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본인에게 경험된 반복적인 시각이미지, 규율이나 규칙을 나타내는 사물들에 대한 관찰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작가 정기훈(34)이 도로의 검정과 노랑, 하얀 색으로 이뤄진 차선이나 안전대 등에 생긴 파손과 마멸의 흔적들을 '500ml'의 하늘색 물감으로 채운 작업의 결과물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어루만지는' 행위 속에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쇠와 돌로 제작된 사물, 표시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 사물들은 겉으로는 강인한 질서유지의 도구이지만, 결국에는 그 기능을 잃으면 버려지는 처지에 속한 것들이다. 정 작가는 시간인 지나면 또 다시 사라져버릴 줄 알면서도 그 벗겨진 흔적을 채웠다. 하지만 일의 결과나 기능을 벗어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여유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기호에 남겨진 흔적은 또 다시 물리적 충격이나 빗물에 곧 사라질 것이고, 이미 지워져 버렸다. 하지만 '500ml 만큼의 사랑'은 교통기호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과정을 통해 규율이 갖는 역할갈등 사이에서 표면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여유를 공유하고자 한다" 3월 29일부터 4월 13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시작에서 진행되는 정기훈의 '500ml 만큼의 사랑'전은 작가의 행위가 사진으로 기록되었으며, 과거 'marking' 작업의 기록 사진과 드로잉이 함께 전시된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