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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성영록 “그리움, 아름답게 기억되다”

금비로 그려낸 매화향 가득한 기억의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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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1호 왕진오⁄ 2013.04.08 11:41:09

예부터 선조들은 매화(梅花)를 아담(雅淡·雅澹)한 풍치(風致)나 높은 절개(節槪·節介)라는 뜻으로 여겼다. 이는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시기에 핀다고 해서 보춘화(報春花, 봄을 알리는 꽃)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매서운 추위에도 꿋꿋이 피는 매화의 생태를 인간의 고상한 품격에 비유했다. 겨울이 되어 잎이 지고 나면 일견 죽은 것 같으나 다음해 다시 꽃이 피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장수의 상징물로도 여겼다. 맑은 향기와 우아한 신선의 운치가 있어 순결과 고고함의 상징으로 널리 사랑 받았다. 특히 눈 속에서 피어나는 생태학적 특징은 설중군자(雪中君子)라 하여 유배자나 은둔지사의 지조와 적개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는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해 예로부터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의 탐구의 대상이 되고 이는 글과 그림 등을 통해 매화의 덕을 본받고자 했다. 추운 겨울을 깨고 제일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매화 밭에 머물고 있는 듯 눈길을 모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일까, 10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화가 피는 초봄이 되면 그 향을 마음에 담고자 남도의 매화꽃밭을 찾아다니고, 아름다움 내음을 화폭에 그려내고 있는 화가의 따스함이 전달되는 그림들이 눈길을 모은다. 이른 봄에 잠깐 볼 수 있는 매화의 향기와 감성을 담고 있는 작가 성영록(34)이 애틋한 추억이 깃든 옛 기억의 그리움을 그 만의 감수성을 담아 서정적이면서 화사한 화면에 투영시켰다.

성영록은 직접 배접한 냉금지(금박이 박힌 얇은 종이) 위에 엷은 채색물감의 겹침을 통해 은은한 배경색조들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들과 촉촉이 내리는 금비들이 차분히 내리고, 화면 한켠에는 하얀색과 붉은 색의 꽃잎들 그리고 금빛의 화려한 가지들이 의연히 자리하고 있다. 그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마치 설중매를 연상하는 것 같이 매화 위에 눈이 날리거나, 밤하늘에 흩날리는 유성의 모습으로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 '꽃날 시리즈'를 가지고 '그리움, 아름답게 기억되다'라는 부제로 4월 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운동 갤러리그림손에 작품을 펼쳐놓는다. 화사한 화면에 차분히 스며들 듯 이루어진 회상의 장면들이 추운 겨울 동안 움츠러든 관람객들의 마음에 따뜻한 차 한 잔의 감동을 선보이려는 성 작가에게 유독 매화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보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매화꽃에 이입을 했습니다. 특히 봄날에 피는 경남 하동 평사리 최 참판 댁 마당에 가서 맡는 매화의 향은 그들의 기억을 더욱 부각시키곤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매화에 담긴 아름다움이 눈이 즐기는 안복(眼福)이 아니라 마음과 기억을 쓰다듬어 주는 어떤 존재로서 새롭게 부각이 된다. 매화가 절정을 보이는 기간은 매년 다르지만 3주 만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 작가가 매년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에 내려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눈으로만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며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곤 한다고 한다. 특히 청매실 농원 정자에서 바라본 장독대의 모습은 작업실에서 붓을 잡고 있으면 항상 떠오르는 풍경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매화의 화려한 면모 통해 기억을 되살리다 성 작가가 매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개인전부터 작업에 매화꽃을 그려 넣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그가 그려낸 매화는 과거 선인들이나 많은 화가들이 그리는 먹으로 그린 매화가 아니라 화려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도 섬진강가에 피어있는 만개한 매화, 산청 지역의 600년 넘은 매화 그리고 640살이 된 매화나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려낸 '정당매'의 모습도 선보인다.

또한 커다란 화면에는 매화의 단아한 모습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냥 비가 아닌 금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벚꽃 여행을 갔을 때 경남 하동 지역에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어요, 제주도를 갔을 때도 비가 왔는데, 매화꽃과 함께 비를 보니, 그냥 비처럼 보이지 않고 금으로 된 비가 내리는 시각을 주더라고요"라며 금비를 그려 넣은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3년 여 만에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쉽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제가 봤을 때 편안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이 안정되는 기억을 주고 싶습니다." 고 부탁도 했다. 성영록 작가는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수료 후 2006년 갤러리 피프틴에서 첫 개인전을 펼쳤다. 대구 아트페어, 아시아 톱 갤러리 호텔 아트 페어, 아트 오사카 2011 등의 기획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성남아트센터, (주)삼성TESCO 홈플러스, ETRO Korea, KT&G, 제일건설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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