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호 박현준⁄ 2012.10.15 11:36:41
내가 전공의를 할 때인 1970년대 중, 후반은 우리 의과대학의 도약기로, 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신 선생님들이 각 과에 돌아온 시기였다. 우리 소아과도 암을 전공하신 김병수 선생님, 혈액학의 김길영 선생님, 신장학의 김병길 선생님이 돌아오면서 활기를 띄게 됐고 이어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들이 각 분야의 선도적 역할을 하면서 오늘날의 아동 병원이 탄생하는 데 주춧돌이 됐다. 이 당시 소아 심장학은 수술 결과나, 진단기기 면에서 선진국에 다소 뒤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외국 의사를 초빙해 진단이나 수술 방법을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국내 모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소아 심장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있는 여성 의사가 내한한 일이 있었다. 마침 우리 대학교에서 환자 진단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그 분을 초청해 의견을 듣는 기회가 있었다. 단심실(정상은 심실이 두 개인데 이 경우는 한 개인 심장기형)에 폐동맥협착(폐동맥이 좁아져 있는 상황)이 있었으나 진단 시에 폐동맥 내로 카테터(압력도 재고 조용술도 할 수 있는 튜브)가 들어가지 못한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에게 어떤 수술을 해주냐’는 것에 대한 주제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여의사가 “왜 폐동맥의 압력을 측정하지 않았느냐? 이 상태로는 수술을 논할 수 없다”면서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반드시 카테터를 폐동맥 내로 집어넣는다”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의사에게 “그렇다면 필요한 장비를 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 며칠 후에 와서 폐동맥에 카테터를 넣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여의사는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난감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환자에서 폐동맥 내로 카테터를 넣었다는 보고는 들은 기억이 없다. 특히 이 환자는 두 가지의 폐동맥 협착이 함께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약간 질책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 여의사, 한국에 와서 소위 폼 좀 잡으려 했던 것인데 잡을 폼이 있지, 학문에서 안 된다는 것을 된다고 장담을 하다니…. 그 당시는 소아 심장학 분야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우리의 수준을 낮게 보고 있었다. 외국 자료만 인용말고 ‘우리 자료’ 만들어야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면서 우리 소아 심장학 분야는 모든 면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게 됐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1990년대 말 우리나라 최초의 심장 혈관 병원을 개원하면서 소아 심장학과가 개설됐고, 하루 소아심장 입원 환자가 60여 명이 넘어 미국 의사들을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임상 분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운동치료 클리닉을 맡게 돼 소아 심장학 분야를 떠나 있다가 정년을 맞았는데 소아 심장학회가 고맙게도 고별 강연을 할 기회를 주어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다른 연제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후배들이 외국의 통계를 많이 인용하는 장면을 보고 내 강연 말미에 “이제는 외국의 논문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그들을 앞서갈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특히 내가 그날 강의했던 “소아 심장 질환의 재활 분야에서는 우리가 앞서갈 수가 있다. 후배들이 선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 바가 있다. IT, 예능 분야 등 이미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분야도 있는데 이제 임상의학도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세계 각국에서 질병 치료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날도 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