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화가로 잘 알려진 선무 작가의 개인전 ‘뭐하니’가 갤러리 담에서 신년기획초대전으로 2월 2일부터 16일까지 열린다. 한국에서 선무라는 예명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열 한번째 개인전으로 북한에서 탈북해 김일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와 작가가 소망하는 유토피아를 그려내고 있다. 태어나면서 청년기까지의 학습된 곳에서 벗어나 환경이 전혀 다른 이곳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겪는 갈등들도 화면 속에 표출하고 있다. ‘뭐하니’라는 작업에서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또한 아직 북한에 있는 모친에게도 부칠 수 없는 편지를 그린 ‘편지’를 비롯해 언젠가 남북이 함께 갈 날을 소망하며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그린 ‘우리 함께’ 어린 아이가 오랜 못이 박힌 문을 열어젖히는 ‘문을 열다’는 작품 등 14여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선무는 분단의 선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계층과 계급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없어지기를 희망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많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선무작가는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과 뉴욕타임지에 거푸 인상적인 기사와 영국 BBC, 독일의 ARD, 미국의 Voice of America 등에서 비중 있는 다큐멘타리에 등장했다. 선무의 회화적 방법이 진화하는 과정은 미술이 그저 미술일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다. 미술은 투쟁이다. 미술은 과거의 미술에 대한, 미래의 미술을 위한 투쟁일 뿐 아니라 미술이 사회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름의 변화와 변혁을 요구하는 정치적 투쟁이기도 하다.
선무는 이 정치적 투쟁을 미학적인 방식으로 변환할 뿐 아니라 그 역의 변환 역시 시도하고 있다. 즉 미학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투쟁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미학적이자 정치적 투쟁의 거대한 지형은 정작 선무라는 한 작가의 손에 잡힌 작은 붓 한 자루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데 어떤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정작 이 시대,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남북은 그저 피 흘리며 싸우는 대립적 투쟁의 상대가 아니다. 그림에서 그려지는 모든 상황들은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것들인 것이다.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