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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년 전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전남 고흥 야막고분 발굴조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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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1호 왕진오⁄ 2012.11.26 09:04:18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최장락)는 27일 오후 2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고흥 야막리 야막고분'에 관한 발굴 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야막고분은 그 입지와 무덤형식, 출토유물 등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있어서 주목된다. 입지와 무덤형식에서는 서남해안 일대의 고대 연안항로 상에서 확인되고 있는 소위 왜계(倭系) 석실을 채용한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구릉에 1기만 조영(造營)되는 입지의 독자성과 분구(墳丘) 표면에 돌을 깔아 마무리하는 무덤형식(‘즙석시설’이라고 함)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즙석시설(葺石施設)은 시기와 지역이 국한된 드문 무덤형식이지만, 일본에서는 고분시대(古墳時代, 일본의 고고학적인 시대구분으로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말에 해당)에 일본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무덤형식이다. 야막 고분의 출토유물은 중국제 청동거울, 왜계 철제 갑옷과 투구 그리고 검(劒), 대도(大刀), 창(矛), 화살촉 등 무기류, 광구소호(廣口小壺, 입구가 크고 몸통이 작은 항아리) 그리고 환옥(環玉)과 곡옥(曲玉) 등 장신구류를 포함하여 150여 점에 이른다. 특히 갑옷과 투구는 삼각판혁철판갑(三角板革綴板甲, 삼각형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이어 붙여 만든 갑옷)과 삼각판혁철충각부주(三角板革綴衝角付冑, 삼각형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정수리에서 이마 부분까지 각이 진 투구) 형식으로 제작 시기는 5세기 전반으로 보고 있으며, 그 제작지에 대해서는 국내산과 일본산으로 보는 주장들이 나누어져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출토사례를 비교하면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고 수량 또한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청동거울은 뒷면에 쌍두용문(雙頭龍文)이라는 문양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위지삼공’(位至三公, 높은 벼슬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문구)이라는 문자를 새긴 것으로, 이러한 양식은 3~4세기에 해당하는 중국 위(魏) 말에서 서진(西晉) 대에 중국의 낙양을 중심으로 한 북방지역에서 주로 제작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야막 고분은 지역적인 특징보다는 외래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고분으로 특히 고대 일본과의 관계가 주목된다. 지난 2006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고분(雁洞古墳)에서도 야막고분과 유사한 외래계(外來系)의 양상들(입지의 독자성, 분구의 즙석시설, 무덤방 구조, 왜계 갑옷과 투구, 중국제 청동거울)이 확인된 바 있다. 또 남해안과 서해안의 고대 연안항로 상에 위치하는 일부 지역에서도 그 지역의 전통과는 다른 가야, 왜, 백제, 중국 등 외래계의 양상들이 확인되는 사례가 있었다. 이번 발굴결과는 당시 연안항로를 통행한 교역주체들의 세력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 외래계의 특징들, 특히 일본적 요소로 볼 수 있는 유물과 무덤양식으로 인하여 그 계보와 무덤의 주인에 대한 논란이 국내학계는 물론 일본학계에서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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