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예술적 행위자체가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중국의 발가락 피아니스트 류웨이(Liu Wei, 25)가 한국의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연주를 선보였을 때, 그 순간 느꼈던 전율은 상당했다. 발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피아노 선율이 주는 청각적 감흥을 넘어서는 감동적인 행위예술로 다가왔다. 외관상 그 형과 색이 화려한 장미꽃이나 미스코리아 출전자들의 완벽한 여신의 자태도 아름답지만 고통을 승화시킨 희망의 세레나데야 말로 아름답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에게는 팔이 없는 것보다 발과 눈과 귀가 있다는 것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충분한 희망이었다. 인간은 몸의 일부가 퇴화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일부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그 부분의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고 발달된다. 나를 포함해 신체가 건강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닌 하나의 감각도 제대로 발휘, 발전시키는 것을 게을리 한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류웨이는 매시간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자신이 지닌 감각을 감사히 치열하게 사용했다. 그 결과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신체적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예술을 선보이는 사례는 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술은 행위를 직접 볼 수 없고 미술가의 배고픔을 당연시 하는 통념 때문에 응원과 격려의 박수갈채를 받기가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역대의 화가 중 멕시코의 여성작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의 일생 정도가 영화로 제작되면서(2003) 가장 드라마틱한 예술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녀는 18세 때 쇠파이프가 척추와 골반, 허벅지를 관통하는 교통사고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 꼬박 9개월을 깁스를 한 채 누워있어야 했다. 두 손만 움직일 수 있던 칼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림뿐이라 생각해 강철 코르셋으로 척추를 지탱하고 손과 입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기적적으로 걷게 됐지만 평생을 고통 속에 시달리면서도(6세 때 오른다리에 발생한 소아마비, 교통사고 후 수십 번의 외과수술, 회저병으로 인한 족부절단, 3번의 유산 등)치열하게 작업에 열중했다. 결국 멕시코 화가 최초로 루브르에 작품이 소장되는 영예를 얻었다. 칼로는 주로 자신의 자화상이나 자신이 겪은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 화면들은 우리가 평생 상상하기도 힘든 삶의 이면을 경험하게 해준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뿐이었지만 작품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의 강렬함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녀만큼이나 감동적인 존재들은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작년 12월 이화여자대학교 ECC 극장에서 자폐인들의 그림과 그 그림으로 제작한 디자인 상품을 선보인 ‘선으로, 색으로, 사랑으로’ 전시는 추운 겨울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희망의 메시지 감도는 전시 통해 감동의 메신저 역할을 전시를 기획한 자폐 아이들을 돌본 연구가들에 따르면 자폐인은 뇌의 일부 기능에 장애가 있지만 특정분야에 있어 뛰어난 집중력과 재능을 보인다. 전시에 참여한 자폐인들은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는데 그들이 지닌 치밀한 묘사력과 예술적 광기로 이뤄진 그림들은 심지어 행복한 기운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감탄을 자아냈다. 나는 요즘 매일 그들의 그림이 새겨진 컵을 사용할 때마다 가장 청정한 물을 마시는 기분이다. 또 하나 최근에 접한 감동실화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스키선수이자 동양화 전공의 미술학도 양재림 이다. 그녀는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이고 오른쪽 눈은 가까이 있는 사물을 겨우 알아보는 정도로 3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스키와 동양화 모두 시각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놀랐다. 더욱이 동적인 스키와 정적인 동양화 작업을 병행하는 점에서도 그녀의 행보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스키와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하얀 종이 위에 붓으로 흔적을 남기듯 스키를 타면서도 하얀 눈 위에 자신의 흔적을 그린다는 점과 자신을 가장 짜릿하게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스키장 훈련 때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설원을 찍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곤 한다. 스키장의 멋진 설경과 스키의 역동적인 힘을 그림에 담고 싶어 한다. 그 자체가 예술이다. 장애가 있는 이들도 이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데 장애도 없는 나는 과연 세상에 어떠한 영감을 줄 수 있을까. 필자는 갤러리 큐레이터로서 마음의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이들이 더욱 많은 이들로부터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그 해답이라 여겨진다. 수많은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이 내 평생의 업으로 여기는 것처럼 그들이 꿈을 지속함으로써 희망의 메시지가 세상에 감돌 수 있도록 하는 전시를 마련하는 것, 감동의 메신저 역할, 그것이 내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동적 예술 앞에 나이와 장애를 비롯한 어떤 것도 한계가 되지 않는다. 예술가의 길은 배고프지만 예술은 예술가 자신에게도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가장 좋은 치유의 방법이자 그 고된 과정은 혼란, 두려움, 좌절로 가득한 우리의 삶에도 아름다운 희망과 위안을 준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런데 하나라도 제대로 몰입하고 있는가. 손가락, 발가락, 한쪽 팔, 한쪽 눈 중 오늘 가장 감사히 생각되는 부분을 최대한 열의 있게 사용해 나갈 때 내 삶의 가치는 고양될 것이다. 하나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노력을 해나갈 때 이것은 곧 작은 기적을 만들고 어느새 세상을 감동으로 수놓을 것이다. 감동의 씨앗을 뿌린 그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