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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일본 가서 영어 함부로 했다가는…

대화는커녕 말 한 마디 못 나누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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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89-290호 박현준⁄ 2012.09.03 11:26:52

일본인의 영어 발음은 매우 나쁘다. 영어를 어지간히 배웠다 해도 발음만큼은 좋지가 못하다. 일본어는 아, 이, 우, 에, 오 다섯 가지 발음밖에 없어서 보통 사람들은 영어 발음 자체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인이 로얄을 로이야루, 호텔을 호테루로 발음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동료 한국인 교수가 나를 방문했다가 전철역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성냥을 사러 갔는데 영어로 “맷치 있느냐”고 했더니 전혀 못 알아들어서 둘러보다가 성냥을 발견하고 이것이라고 가리키자 “오! 마찌”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일본 심장연구소에 처음 갔을 때 인사를 하는데 외워 가지고 간 영어로 이야기하자 그들은 내가 영어를 무척 잘하는 줄로 오해했다.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th, L, R, F, V 등 몇 가지만 빼면 미국 발음과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는, 즉 한글의 빼어난 능력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언어의 잔해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빠꾸(back), 구락부(club)처럼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 말들이 영어 발음을 일본인이 얼마나 못하는지를 말해준다. 어학과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지바로 가는데 많은 손님이 타고 있어서 복잡했다. 그런데 중간 정거장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모두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 큰 회사 등이 있어서 내리나 보다’ 하고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출발을 하는데 앞으로 나가지를 않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역무원들과 일반인들을 붙잡고 지바에 어떻게 가냐고 영어로 묻자 모두 손을 내저으며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가지 떠오른 생각. 한 역무원에게 다가가 “지바. 덴샤가 뚝시데 빠꾸시마시따”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전차가 오자 앞쪽 칸으로 타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중간 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앞의 열차로 타서 가고 나머지 뒷부분은 다시 도쿄로 돌아오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국제학회에서 발표만 하고 줄행랑 1980년대 초반 나는 소아심장 전공으로 많은 국제 심장 학회에 참석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의학은 외국에서 크게 인정을 받는 시기가 아니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국제학회에서 많은 연제를 발표했다. 처음 참가한 학회가 애너하임에서 열렸던 미 심장학회였다. 많은 일본인 연자들이 발표를 하는데 대부분 발표를 하고는 재빨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무심코 넘어 갔다. 그리고 내가 하버드의 어린이병원에 가 있던 시절 뉴욕에서 소아심장학회가 열렸는데 내 옆엔 다혈질 여교수가 앉아 있었다. 일본인 교수가 발표를 하자 바로 일어나서 질문을 했는데 그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었다. 발표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더니 질문도 못 알아듣느냐며 화를 냈던 일이 있었다. 예전에 왜 아시아계 연자들 대부분이 발표를 하자마자 내뺐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질문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변도 하기 어렵고…. 7년 전 내가 미국에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러 다닐 때 한국의 모 대학병원에서 연수차 온 내과 전공의 젊은 교수를 만났다. 나는 그의 담당교수에게 “저 친구 좀 잘 대해 줘라. 내가 젊어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무척 힘들었다”고 하자 그 교수 왈 “의학용어 외에는 잘 못 알아들으니 그게 문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젊었던 시절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지금 우리나라 의사들 대부분의 영어 능력도 향상돼 의학적 용어를 말하고 답하는 능력은 좋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보다 심도 높은 교류를 위해서는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만능’ 의학 전문기자는 없다 모든 분야 아는 의사 없는데 어떻게 기자가 다 알 수 있나 내가 처음 언론과 접한 것은 한 20여 년 전으로 모 TV 방송국에서였다. 질병 하나를 놓고 연예인들과 함께 하면서 질문과 응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극히 초보적인 방송이었으며 뉴스에서 의학을 자세히 다루는 경우도 없었다. 그 후 1980년대 말 모 방송국으로부터 ‘가슴이 아파요’란 제목으로 어린이 심장병 환자에 대해 방송하려는데 이 프로를 담당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소아심장병에서 가슴이 아픈 증세는 매우 드문 경우여서 나는 제목을 바꾸자고 했다. 그러자 방송국에서는 ‘푸른 얼굴의 아이들’로 바꾸자고 나왔다. 그러나 소아심장병의 경우 얼굴이 파래지는 청색증형 소아심장병이 있으나 실제 환자는 비청색증 심장병이 더 많으므로 정확한 제목이 아니라고 하자 방송국 측은 “제목이 중요하니 그대로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강요했다. 나는 그 프로를 거절했다. 의학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시청률에 염두에 둬, 자극적인 것이나 감동을 주는 것 등 무리한 시도를 하곤 한다. 최근에 와서는 의대 출신의 의학 기자가 각 언론사에 근무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의학 분야를 취재하고 있으며, TV 방송에서도 거의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뉴스마다 한 가지씩 의학 이슈가 발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등 비교적 정확하고 효과적인 보도도 있으나 동물실험 등을 통해 입증됐다고 하는 항암 효과나 불치병 치료제를 보도해 잘 모르는 환자들을 흥분시키는 경우도 있다. 동물 실험에 성공했다고 해도 인간에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한 적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체실험, 부작용 검사 등을 통과해 상품화 되려면 많은 세월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금방 큰일을 낼 것처럼 엄청나게 보도됐던 ‘획기적 치료제’ 소식들이 그 뒤 몇 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으로 묻히는 이유다. 보통 사람들은 의사라고 하면 모든 질병을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의학을 공부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며, 전공의 과정을 끝내면 이제 전문분야를 공부할 자격이 생겼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는 심장학을 전공했는데 그 시작은 전문의 자격을 얻고 전임강사가 된 뒤부터다. 그러나 요사이는 전문 분야도 더 세분화돼 예를 들어 심장학의 경우도 심부전, 부정맥, 심영상 등으로 나뉘어져, 심장학을 한다고 해도 관련 분야의 자세한 것까지 알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의대 졸업장, 전문의 자격증은 공부의 시작일 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 기자들 역시 한 분야에서 전공의를 수료했다고 해도 의학 전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얼마 전 내가 새로 시작한 심장 웰네스센터를 취재하러 온 한 의학 담당 기자(의대 졸업)는 센터의 모든 분야를 체험하고 나서 나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우리 분야의 중점사항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다 알고 있으니까 그냥 제 질문에 답해주시면 됩니다” 하고 진행했다. 질문은 내가 의도하는 방향을 벗어났지만 나는 그대로 지나갔다. 결국 우리 센터의 주요 사항은 전달되지 않았다. 방송국에 광고, 홍보 효과를 바라고 교섭을 하는 병원도 많다. 그러나 그 홍보 효과는 정말로 진실한 홍보가 아니라면 얼마 가지를 않는다. 언론은 확실한 진실을 객관적으로 시청자에게 알리는 역할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생로병사에 대해 계속 방송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으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인간의 생과 사는 비밀이 아니다. 인간 게놈이 밝혀졌지만 하느님이 내리신 모든 사항을 인간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의학은 모르는 부분이 밝혀진 부분보다 훨씬 많다. 요즈음 인간 복제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이제 인간이 역사상 상상한 것들이 모두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인간의 모르는 부분이 모두 파헤쳐진다면 신의 영역에 도전하게 돼 마야족의 예언이 우리 지구상에 그대로 맞아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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