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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현장 취재]헤어진 아들과 만남, 따뜻했던 그해 겨울

“혼자가 아니야” 두 손 꼭 잡은 고(故) 윤 씨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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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6호 김금영⁄ 2012.12.26 17:44:06

매년 겨울이 되면 김미정 봉사자 관리 책임자는 윤수영(가명) 씨 모자(母子)가 생각난다. 2006년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팀의 간호를 받게 된 윤 씨는 비인후두암을 앓고 있었다. 당시 나이 마흔 하나, 인상은 밝았지만 윤 씨는 유독 혼자서 숨죽여 울 때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에 말수가 적었던 윤 씨는 호스피스 팀의 간호에 점차 자신의 의사 표시를 제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팀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세례를 받고 늘 기도를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듣게 된 윤 씨의 이야기는 마음 한 구석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수영 씨는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서 살고 있었어요. 남편과 아들이 있었지만 별거 상태였죠. 아들과는 5살 때 헤어졌는데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라 많이 외로워했어요. 평소엔 ‘주사를 왜 이상하게 놓냐’는 식으로 주관이 뚜렷하고 하고 싶은 말을 잘 했지만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 아파했어요. 저도 아이가 있는 엄마 입장에서 수영 씨를 보면 많이 안쓰러웠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윤 씨는 남자친구 박상준(가명) 씨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박 씨는 생활비, 병원비를 내주면서 성심성의껏 윤 씨를 돌봤다. 자신의 곁을 늘 지켜주는 남자친구의 존재가 힘이 됐지만 윤 씨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모두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김미정 씨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물으면 윤 씨는 매번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눈물을 머금었다. 이런 윤 씨를 위해 호스피스 팀은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어느덧 16살로 훌쩍 커버린 아들 김상우(가명)와의 상봉. 하지만 한창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혼자 쓸쓸하게 생활했던 아들은 그동안 방황을 많이 한 상태였다. 같이 사는 아버지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고, 학교를 잘 가지 않고 거의 PC방에 있기 일쑤였다. 그런 아들에게 윤 씨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병실에서 수영 씨를 만난 상우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병실에서 한 달 정도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줬죠. 수영 씨도 힘든 상태였지만 상우가 지닌 마음의 상처 또한 컸어요. 그래서 상담 자원봉사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상우의 정서적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담을 진행했고요. 그리고 상우에게 공부도 가르치기 위해서 현직교사 자원봉사자를 소개시켜줬어요.” 아들을 만나 한결 밝아진 윤 씨는 잠시 퇴원해서 아들과 생활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호스피스 팀이 나서서 도와줬다. 일단 호적정리가 필요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남편과 별거 중인 윤 씨의 이혼 서류를 처리해 기초생활 수급자의 혜택과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5살 때 헤어진 아들…호스피스 팀 도움으로 상봉 친정 식구들과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는데, 자존심이 강해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했던 윤 씨의 마음을 헤아려 윤 씨의 언니와 동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윤 씨의 언니와 동생은 윤 씨가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 병원을 방문해 윤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친정 식구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던 윤 씨가 마음의 정리를 서서히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김미정 씨도 도왔다. 그런 윤 씨에게 다시 가슴 아픈 일이 닥쳤다. 아들이 오토바이를 훔쳐서 소년원에 가게 된 것.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윤 씨는 아들 면회를 가고 싶어 했다. ‘혹시 이번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말릴 정도로 몸이 악화된 상황이었지만 간절한 윤 씨의 바람에 호스피스 팀과 남자친구 박 씨 모두 힘을 모았다. “소년원까지 갈 때는 응급차를 불러서 갔어요. 수영 씨가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다행히 응급차 안에서 40여분 면회를 허락받았어요. 수영 씨가 상우에게 김밥과 따끈한 피자를 사주면서 엄마 보는 앞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상우가 막 울더라고요. 그래도 엄마를 처음 봤을 땐 말도 잘 하고 거동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는데 그 때는 수영 씨가 많이 아팠거든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상우에게 윤 씨는 “아빠랑 잘 살아라” “아빠랑 문제가 있으면 맞부딪히지 말고 일단 피해야 한다” “우리 아들 건강해야 한다” 등 이야기를 건넸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상우는 “엄마 왜 그래” “나 나갈 때까지 살아 있어야해” 하면서 그 좋아하던 피자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윤 씨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김미정 씨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물을 흘린 숙연한 순간이었다. 생전 처음 아들과 편지 왕래…호스피스 팀도 함께 울어 그래도 호스피스 팀의 도움으로 아들을 만난 윤 씨는 힘을 내서 병원에서 몇 개월 더 생활했다. 소년원에서 나온 아들도 병실을 함께 지켰다. 특히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호스피스 팀에게 ‘누군가가 계속 나를 찾아온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곧잘 이야기했던 윤 씨는 이들을 위한 선물도 마련했다. 건강했을 때 공단에서 미싱 일을 했다던 윤 씨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래서 십자수를 가르쳐줬는데 금방 배워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수를 놓았다고. 어린 아이가 있던 김미정 씨에게는 십자수랑 시계를 선물로 줬다. 말기암 상태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각 간호사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기억하고 적절한 것으로 직접 십자수를 만들어 선물했다. 김미정 씨는 지금도 그 배려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고 회상했다.

“무뚝뚝하고 지적을 잘 해서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끈끈한 관계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따뜻한 분이었어요. 호스피스 팀에게도 신뢰를 가졌죠. 아들에게서 첫 편지를 받았던 날도 감격에 겨워서 간호사들에게 모두 보여줬어요. 사람들이 그날 함께 편지를 보면서 모두 울었어요. 지금도 그 편지가 기억나네요.” 지금은 고인이 된 윤 씨는 호스피스 팀의 배려로 세상을 떠나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편지를 읽으며 많이 울었지만 늘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에 마음만은 따뜻했을 엄마와 아들. 2012년 12월 겨울. 엄마와 아들의 뭉클한 사랑이 더욱 기억난다. 호스피스란? 전문 간호사가 규칙적으로 정한 시간에 병실이나 가정으로 방문해 환자를 진찰하고 상담하며, 통증 및 기타 증상 조절을 위해 담당의사와 상의해 간호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가족이 환자를 잘 돌봐줄 수 있도록 간호 방법을 알려주고 상담을 하며, 사회복지사와 가족상담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 및 지지를 제공한다. 가정 간호에 필요한 의료기구들을 빌려 주고 사용법에 대해 교육하며, 교육 받은 자원봉사자가 정한 시간에 환자를 방문해 환자와 가족에게 도움을 준다. 모든 도움은 무료로 제공된다. 호스피스 신청방법으로는 주치의가 요청할 수 있고, 환자 및 가족이 주치의에게 요청할 수 있다. 세브란스 호스피스는 1978년 1월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의 Marian Kingsley(한국명: 왕매련) 교수가 직접 영국 빅토리아 병원, 미국 코네티컷 가정간호 연수를 받은 뒤 호스피스 관련 최신자료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1988년 3월부터 호스피스 가정방문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가정형, 산재형, 병동형으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제공해 왔으며, 2003년엔 아동호스피스 운영을 마련했다. 현재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4층에 호스피스 사무실이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2006년 11월 28일 아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엄마한테 편지 쓰는 건 처음인거 같아. 엄마, 오늘은 엄마가 면회를 왔어. 머리 빠져서 두건 두른 모습하고 힘들어서 휠체어 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어. 엄마, 정말 미안해.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는 것도 알면서 나는 왜 이렇게 비뚤어지는 걸까. 미안해, 엄마. 하느님께 맹세하고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고 교회 다니면서 착하게 살게. 엄마, 내가 소년원 나갈 때까지 살아 있어주면 안돼? 나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효도를 한 번 해보고 싶어. 나는 참 못된 불효자야. 엄마가 아픈데도 밖에 싸돌아 댕기고 나쁜 짓이나 하고…. 정말 옆에 있어주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그리고 엄마, 나 아저씨 안 싫어해. 난 아저씨가 정말 좋아. 그냥 쑥스러워서 말을 잘 안 걸은 거야. 난 아저씨한테 무지 감사하고 있어. 아저씨 덕분에 엄마랑 나랑 같이 살고 오래 있을 수 있잖아. 난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 오늘도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아저씨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울은 거야. 바보 같은 우리 엄마. 왜 그렇게 아프고 그래.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슬프잖아. 엄마 몸 관리 잘하고 밥 굶지 말고 잘 살고 있어. 알겠지? 나는 여기서 살도 찌고 키도 크고 건강해. 나 2월 달에 퇴원해서 꼭 엄마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나도 기도해 줄테니까 오래 살아야 돼. 알겠지? 엄마 파이팅! 힘내! 엄마 사랑해요♡ 2006년 12월 엄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아들아. 고맙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그렇게 예쁜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한테 충분한 효도를 했거든. 엄마가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데 사랑하는 우리 아들 생각은 어떨까? 그리고 엄마는 항상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름다운 곳도 가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한 번 걸어보고 싶다. 아저씨랑 걷고 싶다. 우리 아들이랑도 걸어보고 싶고…. 지금 많이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들아. 아저씨 미워하지 말고 고마운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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