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기에 앞서 들리는 그녀의 핸드폰 벨소리. 독특한 선율이 귀를 사로잡아 벨소리에 대해 묻자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나오는 ‘방금 그 노랫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매번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해당 공연에 나오는 아리아를 벨소리로 해놓는다”며 “내년엔 토스카 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준 양수화 글로리아오페라단 단장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글로리아오페라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양 단장은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중 한 명인 로시니가 24세 때 작곡한 작품으로, 스페인에서 한바탕 벌어지는 연애사건을 다룬다. 18세기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옛 도시 세비야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우연히 한 번 본 로지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창문 밑에서 세레나데를 불러 사랑을 호소하지만 그녀의 후견인인 의사 바르톨로가 항시 감시하고 있기에 반응이 없다. 이렇게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는 백작 앞에 만능해결사이자 이발사인 피가로가 등장하면서 오페라가 전개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코믹오페라의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글로리아오페라단 21주년 기념 공연으로 굳이 이 작품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양 단장은 대뜸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싸이 이야기를 꺼냈다. “싸이가 코믹스런 ‘강남스타일’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 사람들은 웃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글로리아오페라단은 그동안 고전적이고 무거운 작품을 주로 선보였는데 관객들이 재밌게 보고, 즐기고, 웃을 수 있는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작년부터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웃음).” 오페라는 무겁다는 상식 깨는 공연 오페라는 주로 삼각관계로 슬프게 끝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만큼은 공연을 본 뒤 가뿐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양 단장은 웃어보였다. 소품도 많이 들어갔고, 적당한 춤도 들어갔고, 중간 중간 재밌는 스토리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번 공연에는 이탈리아 명문 오페라인 라 스칼라의 주역들이 함께해 눈길을 끈다. 로지나 역은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치냐, 박상영, 이지현이 맡았고 알마비바 역으로는 테너 알렉산드로 루치아노, 전병호, 서필이 열연한다. 바리톤 한경석, 박정섭, 김종표는 피가로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유럽 오페라계의 전문지휘자 스테파노 세게도니의 탁월한 해석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오페라 연출계의 떠오르는 별 안토니오 페트리스,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돌아온 최이순 연출이 공동 연출을 맡는다. 화려한 캐스팅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특히 피가로 역의 김종표가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종표는 양 단장이 지난해 글로리아오페라단 20주년을 맞아 창설한 ‘양수화 성악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콩쿠르에 대해 묻자 양 단장은 쑥스러운 기색부터 내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콩쿠르가 처음엔 민망했다는 것. 하지만 이를 계기로 더욱 책임감을 갖자고 생각했다. “지난해 글로리아오페라단이 20주년을 맞았는데 제가 받은 사랑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서로 경쟁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콩쿠르를 통해 능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고, 이 신인들과 기존 성악가들이 경쟁하면서 윈윈하는 효과가 있죠. 대상을 받은 김종표 씨가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 어렵다고 하기에 ‘박사 학위 따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어요. 지금은 너무 잘 해서 칭찬을 받아요. 능력 있는 후배들을 발굴하고 이끌어주는 게 선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콩쿠르를 키워나갈 거예요. 제 자식한테도 이 콩쿠르를 꼭 이어가라고 신신당부했어요(웃음).” 올해에도 ‘제2회 양수화 성악콩쿠르’가 서울 바로크 챔버홀에서 11월 8일과 15일에 열린다. 오페라단을 꾸리고 콩쿠르까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지만 양 단장은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할 일이라고 말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 시편에서 솔로몬과 다윗에 관한 내용을 읽다가 시, 모든 악기, 호흡이 있는 연주로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내용을 발견했고, 오페라에 악기, 성악, 무용, 무대미술 등이 모두 들어갔다고 느꼈다. 그리고 영광이 깃든 ‘글로리아’라는 명칭을 오페라단에 쓰게 됐다. 하지만 항상 영광스런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힘든 나날들도 많았다. “현재는 국립-시립 오페라단들이 있지만 우리나라 오페라는 민간 오페라단에서 1948년 처음 시작됐죠. 지원 부분이 부족한 점이 있어서 정말 혼신을 다해서 매번 작품을 올렸어요. 예전엔 제가 오페라단 막내였는데 어느새 고참이 돼버렸네요(웃음). 저는 지금도 국립 오페라단이 우리나라 오페라단들을 잘 끌어가야 한다고 말해요. 국립이 잘 끌고 나가야 민간도 자극을 받아서 잘 하거든요. 서로 도와줄 부분은 도와주고, 또 경쟁하면서 발전이 이뤄지죠.”
‘처음’ 많은 그녀의 인생 글로리아오페라단 창단의 첫 순간을 회상하던 양 단장은 유독 ‘처음’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오페라계에서 활약한 그에겐 유독 처음인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기억나는 첫 순간은 창작 오페라 ‘춘향전’을 처음으로 일본과 유럽 등지에 선보였던 때다. 일본에 아직 오페라하우스가 없던 시절, 양 단장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춘향전’을 소개했다.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들지 않아 목에 칼을 차고 있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울더라”며 “문화적인 정서는 모두 교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양 단장은 오페라의 가능성을 넓게 봤다. 사실 아직 오페라에는 대중화된 뮤지컬에 비해 ‘어렵다’ ‘지루하다’ ‘다가가기 어렵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양 단장도 “아직 한국에서 오페라 티켓을 스스럼없이 사는 문화는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오페라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았다. “마이크를 사용하는 뮤지컬은 화끈한 우리나라 국민 정서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오페라는 중후한 맛이 있죠. 오페라가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많이 다양해졌어요. 인터넷에 클릭 한 번만 하면 이런 다양한 정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시대고요. 공연에 대해 미리 스토리 정도를 살펴보고 온다면 훨씬 공연을 즐길 수 있어요. 오페라도 뮤지컬처럼 재미있답니다(웃음). 대한민국이 오페라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성악가들이 많죠. 한국 오페라의 역사가 유럽보다 짧긴 하지만 그렇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물론 노력이 뒷받침돼야죠.”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양 단장도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지난해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객석을 나누는 문화 나눔을 몸소 실천했는데, 이번 공연에도 저소득층과 국군 장병들을 초대한다. 양 단장은 “이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층에게 특히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들이 우리 문화 또한 이끌어갈 인재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오페라 관람 모임 등도 추천했다. 개인이 오페라 티켓을 사기엔 힘든 부분이 있기에 단체가 함께 기금을 마련하면 부담도 덜고 오페라 마니아층도 더욱 많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내년에 새로 올릴 오페라를 준비하고 있는 양 단장은 유럽 오페라 뿐 아니라 최근 1000만 관객을 넘보고 있는 영화 ‘광해’도 볼 생각이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작품이 ‘왜’ 인기가 있는지,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요소는 무엇인기 알기 위해서이다. “생활의 반이 오페라와 연관돼요. 오페라와 함께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오페라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매년 오페라 관객이 늘어가는 것을 몸소 봐왔거든요. 여기서 만족할 게 아니라 오페라단이 가슴 깊이 책임감을 새겨야 해요. 앞으로도 평생 오페라와 함께 살겠습니다(웃음).”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