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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선생님 덕분에 마음까지 치료 받아요”

[세브란스병원 가정간호사 동행 취재]세브란스 가정방문 간호로 세상과 소통하는 한경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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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3-304호 김금영⁄ 2012.12.10 11:13:36

“즐거운 선생님 오셨네요!” 부쩍 추워졌지만 화창한 날씨가 사람들을 밖으로 이끈다. 하지만 한경형(28) 씨는 방 안에서 물끄러미 밖을 바라본다. 한창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나이지만 21살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시작된 허리의 통증이 지금까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11월 16일 방문한 한 씨의 집은 우울함보다 생기가 넘쳤다. 이재영 간호사가 들어서자마자 ‘즐거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돌아와 호기심을 자극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분이라 ‘즐거운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핸드폰에도 ‘즐거운 선생님’이라고 저장해놨어요. 가정방문할 예정이라고 문자가 오면 아들에게 알려주는데 낯을 잘 가리는 아들도 이 간호사를 잘 따라요. 가정방문이 없을 때도 매번 전화해서 ‘경형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신경 써주세요. 기운 나는 글들도 문자로 보내 주시고요(어머니 이승희 씨).” 문을 열며 기자를 맞이해준 한 씨의 어머니 이승희 씨는 처음엔 낯선 기자의 방문에 어색한 기색을 내비쳤다.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던 한 씨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뭘 그리 쑥스러워하냐”며 넉살 좋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이 간호사의 싹싹함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척추에 거대세포 종양이 생겨 하반신이 마비된 한 씨는 소변 주머니를 교체하고 등 쪽의 종양을 치료받을 때 어쩔 수 없이 몸이 노출되는 부분이 있다. 28세의 건장한 청년이다 보니 예민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날 한 씨는 조금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이 간호사에게 순순히 등을 내보였다. 처음 가정방문 간호를 받을 당시엔 거부감이 들어 소변줄을 자신이 직접 갈겠다고 했다지만 이젠 이 간호사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 전해주는 즐거운 선생님, 간호사 “그동안 많은 간호사 분들이 다녀갔는데 (이 간호사가) 가장 편해요. 그동안 정말 웃을 일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가워요. 재밌는 얘기를 기억했다가 들려주기도 하시고요. 주위에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있으니 힘내라고, 기적을 믿으라고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주세요. 제가 말주변도 없는데 감사할 따름이죠(한경형 씨).” 고등학교 시절의 한 씨는 아픈 일로 속 썩인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매우 건강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골프를 비롯해 각종 운동에 재능이 있던 한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체육대학교에 입학하기를 꿈꿨다. 대학에 가기 전 미리 군대를 다녀오겠다는 의지 하에 21살 젊은 나이에 입대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군병원에서 통증 치료를 받았지만 점점 아픔이 더해갔다. 진통주사제를 맞아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밤에 찾아왔다. 처음엔 디스크 같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후에 계속되는 통증에 전문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결국 2007년 1월 척추에 거대 세포 종양이 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는다. 2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했다. 같은 해 9월 다시 종양 제거 재수술에 들어갔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수없이 반복된 수술과 치료…. 처음엔 그래도 치료를 받고 걸을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지팡이를 쓰게 되다가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걷는 것이 힘들어져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다. 계속되는 치료에 어머니와 한 씨 모두 지쳐갔다. 병원에 있는 것이 지겨울 정도였지만 한편으로는 병원에서 퇴원하기 싫기도 했다고. “퇴원 권고를 받았는데 솔직히 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아들을 집에서 치료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집에 가면 혹시라도 더 몸이 나빠질까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절대로 퇴원 못 한다고 했었죠. 저 멀리서 의사 선생님 얼굴이 보이면 또 퇴원하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저를 불러도 못 들은 척 바로 도망 다니기까지 했어요(어머니 이승희 씨).” 상태 나빠질까 병원 퇴원 피했지만 가정방문 간호로 안심 그러던 찰나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방문 간호 제도를 소개 받았다. 처음엔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정방문 간호를 받게 된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병원을 갈 때마다 직접 움직일 수가 없어 119 구급차를 불러야 했지만 이젠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낯선 병원 분위기에 힘들어하던 한 씨의 마음도 보다 안정됐고, 어머니 또한 언저리에서 아들이 치료 받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제는 상세한 설명까지 들으면서 곁에 있을 수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최근엔 이 간호사가 한 씨를 위한 치료 방법을 고심하기도 했다. 한 씨 등에 있는 종양에 구멍이 생겨 자꾸 고름이 흘러 나왔는데 처음엔 이 고름을 수건으로 닦았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고름을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등 밑에 천도 깔아보고 기저귀까지 착용해봤지만 더운 여름엔 찝찝하고 물집까지 잡히기 일쑤였다. 이에 이 간호사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다. 소변주머니에 소변을 받아내듯 종양의 구멍 부분에 튜브를 연결해 고름을 받으니 한결 편안해졌다. “(이 간호사가) 그냥 주어진 상처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제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방법을 항상 고민해 주셨어요. 예전엔 고름 때문에 새벽에 잠도 못 잤는데 덕분에 이젠 쾌적한 상태에서 잠도 잘 자요(한경형 씨).” 이에 이 간호사는 “한 씨가 내 아들보다 어려서 그런지 꼭 아들 같고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고 웃으며 답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이런 마음들이 더 큰 배려를 불러오는 것일까. 이날 한 씨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자가 더 편할 수 있도록 의자를 준비해 달라고 하고, 혹여나 목이 마르지 않을까 이야기 도중 식혜를 가져다 달라고 하기도 했다.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내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이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자 하는 모자(母子)의 노력이다. 예전엔 ‘왜 빨리 아들의 상태를 돌봐주지 못했을까’ ‘내가 아파서 어머니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은 놓으려 한다. “울고불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울한 생각을 하면 더 우울해질 뿐이죠. 또 제가 계속 우울한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가 가슴 아파하실까봐 염려돼요. 예전엔 상처가 생겨도 금방 괜찮아졌는데 이젠 상처 하나하나 치료하는 일이 무서운 게 사실이에요. 골반 위의 상체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몸을 잘 가눌 수 없어서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무서웠던 세상이 따뜻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한경형 씨).” 한 씨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이 효자”라며 “예전엔 대소변 문제 때문에 혹여나 나를 불편하게 할까봐 물도 밥도 잘 안 먹으려고 하더라”며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힘들었던 시기를 많이 거쳤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을 바라보고 살아가자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인터뷰에도 응하기로 용기를 냈다. 한 씨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긴 책을 본 적이 있다”며 “그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나누다 한 씨의 방을 둘러보니 컴퓨터와 여러 만화책들이 눈에 띄었다. 한 씨는 만화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기자와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기죽지 않고 울기보다 웃으려고 노력하는 한 씨의 모습이 방 안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방을 둘러보다 천장을 바라보니 야광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한 씨가 어머니에게 부탁한 것이다. 지금은 방 천장에 붙어 있는 야광별 스티커를 바라보지만 한 씨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 건강해져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별을 보러 다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도 아들이 걸어 다니는 꿈을 꿔요. 이젠 종양 제거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실망이 크기도 했지만 절망하진 않아요. 아들과 힘내서 살아가야죠(어머니 이승희 씨).” “다시 골프도 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기운 내려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기운을 냈듯이 이번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한경형 씨).” 가정간호 제도란? 가정간호란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전문 간호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제도이다. 전문자격증을 가진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주치의의 처방 내용에 따라 각종 치료 및 처치, 교육, 상담 등을 하는 입원대체 서비스로, 세브란스병원은 1994년 4월부터 가정간호 시범 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요 대상은 말기 암환자, 뇌혈관 질환, 욕창 치료, 재활치료와 영양장애, 당뇨, 고혈압, 폐질환 등의 만성질환자다. 가정전문 간호사들은 필요할 때 환자의 상처 부위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외래 의무기록에 부착시키거나 직접 주치의에게 전달해 주치의가 환자의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증세 변화로 외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외래 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입원비와 병원 왕복 수고를 덜면서도, 병원 치료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가정간호를 받고 싶으면 입원이나 외래에서 담당 간호사에게 신청하면 의료진이 가능 여부를 판단해 결정한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에는 총 9명의 가정간호사가 있다. 1회 비용은 보험적용이 돼 1만370원 정도에 처치, 치료비, 약품비가 보험 20% 수가로 추가된다. 단, 한 달에 8회 방문까지만 보험이 적용된다. 세브란스병원의 가정간호 서비스는 현재 서울 전지역(강동구, 송파구, 강남 일부지역 제외), 인천, 김포, 일산 등 수도권 일부지역에 적용된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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