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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다이어리 ⑬]무엇이 ‘갤러리 품격’ 인가?

벽을 허물고 가면을 벗고 서로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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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1호 박현준⁄ 2013.04.08 11:42:19

지난해 종영한 SBS TV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등장한 꽃중년의 인기에 힘입어 KBS 2TV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코너 ‘거지의 품격’의 ‘꽃거지’가 주목받고 있다. ‘신사의 품격’에서 묘사되는 인물은 고상하고 우아한 캐릭터 혹은 남성성의 전형으로 여겨져 온 캐릭터(지나치게 남성 우월주의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상)가 아니다. 당차고 저돌적인 면과 함께 세심하고 다정한 감성을 겸비한 꽃중년이다. 소심하고 연약한 모습 또한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모성애를 자극하기도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결합한 모습, 솔직함, 의리, 사랑에 대한 열정, 유머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사는 것이 그들 삶의 모습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품격이란 무엇인가. ‘거지의 품격’은 한술 더 뜬다. ‘꽃거지’는 절대 공짜 동냥을 하는 법이 없다. 500원을 벌기 위해 재밌게 호기심을 자극한 후 대가를 내게 하는 방식이 고단수다. ‘꽃거지’는 자존심이 있어서 여성에게 비열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도움을 주려 하거나 때로는 말벗도 되어준다. 거칠고 무뚝뚝하고 여성을 해칠 것만 같은 보통 거지에 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친구같이 편안한 거지의 모습은 품격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데 사실 거지에게 ‘품격’ 이란 게 있는가.

‘품격’과 ‘갤러리’에서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비슷하다. 품격과 갤러리는 부자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온 탓 혹은 덕이기 때문이다. 갤러리는 높은 가격의 작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부유계층이 주로 누리는 문화공간이다. 따라서 갤러리는 도도함, 우아함, 차분함 등 부자들이 추구하는 격과 비슷한 수준의 격을 조성해야 하므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흘러왔다. 갤러리는 여전히 ‘들어가도 되는 곳인지’를 묻는 관객들을 수없이 응대한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품격이 없고, 갤러리문화에 익숙한 부유한 사람들은 작품을 사지 않더라도 품격이 있는 존재로 대우를 받는다. 갤러리 큐레이터로서 깊이 고민하게 되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품격에 대한 문제’다. 보통 갤러리는 차가운 분위기로 아무나 다가설 수 없는 품격을 조장한다. 고객이 아니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큐레이터들,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자 다른 감각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으로 각인돼 있다.

이는 갤러리의 품격과 자존심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러한 공간에 들어서면 행복하지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갤러리스트들이 고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미술은 쉽고 재미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재미있지 않고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필자는 삭막하지 않은 환경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전시장에 무겁지 않은 뉴에이지풍의 음악을 흐르게 했다. 작품마다 그만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마다 어우러지는 음악을 달리한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를 미술에 적용한다면 작품의 감상을 배가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이후 갤러리를 방문하는 관객들과 미술인들은 공간에 들어섰을 때 안정감, 안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여기에 직원들의 밝은 표정과 친절도를 높여서 따뜻한 공기가 감돌 수 있도록 했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이 방법은 소모적일 수 있다. 접근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비상식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관객들을 더 많이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소수 상위계층을 위해 대다수 사회계층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갤러리의 진정한 품격인가. 특히 갤러리의 분위기 연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의상이다. 높은 안목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제안하는 큐레이터의 업무로 보아서는 당사자의 분위기 또한 세련되고 감각 있는 스타일을 연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큐레이터들의 복장에는 색이 없다. 전시장을 지키는 직원들이라면 몰라도 고객을 직접 오랜 시간 응대하는 갤러리스트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색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본인도 미술만큼 미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고민한다. 튀지 말아야 작품이 빛난다는 의견과 빛나는 스타일로 작품의 미를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혼재한다. 대체 무엇이 고품격일까. 그런데 사실 이러한 고민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품격은 무조건 외관으로만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차림새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허름한 행색의 사람이 미술을 누구보다 사랑해서 작품을 소장하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다. 한편 사회적, 경제력으로나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이 갤러리 스태프들에게 무례하게 하고, 미술을 깎아내릴 때가 있다. 상위 1퍼센트가 갤러리 스테프에게 무례 범하기도 지금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식이 연일 쏟아진다. 고급공무원이 비리를, 대기업 총수는 비자금 조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일들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품격은 오히려 배움과 권력과 비례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이 시대에 맞는 갤러리와 큐레이터의 품격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그리고 ‘품격은 허상이다.’ ‘품격은 모자란 것을 감추는 가면이자 벽에 불과하다.’ ‘품격이 있어 보이는 것과 실제와는 별개의 문제다.’ ‘소수 특권이 품격이 아니다.’ ‘품격을 이유로 제한하고 공유하지 않는 영역은 오래 버틸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품격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좋은 것이라면 같이 나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벽을 허물고 가면을 벗고 나누는 것이 진짜다. 깨어있는 갤러리스트가 해야 할 일은 고급문화의 대중화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다. 품격을 운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품격이 아닐까.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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