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실지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절대 비켜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뭘까?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는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먹게 되는 ‘나이’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맞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나도 당연히 어쩌지 못해 끊임없이 당하고 있고, 재벌이 수천억 원 비자금을 쏜다고 해서도 안 되고, 군대의 총칼로도 밀어붙일 수가 없다. 아무리 예쁜 여자가 애교를 떨거나 그 이상의 몸짓, 눈물을 보여도 소용없다. 노벨평화상으로도 비켜가기 힘들다. 죽음? 그렇다고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는 건 또 아니다. 이 시(詩?) 안에 답이 있으니 잘 읽으시라. 「숙제 없으면 학교생활 할 만하고/ 보초 없으면 군대생활 할 만하고/ 시어머니 잔소리 없으면 시집살이 할 만하고/ 슬라이스 없으면 골프 할 만하다」 맞다. 온 국민이 두려워하는, 공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지는 악성 바이러스, 아니 골프계의 에이즈랄 수 있다. 바로 슬라이스다. 이 슬라이스는 오늘 갓 닭장에 등록을 한 젖내 나는 초보자부터, 잔디밭의 야성녀 최나연이나 신지애, 탱크 최경주와 한국에서는 어느 누구도 못 덤비는 챔피언 김대섭, 왕년의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 로리 맥길로이, 필 미켈슨, 그리고 원조 골프신(神)이 잠시 외출을 보낸 그의 아들 타이거 우즈까지 누구나 걸려 있거나, 걸린 적이 있거나, 걸릴 수 있는 지독한 질병이다. 이것은 백신이 따로 없으니, 늘 인류 골프계의 난제로 남아있다. 슬라이스를 끔찍한 질병에 비유하는 걸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골퍼들은 이해할 것이다. 아마추어들 가운데 잘 나가다가도 마지막 홀서 2개 정도(더블)만 오버를 해도 꿈에 그리던 대망의 ‘싱글’을 기록할 텐데, 순간 난데없이 슬라이스가 나서(그런 순간에는 꼭 훅보다는 슬라이스가 어김없이 난다.) 점수를 망친 통한의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인생에서도 ‘슬라이스’가 나면 크게 잘못될 수 있다. 슬라이스 때문에 자칫 삼국통일이 못될 뻔했다. 김유신? 김유신 장군이 무슨 골프를 했을까마는 비유를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관청에서 정사를 보고 집으로 곧장 가는 것이 스트레이성 볼인데, 그의 클럽(馬)은 심한 슬라이스를 내서 자주 가던 기생집인 ‘천관녀’에게로 가고 말았다. 이에 김유신은 칼을 뽑아 애마의 목을 뎅강~! 치고 말았다. 애꿎은 말이 죽은 뒤로 김유신의 ‘귀가 길’은 슬라이스가 아닌 직구로 갔다. 앞서 말한 대로 슬라이스는 예방약이 없어 답답하다. 그저 죽어라 연습하고 독하게 대처하는 수밖에는. 슬라이스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온다 했다. 일단 초보 때는 한동안 슬라이스와 싸워야 하는데, 이것이 좀 잠잠해지면 성인병인 ‘훅’이 온다. 다시 훅을 고치고 나면 다시 또 슬라이스가 찾아온다. 골프는 끊임없이 이러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계 골퍼(프로 포함)의 70%는 슬라이스병 환자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슬라이스가 좀 난다 해서 애써 장만한 클럽을 부러뜨리는 자학을 해선 안 될 일이다. ‘정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는 날은 핀의 훨씬 왼쪽을 공격하라’고 즉석에서 레슨을 하는 일부 선배들이 간혹 있다. 물론 이건 하루만 그러고 말 일이지, 습관이 되면 영원히 골프계의 공공의 적, 슬라이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 -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골프작가/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