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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취재]“마지막까지사랑한다고얘기해주고 싶어요”

서로 사랑하며 마지막 순간 준비하는 황동오·이규숙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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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5호 김금영⁄ 2012.12.17 13:57:20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12월 10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이규숙 씨가 보여준 사진 속 한 남자의 기도는 그렇게 깊은 인상을 줬다. “얼마 전 병원 로비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보러 갔는데 가족과 좀 더 함께 있고 싶다고 기도를 하더라고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있어요.” 웃으며 말하는 이 씨의 눈에 살짝 눈물이 머금어진다. 사진 속 남자는 이 씨의 남편 황동오(52) 씨로 직장암을 앓고 있다. 평소엔 아주 건강해 산악인으로도 활동했던 남편에게 병이 있을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혈변을 봤을 때 단순히 치질이라고 생각했지만 2010년 4월 직장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후 4차례 수술을 거치고 4차례 항암치료와 1차례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황 씨와 이 씨는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2012년 10월 30일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를 먼저 찾은 이도 이 씨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죽음도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나는 아니겠지’ ‘나만 아니면 돼’라고 여기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과정이에요. 준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닥뜨리면 가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 닥쳐오는 슬픔에 아파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호스피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저는 호스피스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 씨가 호스피스 상담실 문을 직접 두드렸을 땐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외국에서 호스피스가 활성화돼 있는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 쉬쉬하는 분위기가 많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가는 곳이라는 인식에,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남편에게 처음으로 호스피스에 대해 말했을 때도 “내가 죽는 거냐”고 두려운 반응이 먼저 돌아왔다. 그 때문에 가족들과도 갈등을 겪었지만 그건 모두 닥쳐오는 슬픔을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뼈아픈 거부 반응이었다. 지금은 일분일초 시간을 함께 보내며 다가오는 그 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호스피스…돌아온 건 따뜻한 관심 이날 인터뷰에 함께 동행한 서민정 간호사를 보자마자 이 씨는 고맙고 반가운 기색을 표했다. 지금도 이 씨는 서 간호사를 처음으로 봤던 날을 기억한다. 혼자 두려운 마음으로 호스피스 사무실을 찾았을 때 서 간호사는 이 씨에게 여러 가지를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서 호스피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항상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돌봐주세요. 남편도 서 간호사가 오면 좋아해요. 최근엔 남편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중환자실에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좀 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남편이 원하는 편안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1인실을 추천해 주셨어요. 남편이 집이 그립다고 해서 1인실을 집처럼 꾸미려고 하거든요. 중환자실에 가면 하루에 면회가 두 번밖에 안 되는데 그러면 남편이 너무 외롭잖아요. 남편의 임종을 지키고 싶은데 병실에 있지 못하다가 나중에 통보를 받을 수도 있고요. 아마 몰랐으면 중환자실에 그냥 떠밀리듯 갔겠죠.” 이처럼 이 씨는 서 간호사와 많은 것을 상담한다. 투병 생활하다 일일이 의사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몰랐던 부분에 대해 스스럼없이 물어본다. 서 간호사 또한 황 씨의 상태를 살펴보면서 이 씨에게 여러 조언과 정보를 주며 길잡이가 돼주고, 최종 선택은 이 씨와 황 씨가 내린다. 하지만 꼭 형식적인 정보 교환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도 서 간호사와 이 씨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이 대화 자체는 긴 투병 생활로 지친 이 씨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이 씨는 서 간호사 뿐 아니라 호스피스 제도에 대해서도 감사함을 표했다. 호스피스에서는 전문 간호사 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자원 봉사자들을 환자와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혼자서는 감기기 힘든 남편의 머리도 감겨주고 함께 기도도 해준다. 계속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자원 봉사자들에게 이 씨는 “우리 가족에게 준 도움만큼 우리도 봉사하고 싶다”며 “믿음이 없으면 가족들도 하기 힘든 일이 있는데, 아무런 대가 없이 신앙과 사랑의 힘으로 돌봐주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연신 고마운 기색을 내비쳤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 씨와 황 씨를 위해 호스피스 팀은 병원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4월 달부터 남편이 믿음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권했는데 이제는 남편이 더 열심히 기도한다고. 발밑의 탁상에는 주기도문도 붙여놔 바로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전 남편이 통증 없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기도해요. 남편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요. 가족과 집에 가서 밥 한 번 먹고 싶다고 소박한 기도를 하기도 하죠. 가족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요.” “태어날 때도 많은 준비하듯 떠날 때도 준비가 필요해” 예전에는 서로 사업을 하느라 바빴던 부부는 이제 함께 기도도 하고 못했던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고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장례식장과 영정 사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봐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서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남편이 죽으면 납골당을 어디에 해 달라고 이미 제게 얘기해서 예약을 해놨어요. 영정사진도 미리 보여줬고 액자는 이걸로 해달라고까지 남편이 결정해서 이야기했죠. 둘이서는 가슴 아파서 못했을 이야기를 호스피스 팀이 끄집어내줬어요.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서로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얘기를 해주라고도 했고요. 그 다음부터 남편과 저는 억눌러왔던 것들을 표현할 줄 알게 됐어요. 눈물만 흘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가오는 앞날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시간 또한 중요하고 꼭 필요해요.”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씨지만 처음 남편이 수술대에 올랐을 때는 우울증에 걸렸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고통, 슬픔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의 마지막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아이들을 혼자서 키울 수 있도록 경제적 능력을 다졌고, 아이들도 아버지의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도록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호스피스 제도를 알려주고 아버지의 곁을 지키게 하면서 후에 내게 죽음이 다가오게 되면 똑같이 준비를 해달라고 말한다”며 “꼭 아버지 옆에 묻어달라고 이미 이야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편히 갈 수 있도록 씩씩한 모습 보여주고파” 혹자는 자식들에게 너무 잔인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씨는 호스피스가 가족들과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제도라고 이야기했다. 만약 교통사고를 당하면 가족들이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지만 호스피스에서는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준다는 것. 사람들이 태어날 때는 주변에서 많은 준비를 하는데 떠날 때 또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의 부담감이 없이, 아픔 없이 갈 수 있도록 늘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 씨와 아이들은 노력하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크리스마스잖아요.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 올해는 쓸쓸한 크리스마스가 되겠네’라고…. 남편이 크리스마스 때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거든요. 이제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에요. 하지만 전 왜 쓸쓸하냐고 되물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아버지를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데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아니냐고요. 즐거우면서 아빠의 마지막 길도 같이 하는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얘기해줬어요. ‘함께 시간을 더 보낼 걸’ 하는 후회가 들지 않을 정도로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지금은 의식이 많이 흐려진 남편이지만 의식을 차렸을 당시 남편이 안심할 수 있도록 많은 말들을 했다. “애들 잘 키울게” “걱정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당신 최고야” “당신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잘 견뎌봐” “할 수 있어” 끊임없이 귀에다 속삭였다. 의식이 혼미한 지금도 남편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희망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고 손도 꼭 잡아준다. 힘든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다. 지금 이 씨가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남겨진 식구들이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남편도 안심하고 가지 않을까요? 우리 가족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서로의 사랑도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못해줬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랑을 발견했죠. 죽음을 부정하면 안 돼요. 그러면 모두가 가슴만 아플 뿐이에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잘 보내줘야 하죠. 우리 가족은 남편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생각이에요.” 죽음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반겨줬던 이 씨. 이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 황 씨의 옆을 지키고 있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면서 코끝이 자꾸 찡해지는 건 추운 날씨로 걸린 감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따뜻한 사랑과 소중한 매순간이 자꾸 생각나서인 걸까. +호스피스란? 전문 간호사가 규칙적으로 정한 시간에 병실이나 가정으로 방문해 환자를 진찰하고 상담하며, 통증 및 기타 증상 조절을 위해 담당의사와 상의해 간호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가족이 환자를 잘 돌봐줄 수 있도록 간호 방법을 알려주고 상담을 하며, 사회복지사와 가족상담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 및 지지를 제공한다.

가정 간호에 필요한 의료기구들을 빌려 주고 사용법에 대해 교육하며, 교육 받은 자원봉사자가 정한 시간에 환자를 방문해 환자와 가족에게 도움을 준다. 모든 도움은 무료로 제공된다. 호스피스 신청방법으로는 주치의가 요청할 수 있고, 환자 및 가족이 주치의에게 요청할 수 있다. 세브란스 호스피스는 1978년 1월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의 Marian Kingsley(한국명: 왕매련) 교수가 직접 영국 빅토리아 병원, 미국 코네티컷 가정간호 연수를 받은 뒤 호스피스 관련 최신자료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1988년 3월부터 호스피스 가정방문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가정형, 산재형, 병동형으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제공해 왔으며, 2003년엔 아동호스피스 운영을 마련했다. 현재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4층에 호스피스 사무실이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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