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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여행이 가져다 준 행복에 감사

30년 전 방미 국제학회 참석이 처음, 비행기 놓칠 뻔한 아찔한 기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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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9호 박현준⁄ 2012.11.05 11:12:29

내가 처음 해외에 나갔던 것은 1982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학회 참가 때였다. 마닐라 학회를 마치고 소아과 김병길 선생님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 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흥분됐던 추억이다. 다음 해에 1년간의 일본 연수 그리고 1984년에 미국 연수를 거치면서 외국 여행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여행 마니아가 됐다. 미국의 학회에 거의 참석하게 됐음은 물론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동기들의 모임(주로 미국 플로리다에서)에도 단골 멤버였다. 이 모임에 처음 수년 동안은 한국에서 참가한 동기는 내가 유일했다. 마이애미 시티, 포트로더데일, 올랜도, 탐파 등 플로리다 주에서 좋다는 도시는 다 다니며 골프 모임을 매년 겨울에 함께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소아과 선배 선생님들의 가족, 즉 전굉필 현 연세의대 동창회장 윤형선 선생님, 장길덕 선생님, 백태우 선생님, 지금은 작고하신 황한기 선생님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등 매년 겨울이면 빠짐없이 외국 여행을 했다. 하와이 여행도 3번 갔다. 지금은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아시아 여행객이 적어서였는지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카와이섬의 프린스빌리조트…. 수없이 넓은 모래사장을 앞마당으로 자리 잡고 있고, 9홀짜리 골프장이 3개가 바로 옆에 있었다. 또 당시 세계 골프장 순위 20위에 있던 프린스 골프 앤드 컨트리 클럽의 웅대한 자태 등 우리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마우이와 빅아일랜드 여행 후 일행 중 몇 분이 병원 업무 때문에 미리 떠나려고 했는데 당시 서울에 눈이 많이 와서 출발이 연기됐다. 우리는 오하우 섬의 유명한 호텔인 힐튼 하와이언 빌리지의 외부 카페에서 맥주잔을 기울였는데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노래가 시작됐다. 약간 취기가 돌면서 흥겹게 노래가 계속됐다. 그런데 누가 신고를 했을까? 경찰 오토바이가 와서 우리를 보고는 그냥 돌아갔고 우리의 흥겨운 시간은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이국의 백사장에 사방에 불이 지펴져서 아름다움을 더하는 정경 속에서 불렀던 우리들의 노래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북 유럽 여행 중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밤 9시경에 골프를 시작해서 새벽까지 치기도 했다. 마침 백야여서 가능했던 한밤중의 골프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됐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골프 여행이 계속됐다. 팜스프링스, 페블비치, 올랜도, 캐나다 등 비행장에서 골프장으로 직행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번은 올랜도에서 덴버를 거쳐서 팜스프링스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우리 일행은 가족까지 거의 20명이나 됐다. 인솔자였던 나는 잠을 자느라고 비행기에서 기장의 안내 방송을 듣지를 못했다. 덴버에서 비행기가 서자 그 비행기를 다시 타고 팜스프링스까지 가는 줄로 알았던 우리는 짐을 그대로 두고 휴식을 위해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우리가 나오고 나서 그 출입구의 봉쇄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황급히 알아보니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통사정해 문을 열고 비행기로 다시 들어가 짐을 찾아서 다른 비행기까지 전력 질주했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기다려준 비행기를 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만이 아니었다. 한 외국인이 또 있었는데 그와 얘기해보니 그는 미국인이고, 더욱 놀란 사실은 심장 외과의사로 한국에도 온 일이 있는데 자신은 열심히 팜스프링스 학회에서 발표할 것을 준비 하다가 안내 방송을 놓쳤다는 것이었다. 당시 인솔자인 나의 잔등 을 진땀으로 흠뻑 젖게 한 사건이었다. 호주를 거쳐서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버스로 10여 시간 이동해 찾아간 밀포드사운드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골프가 치고 싶은 욕심에 내가 제안해서 4인승 비행기 몇대로 30분여에 걸쳐서 돌아온 적이 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미를 호소하면서 나를 원망했지만 골프장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참가했으니 그 당시 골프의 열기들이 어떠했는지는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15년 정도 계속됐고 그 후 내가 연세대 농구 부장을 맡으면서 뜸해졌다. 이 여행이 어찌 보면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해를 아끼며 건전하게 지내다가 한 여행이 우리 모두에게 가져다 준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지금에 우리를 있게 하는 한 요인이었다고도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함께 여행 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돼 지금도 함께 자리를 하는 일이 많다. 여행을 하기 전엔 기대감에 오히려 일을 열심히 했으며 여행 후에도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다. 짧은 인생에서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추억들을 지금도 가끔 꿈속에서나마 다시 찾기도 한다. - 설준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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