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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규 연출 “뉴욕에 뒤지는 건 돈·기술뿐 창작·구성력은 우리도 막강”

‘삐치는 이순신’ 앞세운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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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9-290호 김금영⁄ 2012.09.03 14:05:26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식상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이 요즘 시대엔 절실하다. 경제 불황에다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사람들은 ‘웃음’이 간절하다. 또 그만큼 필요한 것이 ‘영웅’이다. 과거 백성들이 어려울 때 떡하니 등장해 혼란을 바로 잡고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했던 등불과 같은 영웅이 우리는 보고 싶다. 그런데 여기 ‘웃음’과 결합된 ‘영웅’이 등장했다. 누구나 아는 이순신 장군. 그런데 원래 알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다. 욕쟁이에 투덜투덜하기 일쑤고 땅에 떨어진 고구마를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자주 삐치기까지 한다. 처음엔 충격이지만 그 모습이 점점 친근하게 느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인간미에 빠져들게 된다. 이 이순신 장군을 이현규 연출이 만들어냈다. 2년 전 창작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에서 충격적(?)인 이순신 장군을 보여줬던 그가 올해 다시 돌아왔다. 서울 PMC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10월 31일까지 공연되는 이번 공연은 2년 전보다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다. “초연 때는 화려한 뮤지컬보다는 소박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창작 뮤지컬 지원금을 받으면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연출은 MR로 진행됐던 음악이 라이브 연주로 생생하게 바꾸고 무대 장치 또한 세세하게 신경 썼다. 스토리도 초연 때 부각됐던 정치적인 부분을 많이 걷어내고 작품적인 것들을 보다 가지고 가려 했다. 올해 공연엔 가수 자두가 캐스팅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좋은 배우들을 찾아야겠다는 이 연출의 신념이 부여됐다. 성량이나 연기 부분에서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좋은 배우들을 찾기 위해 애썼고 그 결과 손광업, 조휘, 이신성, 강성, 자두, 김지민, 홍순범, 최성민, 박종호, 조성재가 캐스팅됐다.

욕쟁이에 투덜대는 이순신 장군? 이렇게 여러 모로 신경을 쓴 점이 많지만 이 연출은 막상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나니 갑갑하다고 손사래 쳤다. “연출자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관객에게 얼굴을 못 들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항상 ‘이것보다 더 재밌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어쩔 땐 죄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죠. 그만큼 안도하지 않고 극장과 현장 분위기를 살피면서 계속 공연을 다듬어가려고 합니다.” 관객들은 객석에서 웃음 폭탄이 ‘빵빵’ 터지는데도 더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다고 한다. 이 연출의 공연에 대한 애정과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국민 영웅인 이순신 장군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이 연출은 “그게 원래 콘셉트였다”고 짚었다. 2005년 파파프로덕션에서 창작희곡 공모를 했을 당시 이주용의 ‘난중일기에는 없다’를 읽고 재미있다는 생각에 먼저 연극으로 올렸지만 뭔가 아쉬움이 많았다. 그 와중 뉴욕에서 아더왕을 희화화한 뮤지컬 ‘스팸얼랏’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정말 재밌었던 ‘스팸얼랏’과 같은 정서가 ‘난중일기에도 없다’에도 흐른다고 생각했다. 또한 뮤지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 훨씬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영웅을 기다리며’이다. 공연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준 계기가 또 하나 있다. 때는 2006년 뮤지컬 ‘미스터마우스’라는 작품을 올렸을 당시로 어느 날 한 사람이 그에게 찾아왔다고. “한 외국 사람이 절 보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뮤지컬 ‘렌트’의 오리지널 음악감독이라고 하더군요. 공연을 너무 잘 봤다고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처음엔 사기꾼 아닌가 했어요(웃음).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최고로 꼽히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이제 막 소극장 무대에 올라간 초연 공연을 보고 그런 제안을 하는지 안 믿겼거든요. 그런데 진짜 초청장이 왔고 그렇게 브로드웨이를 처음 가게 됐어요.” 연극 쪽 분야에 들어와서 극단에서 생활할 때도 선배들이나 외국에서 공부하신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브로드웨이는 ‘꿈의 장소’라고 언급하며, 범접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아티스트들이 많은 곳이라고 했기에 기대가 컸다. 이 연출도 물론 놀라긴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다르다. ‘기대’나 ‘감격’이 아닌 ‘실망’이라는 이름의 놀라움이었다. “우린 브로드웨이에 속고 살았구나” “속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로드웨이에 대한 막연한 이야기를 듣고 동경해 왔는데 막상 직접 가보니 ‘이게 뭐지?’ 싶었거든요. 좋은 작품들이 물론 많긴 했죠. 하지만 그 작품들은 미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르면서 개발돼 오고, 자본력과 기술력이 상당히 뒷받침됐을 뿐 창작력과 구성력은 우리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브로드웨이의 메이저 작품을 보고 감격과 실망을 동시에 겪은 그에게 현지 친구는 “오히려 큰 공연들은 관광객 용”이라며 “현지 사람들은 큰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거리의 작은 공연들을 보라”고 추천해줬고 이 연출은 브로드웨이의 크고 작은 공연들을 모두 보러 다녔다. 그렇게 공연을 보면 볼수록 한국 창작 뮤지컬에 대한 확신은 깊어져만 갔다. 국내에서 창작 뮤지컬을 발전시킬 뿐 아니라 해외에도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생겼다.

“공연 뿐 아니라 정부가 공연 제작사를 지원하는 시스템도 살펴봤어요. 그리고 뉴욕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뉴욕에서는 저를 단지 ‘동양에서 온 뚱뚱한 남자’로 바라볼지도 모르지만 제가 한국에서 지니고 있는 위치를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현지에서 나와 있는 대본을 가지고 공연을 만들 수도 있고, 한국 작품을 현지 정서에 맞게 각색해서 선보일 수도 있겠죠. 처음부터 거창하게 나가기보다 30~40석 소규모 극장에서 현지 배우들을 섭외해 공연을 올리고 싶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무시당할지라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100명 중 꼴등을 해도 좋으니 도전할 생각이에요(웃음).” 이런 목표를 위해 현재는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데 힘쓰고 있다. 창작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눈을 반짝이던 이 연출은 창작 뮤지컬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또한 당부했다. 처음부터 편견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봐달라는 것. ‘미스터마우스’를 올렸을 때 ‘지킬앤하이드’와 비교를 당하면서 일방적인 폄하가 이어져 안타까웠다고 그는 털어놨다. “현대차 처음 만들 때 사준 것처럼” “저 또한 ‘지킬앤하이드’를 좋아하고 감명 깊게 봤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창작 뮤지컬에 대한 일방적인 폄하가 안타까웠어요.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지적을 받으면 고칠 텐데 애초에 폄하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봐요. 현대자동차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 때 여러 외제 부품을 수입해서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그 자동차를 ‘쓰레기’라고 하거나 “현대자동차는 안 좋으니 BMW나 벤츠 타세요”라고 하진 않았잖아요? 우리 자동차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힘썼죠. 이런 격려가 공연 산업에도 필요해요. 어려운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창작 뮤지컬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합리적인 비판도 필요하고요. 그러기 위해서 창작 뮤지컬도 좋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저 자신도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연출은 비판과 응원을 수용하면서 공연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라이어 1탄’ ‘라이어 2탄 - 그 후 20년’ ‘라이어 3탄 - 튀어!!’ ‘달고나’를 비롯해 ‘영웅을 기다리며’까지 주로 코미디 장르를 연출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웃음’이라는 정서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연출은 “앞으로도 정말 재밌고 가볍게 표현되지만 내부적인 치열함이 끝으로 가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 신념을 밝혔다.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 연출과의 인터뷰에선 공연에 대한 그의 열정이 묻어났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이 연출은 인터뷰가 끝난 뒤 관객에게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자 힘찬 준비를 하러 갔다. 그의 공연이 국내를 넘어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등장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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