 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 그렇기에 그 자신부터 글을 쓰고 작품을 연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성 작연출가는 특히 뮤지컬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뮤지컬 작가는 지구력이 필요하다”며 “1년에 3~4개씩은 계속 작품을 써봐야 스스로 어떤 점을 고쳐야할지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부끄러움이 많아 작품을 쓰고도 모니터링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신인 작가들이 많은데 “평가받는 것을 겁내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적인 것들을 많이 보고 체험하는 것이 연출가의 몫이다.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방향 설정을 하고, 대본을 보고, 무대와 조명 그리고 의상까지 직접 하나하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배우들과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하나의 호흡으로 모아주는 것이 연출가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삶의 이유’라고 표현할 정도로 공연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성 작연출가는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뮤지컬을 주로 선보였지만 연극 작업도 이어갈 생각이고, 영화 시나리오 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작가는 말 그대로 작가일 뿐이지 꼭 뮤지컬 작가에 국한되는 건 아니죠. 작가와 연출 모두 그냥 라이터(writer), 디렉터(director)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고 싶지 않아요(웃음). 공연은 제게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소중한 존재에요. 어떤 여성을 예뻐서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다양한 면이 합쳐진 모습이 좋은 것처럼 공연도 어느 한 부분만 좋아하진 않거든요. 저를 힘들게, 아프게, 슬프게 만들 때도 있지만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웃음).” 평생의 목표가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할 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는 성 작연출가는 앞으로도 관객들을 웃고 울리며 감동을 주는 창작 공연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도 관객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끝마친 그가 다시 공연 관련 일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더욱 열정적으로 비춰진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