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313호 김금영⁄ 2013.02.12 09:09:08
마치 오누이 같이 다정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1월 15일 세브란스병원 자원봉사자실에서 만난 최종진 화백과 황애란 호스피스실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누님” “동생” 하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거의 매주 병원에서 만나지만 볼 때마다 정겹고 고마울 따름이란다. 이들의 만남은 2012년 8월 시작됐다. 만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서로에게 보이는 신뢰가 남다른 것이 특별한 인연이 있어 보인다. 현재 최 화백은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4시부터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 병동에 입원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술 치료를 따로 배우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파인 아트를 전공했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도 일했고, 미술입시학원도 운영했었어요. 젊었을 땐 열심히 돈 벌며 살기에 바빴던 것 같아요. 뒤늦게 신학 공부를 하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방법을 몰랐죠. 그때 주위에서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에 대해 소개해줬어요. 그 때 황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최종진 화백).” 여러 환자들을 만나는 황 상담사는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봉사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암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은 투병 기간 동안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아이들이나 가족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황 상담사는 최 화백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만남을 주선한 것은 최 화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최종훈 교수를 통해 최 화백을 만나게 된 덕분도 있지만, 최 화백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매같이 편한 사람이었다.
“호스피스실 식구들, 마치 제 가족 같아요” 황 상담사는 최 화백에 대해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백으로서 명성이 높은 분이어서 혹시 전문가로서 대접받고 싶어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겸손할 뿐 아니라 진정어린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몇 시간이고 아이들과 동화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오직 감동 그 자체이다”라는 황 상담사의 칭찬에 최 화백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황 선생님 덕분”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최 화백의 그림은 세브란스병원 치과대학병원에 8점 전시돼 있고, 전시회를 이어가기에도 바쁘다. 이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어떻게 아이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최 화백에게도 가슴 한 구석이 아린 사연이 있다. 그의 둘째 아이는 1살 정도 됐을 때 안타깝게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 또한 아이의 곁으로 갔다. 아이와 어머니를 성심성의껏 간호하며 늘 곁을 지켰던 최 화백은 아픈 환자와 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소아혈액종양 병동 아이들에게 사뭇 더 눈이 갔고, 더 마음이 갔다.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마치 운명 같다. “원래 오후 4시부터 6시까지가 자원봉사 시간인데, 결코 6시에 끝난 적이 없어요. 밤 8시, 9시까지는 기본이고 더 늦게까지 아이들과 그림을 그린 적도 있으세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아이들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 부릴 때는 솔직히 짜증이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아이가 좋아할 때까지 그림을 다시 그려주곤 하시더라고요. 순수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에요(황애란 상담사).”
최 화백은 아이들이 그려달라는 그림을 묵묵히 그려준다. 그가 보여준 그림 속에는 뽀로로, 둘리 등 유난히 만화 캐릭터와 로봇, 자동차가 많았다. 그림에서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의 부모님을 그려달라는 아이들도 있고, 용을 그려달라는 아이들도 있다고 최 화백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들 얘기만 하면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것이, 보는 사람도 들뜨게 만든다.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이나 부모들은 최 화백에게 예수님의 모습, 최후의 만찬 등 성화를 그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 성화를 침상 위에 걸어놓고 지내면서 투병 과정을 인내하고, 더 나아가 이를 치유의 여정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기 얼굴을 그려달라는 아이들도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비슷하게 그렸네요’ ‘발전 했네요’ 하고 얘기하는데 웃음이 나죠. 그림을 보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제 마음이 다 환해져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많이 힘들어할 땐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같이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열이 오를 때도 있고요. 그렇게 아프면서도 제가 들어가면 밝게 웃어줘요. 몸이 아파서 앉아있기도 힘든데 한 시간씩 앉아서 열심히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요. 처음엔 어색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가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다시 보고 싶다고 할 때는…(최종진 화백).”
항암 치료에 힘들어하면서도 웃으며 반겨주는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최 화백은 흘러내리는 눈물에 말끝을 흐렸다. 아이들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최 화백은 과연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깨닫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새롭게 되새기게 됐다. 한 달 전에는 빙판에서 크게 넘어져 팔이 완전히 돌아가 오른팔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다행히 뼈에 금이 가지는 않았지만 인대가 늘어나서 4달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팔이 완전히 부러졌거나 금이 갔으면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스스로도 아이들을 이토록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느새 최 화백의 삶 속에는 아이들이 깊숙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팔이 아픈 그를 위해 열이 나는 몸도 가누기 힘든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팔을 주물러 주고 미소를 보여줬다. 이렇게 아이들과 원만히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황 상담사의 도움도 컸다. “제가 사실 많이 게을러요. 그런데 그런 저를 위해 선생님이 직접 스케줄을 작성해주고, 아이들과 처음으로 만날 때 같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서 분위기를 따뜻하게 이끌어줬어요. 제가 하는 일은 선생님의 1/20밖에 안 돼요. 정말 배울 점이 많죠. 또 선생님 뿐 아니라 호스피스 팀이 정말 좋아요. ‘정말 잘 한다’ ‘착한 일 하는 거다’ ‘아이들이 행복해한다’는 등 따뜻한 격려를 해줘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이런 분들을 만나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최종진 화백).” 그래도 역시 가장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건 아이들과 가족들이 아닐까. 최 화백의 활동이 입소문을 타면서 그는 병동에서 인기 스타가 됐다.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서 최 화백에게 선물을 하기도 한다. 최 화백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가족들도 많아졌고, 아이들도 그를 찾는다. 최근에는 어린 아이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질병으로 늘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 사진을 한 번도 찍어준 적이 없었다. 특히 눈이 참 맑은 아이였는데 그런 모습을 최 화백이 그림에 담았다. 아이의 상태를 고려해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됐던 상황이라 황상담사가 급작스럽게 토요일에 올 수 있겠느냐고 최 화백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도 최 화백은 거리낌 없이 바로 달려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집중해서 3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다.
“함께 그림 그리며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 행복해” “어머니가 그림을 보고 정말 좋아했어요. 눈의 맑은 영성이 그대로 그림으로 반영돼서도 좋아했지만, 아이가 상대적으로 건강했을 때의 모습이 그림 안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죠. 화백님이 팔을 다쳐서 아플 때였는데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느라 작업이 끝난 뒤 완전히 기진맥진했어요. 정말 온 몸을 바쳐서 재능 기부를 하는 거죠. 밤을 새서라도 그림을 그려주고 싶어 하고, 아이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모습이 치유자로서 정말 모범이 되는 분이에요. 2012년 제게 가장 행복한 일이 있다면 화백님을 만나게 된 일이에요. 화백님이 병원에 오는 날에는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 시간이 기다려지더라고요(황애란 상담사).” 황 상담사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화백님을 봤을 때 눈에 생기가 돈다”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서 놀아주고, 헌신하는 사랑을 보여줘서 우리도 같이 많이 웃는다. 힘든 일 있으면 기대고 싶은 분이 됐다”고 앞으로도 최 화백과 함께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최 화백의 마음은 세브란스병원의 다른 영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청력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석고데생 교실에서도 봉사하고 있다. 최 화백은 “말하는 것, 듣는 것이 어려운 분들은 시각이 발달돼 있다”며 “최고의 동양화가들 중에서도 시력과 청력을 잃은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면서 이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많다고 믿었다. 그림을 통해 그런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정성 덕분이었는지, 처음엔 그림 그리기를 지루해하던 한 아이도 나중에는 매일 수업에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이날도 최 화백은 인터뷰가 끝나고 만날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만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할 지는 짐작이 갔다.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한결같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이 맑고 투명했다. “봉사를 하고 나니 제 마음도 많이 변했어요. 항상 제가 당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보면서 한낱 투정이었다는 걸 알았죠. 주사 맞거나 검사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이 회복돼 입원 치료가 종료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요. 그림을 그리면서 나중에 화가가 되고 싶다거나 디자이너 또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행복이 이루 말할 수 없죠. 삶의 희망이 생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최종진 화백).”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어언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최 화백. 그의 여정에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