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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 제주의 모습에 삶의 호흡과 결을 어루만져

학고재갤러리, 강요배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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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9호 왕진오⁄ 2013.03.25 13:27:21

제주 출신의 민중미술가 강요배(62)가 지난 2008년 학고재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스침' 이후 5년 만에 갤러리 개인전을 3월 27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전관에서 펼친다. 강 작가는 불혹의 나이 마흔에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향했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출신으로 서울 창문여고에서 미술교사로 6년간 일했지만, 도시 생활, 문명생활이 체질에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둥지를 튼 바람의 섬 제주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환갑을 맞은 그는 제주의 바람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작가가 제주 귀덕리에 터를 잡으며 심혈을 기울인 5년간의 작품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제주의 풍경 속 오래된 탐라의 신비를 고유의 신비스럽고 상징적인 어법들로 화폭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귀덕호박', '동', '백경' 같은 풍경과 '파도와 총석', '풍천', '옴부리-백록담' 같은 대작 40여점과 드로잉 10점이 함께 한다. "하루 중 해 뜰 녘 무렵의 어스름한 풍경을 좋아합니다. 시골이라 이 때 보는 빛의 파장이 아주 살아있어 보이죠. 나는 관찰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듯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머리에 장면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느낌이 들면 붓을 듭니다." 강요배 작가는 제주의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현실과 청풍명월의 장면 장면을 불러들여 신화·전설·역사를 되묻고 다시 그 내부에 쌓인 수천수만의 삶의 호흡과 결을 어루만진다.

작가의 회화미학에서 바람(風)은 색의 질감으로서 '색질감'의 토양과 기운을 구성 짓는 활기 넘치는 대지다. 앞서 붓바람이니 붓춤이니 하는 말들은 결국 색질감의 대지로 수렴된다. 그의 작품 '길 위의 하늘'에서 토는 밝은 그늘이다. 색질감은 검갈색으로 탁하게 올렸으나 천천히 그 속을 보면 흰 빛들이 떠다닌다. 밝은 그늘을 이룬 땅과 숲과 나무는 형상으로 잡히지 않는다. 잔상으로 아른 거릴 뿐이다. 아른 거리는 형상들의 풍경이 어쩌면 제주의 실체일지 모르겠다. 손에, 눈에 명확히 잡히지 않으니 그 풍경들은 온갖 무늬 결들의 색비늘로 떠다닐 뿐이다. '길 위에 하늘'은 잡히지 않는 형상들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듯 하늘빛이 열리는 장면에 집중했고, 그 빛의 숱한 비늘이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흥미롭게도 먹장구름에 휩싸인 이 풍경이야말로 가장 제주답게 느껴진다. 그가 제주의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낀 감성은 화면에 그대로 반영된다. "나이가 드니 많이 버리게 되네요"라며,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개념미술이 대세라고 하지만 강박관념에 그려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창작해도 자기답기가 어려운 시대 아닙니까. 예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탐라인 강요배, 제주의 삶이 곧 그의 삶이 되다 강요배 작가에게는 탐라인, 민중미술작가란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닌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활발히 했던 '현실과 발언' 미술동인에 참여했고, 1989년부터 3년간 4.3제주항쟁 연구자들과 연구논문, 인터뷰 자료, 현장답사 등을 통해 재구성한 50점의 제주민중항쟁사를 그려냈다. 최근 그가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고, 추상화적인 표현을 만들어 낸다고 주변에서 민중미술작가를 버린 것 아니냐는 의견에 "민중미술을 정치적으로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나는 우리 자연이 곧 민중의 삶의 터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연을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광의의 개념으로 민중미술을 바라봐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강요배 작가에게 4.3 항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주출신으로 온몸으로 체득한 '제주의 한'을 풀어낸 '제주민중항쟁사'는 '제주의 역사화'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지금도 매년 4월 3일이면 제사를 올리는 마음으로 제주항쟁에 대한 그림을 한 점씩 그린다"는 그에게 4.3 제주항쟁은 그의 이름과 숙명적으로 붙어 다니는 수식어로 남게 됐다. 북쪽 먼 바다로부터 하늬바람이 불어오면 바다가 크게 뒤채이며 일렁이던 순간들이 들어왔고, 맵찬 칼바람에 살점 깍이운 팽나무가 검은 뼈가지로 버티던 풍경들도 심연을 울리며 새겨진다. 돌팍에 얽히고설킨 덩굴들이 가싯발로 바람의 가슴팍을 긁고 찢으며 저항했고, 돌담 밑의 수선 향을 흩뜨리고 청보리 싹을 떨게 하며, 바다 밭에 갈빛 고운 톳이 돋아나고 유채꽃이 일제히 피어나던 찰나들이 황홀했다. 이제 그 세계가 그의 세계요, 제주의 삶이 곧 그의 삶이 되었다. 탐라인 강요배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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