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아트링크에서의 귀국전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이피 작가의 개인전 ‘이피의 진기한 캐비넷’이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14일부터 12월 9일까지 열린다. 귀국 이후 이피 작가는 2년 동안 3회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의 그룹전에 참여해 다양한 매체의 조명을 받은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다수의 설치 조각물과 회화 작품이 선보이는데 설치 조각은 ‘이상의 혼 장례’ ‘하늘달동네 여자’ 등이고 회화 작품은 ‘이름 없는 생물 대백과’ 시리즈다. “나는 이상의 불행한 혼례를 제작해 보기로 한다. 결혼 행진이 장례 행렬이 된 그 불우한 식민지의 혼례. 가장 순결하지만 가장 비루하고 비천하고 남루한 혼례. 신방이 타국의 감옥이 되어버린 혼례. 처음엔 결혼행진곡이 들리지만 곧 장송곡이 들리는 그 불우의 예식장. 나는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고귀한 재료인 레이스와 가장 비루하고 냄새나는 재료인 마른 생선의 껍질을 사용했다."
이처럼 이피의 작품은 만드는 과정 속에서 서사가 탄생하는 매우 희귀한 작품들이다. 콘셉트가 선행하기보다 제작 ‘과정’ 속에서 작품의 향방이 바뀌는 작품들이어서 보면 볼수록 작품 속에서 무수한 서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피는 이번 작품집들에서 자신의 작품의 제작 과정의 서사를 여러 장르의 글들로 모두 기록해 두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작품은 ‘진기한 캐비넷’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피가 생산한 ‘상상 동식물 사전’ 혹은 ‘산해경’ ‘이름 없는 생물 대백과 사전’이라 말할 수 있는데 참으로 특이한 형상들이 발상 이후의 제작 과정 속에서 탄생하고 있다.
“나는 화가로서의 특별한 일기를 기록하고자 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잠들려고 하면 잠과 현실 사이 입면기 환각 작용이 살포시 상영되듯이 나에겐 어떤 ‘변용’의 시간이 도래했다. 나의 형상들은 가시적인 것들과 비가시적인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 에이리언들 같았다. 나는 그 형상들에 이름을 붙여 주면서 나 또한 ‘이피세 LeeFicene’라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는 미술계에서 매우 특이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피가 생산한 특이한 생산물들, 살아 움직이는 백과사전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