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0호 김금영⁄ 2013.01.21 13:14:11
“전 ‘아름이 엄마’라고 불리는 게 가장 행복해요.”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월 3일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에서 만난 윤인숙 씨. 자신의 이름보다 딸 아름이의 엄마로 불리길 바란 그는 사랑스러운 딸을 2012년 3월 16일 먼저 하늘로 보냈다. 딸을 보낸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아직 온전히 보내기엔 마음이 아프다. 윤 씨는 SNS 프로필에도 딸의 납골당을 갔을 때 만들었던 눈사람 사진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렇게 딸 생각에 눈물이 흐를 때가 많지만 용기를 냈다고. 그 용기는 프로필 사진 아래 적혀 있는 문구에서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아름아! 너 인터뷰 하러 세브란스 간다 ^^ 너와의 약속 지킨다 ^^”는 내용의 문구…. 도대체 어떤 약속일까? “아름이는 가면서까지 더불어 사는 삶을 제게 깨우치게 해준 아이에요. 항상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 했죠.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팀, 한신대학교 관계자 분들, 아름이 친구들까지 정말 큰 사랑과 도움을 줬어요. 그 마음에 감사드리고 싶었고요. 아름이의 뼈를 묻으면서 ‘너는 한 줌의 뼈 가루가 됐지만 엄마가 살아있는 한 이 세상에서 한아름이라는 아이가 잊히지 않는 아이가 되게 해주겠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래서 아름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강했던 아름이는 대학교 2학년이었던 2010년 12월 시험을 본 뒤 갑자기 눈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 검사를 했는데 난데없이 머리에 암이 펴진 상태라는 결과를 받았다. 다음날 서둘러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암 세포가 수술도 못할 정도로 뇌를 침범한 상태라 조직검사를 하는 것 자체도 위험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잘해줄 수밖에 없다”는 말에 윤 씨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렇게 딸을 보낼 수 없다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호스피스 만나며 다가온 사랑의 손길들 이런 윤 씨의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걸까.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아름이의 상태가 좋아져 퇴원할 수 있게 됐다. 이 때 딸과 함께 서로 사랑을 나누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때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윤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행복은 쭉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아름이가 잘 걷지 못해 2011년 11월 다시 재입원을 하고 MRI를 찍었는데, 암이 너무 많이 퍼졌다는 것이었다. 항암제 치료를 다시 열심히 받았지만 점점 힘들어하는 아름이의 모습에 윤 씨는 가슴이 아팠다. 아름이가 입원해있을 때 호스피스의 존재를 알게 됐지만 처음엔 강렬하게 거부했다.
“‘제 아이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에 호스피스 팀의 관리를 거부했어요. 그런데 아픔에 힘들어하는 아름이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병원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었어요. 저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굵고 짧게 아름이를 자기 병도 모르게 보내줘야겠다고 결심했죠. 201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황애란(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 선생님을 만났어요. ‘아름이를 잘 보살필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원봉사자 분들을 소개시켜줬어요. 전부 하나같이 사랑이 많은 분들이었어요.” 윤 씨는 아름이를 찾아왔던 자원봉사자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아름이에겐 매주 5일 정도 총 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이영은 씨는 마치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락을 예쁘게 싸와서 함께 먹으며 지친 윤 씨의 마음을 위로해줬고, 아름이를 간호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한 아들의 멘토가 돼줬다. 교회 쪽에 얘기해 아들의 대학 등록금도 두 번에 걸쳐 100만원씩 도움을 줬다. 홍행자 씨는 직접 모시떡도 해오면서 윤 씨와 정을 나눴고,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완전히 남인데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손길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호스피스에 대해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피를 나눈 게 형제가 아니라, 이렇게 같이 사랑하고 웃고, 우는 사람들이 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윤 씨는 말했다.
예술 치료사였던 최지은 씨는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아름이를 위해 음악과 영상매체들을 활용해 아름이와 공감을 나눴다. 22살, 한창 친구들과 활발하게 돌아다녀야 할 나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름이를 위해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에서 아동청소년완화의료 봉사를 하는 동아리팀원들이 1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함께 했다. 특히 김원지 학생은 아름이가 머리 감는 것을 도와주면서 마음 아파했고, 자원해 자주 찾아오면서 어머니의 마음에 힘을 줬다. “정말 하나같이 감사드릴 분밖에 없다”며 윤 씨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세브란스병원-한신대 도움으로 병상에서 감동의 졸업 또 잊지 못하는 분이 있으니 혜인이 엄마다. 2010년 딸을 하늘로 보낸 혜인이 엄마는 아동청소년완화의료 최초의 자원봉사자로서 성심을 다하고 있는 인물로, 윤 씨의 경우와 같이 호스피스 팀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딸 아름이를 위해 세브란스 병원 언더우드 찬양단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윤 씨는 찬양단에서 활동하던 혜인이 엄마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혜인이 엄마는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었다. 아름이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던 그와 지금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윤 씨는 “아이들이 떠나면서 두 엄마를 서로 의지하면서 살게 만들어 주고 있다”며 “2012년 12월 29일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혜인이의 기일에도 함께 했다. 아름이도 함께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아름이와 함께 한 감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름이는 한신대학교 재활의학과에 다니다 입원하게 됐는데 윤 씨는 병상에 누워 있는 딸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에 윤 씨는 한신대학교에 요청을 했고, 이례적으로 채수일 총장과 오길승 학과장, 이경숙 교수가 병원을 방문해 아름이에게 학사모를 씌워주며 명예졸업을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세브란스 병원 원목들과 간호사들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세브란스 병원과 한신대학교 측 모두의 배려로 이뤄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아름이가 그때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너 오늘 졸업이야’라고 하니 아직 2학년이라 졸업할 때가 아닌데 이상하다는 식으로 고개를 흔들다가 나중에는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성숙진 교수님은 퇴직하면서 받은 반지를 아름이에게 졸업이라는 의미로 선뜻 내줬고요. 지금도 그 반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아름이의 졸업을 위해 많은 분들이 와서 축하를 해줬어요.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름이가 졸업할 수 없었을 거예요.” 오길승 학과장과 이경숙 교수, 성숙진 교수 그리고 친구들은 아름이의 병실을 자주 방문해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라”고 용기를 줬다. 또한 대학교 친구들은 병원비 모금 운동도 했다. 이렇게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명예졸업을 한 아름이. 그래도 어머니는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윤 씨는 3월 28일이 생일인 아름이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황 상담사에게 3월 22일 생일 파티를 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황 상담사는 22일이 아닌 15일에 생일 파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이 있어 생일잔치를 일찍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황 상담사는 말했다. 당시 아름이는 격리 병동에 있었는데, 윤 씨와 아동청소년완화의료 팀원들이 함께 병상 주변을 풍선과 케이크로 장식했다. 15일 생일 파티 때는 아름이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름이도 친구들과 같이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등 발랄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동청소년 완화의료팀원들, 친구들과 언더우드 찬양단 사람들까지 총 7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생일이었다. 그렇게 생일 파티가 끝나고 1시간 50분이 지난 2012년 3월 16일 새벽 1시 50분, 아름이는 깊게 잠이 든 듯한 편안한 모습으로 그렇게 눈을 감았다. 딸이 소천하고 2시간 동안 윤 씨는 계속해서 딸의 온 몸을 어루만져주고 뽀뽀를 했다고 한다. 준비가 돼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딸을 보내려니 가슴이 무너졌다. 딸이자 친구, 남편, 희망, 산소,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을 정도로 전부였던 존재인 아름이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참여해 받은 사랑 베풀고파” “아들이 ‘엄마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고 했어요. 그때 황애란 선생님이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어요.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름이 마지막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평생 잊지 못할 분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호스피스가 있었기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어요. 또한 황애란 선생님이 연결시켜준 연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이정수 전문상담사를 만나 매주 한 번씩 상담을 받으면서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느꼈고, 아름이가 다하지 못한 삶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꼈죠. 아름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었어요. 아름이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으니까요.” 윤 씨는 “이렇게 전문상담사를 만나 삶을 지속해서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재정립하지 못했다면 아마 아름이를 따라 천국에 가려고 했을 것”이라며 “혜인 엄마, 황애란 선생님 그리고 이정수 선생님이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해 줬다”고 말했다. 아름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날, 수의 대신 한신대학교에서 기증 받은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었다. 혜인이 엄마는 편하게 쉬라고 아름이가 좋아하는 보랏빛 잠옷과 수면양말을 사와서 입고 떠나게 해줬다. 아름이의 장례식에는 총 600여명의 한신대학교 친구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아름이는 마지막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그 사랑에 어머니인 윤 씨가 보답하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윤 씨는 호스피스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도 상담을 받고 마음이 더 평안해지면 아동청소년완화의료 분야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시간이 지나면 암으로 투병하는 아이들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해요. 그 때 그 가족들이 슬픔에 빠지지 않게끔 도와주고 싶어요. 슬퍼만 하면 시간 낭비에요. 용기를 내서 일어서야 해요.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호스피스에 대한 후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또 봉사도 자진해서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고 바라요.” 현재 윤 씨는 아름이를 보낸 이후로도 호스피스 팀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를 한 날에도 상담을 받고, 황 상담사와 점심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하고 온 뒤였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호스피스에 부정적이었던 아들은 “나도 나중에 죽음이라는 게 오면 누나처럼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얘기하며 “기회가 되면 봉사도 하고 싶다”고 했다. 윤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스피스에 대해, 도움을 줬던 황 상담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윤 씨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던 황 상담사는 “아이를 보내고 상담을 받는 게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런데 꿋꿋하게 상담을 잘 받고 있다”며 “우리 모두 아름이가 보고 싶다. 아름이는 참 선한 아이였다”며 눈물을 보였다. 윤 씨가 앞으로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그 길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황 상담사의 손을 윤 씨는 꼭 잡았다. 그래서 힘차게 일어서기 위해 윤 씨 또한 노력하고 있다. 아름이에게 많은 사랑을 줬던 친구들을 기일 때 초대해 손수 만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생각이다. 또 아름이를 대신해 다가오는 2월 졸업식도 참석할 예정이다. “2월 15일 한신대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어요. 아름이 친구들이 졸업을 하죠. 전 아름이 대신 졸업식에 참석해서 아름이 친구들에게 사랑의 떡을 나눠주려고 해요. 아름이가 생전 제게 학사모를 씌워준다고 약속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배려로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게 됐네요. 아름이가 씌워주는 학사모 쓰고 사진도 찍어 올 거예요. 아름이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 아름아. 사랑해.” - 김금영 기자
아름이에게 엄마가 보내는 짧은 편지 아름아!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는 네가 엄마 딸로 태어나 23년을 함께했던 시간들이야. 너는 눈앞에도 안 보이고 만질 수도, 뽀뽀할 수도, 너의 냄새를 맡을 수도 없지만 엄마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매일 느끼면서 살고 있어. 우린 한 몸인걸 잊지 말고 엄마 얼굴 꼭 기억해야 해! 우리 딸 사랑한다! 엄마 만날 때까지 예수님 품에서 편히 쉬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진심으로 미안해, 아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