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까만 먹으로 그려진 산수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그림과 달리 온통 까맣게 그려진 산의 모습은 엄숙함이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산의 기운이 담긴 듯 힘찬 붓 터치는 산이 가진 강인한 매력을 화폭에 표현한 것처럼 보였다. 많은 화가들이 자연풍경이나 산수를 그리지만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산수는 무언가 달라 보였다. “특별히 산수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없어요. 전라도 진도가 고향인데 어릴 때부터 산을 보고 자랐고 이러한 기억이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산수에 관심도 많았지만 그 시절 영향이 가장 컸어요. 대학시절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산수가 잘 맞고 재미있었죠.” 서울 연희동에서 만난 박종걸 작가는 오랜 시간 산수를 그려왔지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보다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는 일반적인 산수 그림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분위기보다는 산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나 힘을 담아 표현하고자 했다. 이에 까만 먹을 통해 잔잔함보다 강한 터치와 색감으로 긴장감과 산의 기운을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만의 산수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과 다름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구나 하는 궁금증이 풀렸다.
“그렇다고 산을 아주 좋아하고 자주 다니지는 않아요. 산을 그리다보니 산이 좋아진 거고 직접 다니면서 스케치나 드로잉을 하고 있죠. 그림이라는 게 말로 되지 않으니까요. 느낌으로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나만의 느낌과 생각으로 나만의 산수를 그려보자 했어요. 특히 북한산을 많이 그렸는데 북한산은 일반산과 다른 맛과 느낌이 있었어요. 다들 많이 그리는 북한산이지만 남들과 다른 나만의 북한산을 표현하고자 했고 이를 종이에 담아냈죠.” 많은 산이 있지만 그는 북한산을 주로 그렸다. 북한산은 그가 생각하기에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고 남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기존 산수와는 다른 이러한 산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나 힘을 담고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로 야외에서 스케치 및 사생하면서 드로잉을 직접 하는 그는 평소 매일 작업을 한다. 작업이 그에게는 일이기에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는 처음 드로잉을 할 때는 자세히 표현하는데 그림으로 옮기면서 하나하나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담아 순간적으로 그린다. 평소 느낌과 생각을 한 순간에 화폭으로 옮기니까 충동적으로 빠르게 그려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짧지만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수십에서 수백 개의 그림을 그린다. 다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때로는 하나의 작품을 얻기까지 한 달 내내 그리기도 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전통 산수화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점점 추상 작업을 많이 하게 됐죠. 산 속 계곡 같은 경우는 터치 위주로 그리는 등 현재도 구체적인 표현보다 추상화 되는 것 같아요. 형태보다 느낌을 강조하는 산수로 변화되고 있는 거죠. 선자체가 여러 선이 아니라 간결하게 터치 위주로 그리는데 큰 느낌이 한 눈에 들어왔으면 해요. 산수의 형태가 흐트러져가는 과정이에요.”
개인전을 연지 2년 정도 됐다는 그는 항상 계획하고 있으며 언제든 전시를 열 준비가 된 작가다. 앞서 얘기했듯이 일상이 작업이기에 작품은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전남 진도서 자라며 산수와 호흡 그동안 많은 대학에서 동양화 수업을 맡았던 그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존중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앞으로 종이와 먹뿐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언제든지 바꾸고 시도해볼 생각이 있다는 그는 우리의 생각이 담긴 동양화가 오히려 해외에서 더 메리트가 있고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남들과 다른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산수를 화폭에 펼쳐놓은 그의 작품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충동과 느낌이 담긴다.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이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바라보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자연의 기운을 느껴가길 바랐다. - 김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