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한국 현대조각의 존재를 국제무대에 알린 첫 계기였던 1953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 국제조각공모에 김종영(1915~1982)이 입상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김종영이 동시대 미술을 수용해 오늘날 그의 후학들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 한국 현대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특별전 ‘통찰’(洞察)이 4월 26일부터 7월 7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전관에서 펼쳐진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의 중요성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각백 김종영의 문자향과 서권기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과 인품의 합일된 예술세계를 조망한다. 창원의 유서 깊은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김종영은 일찍이 시서화에 능한 조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전통의 뿌리를 지닌 작가로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조각가라는 업을 택한 이후 한 번도 외부에 자신의 글씨를 공개하거나 전시한 적이 없었다.
"세잔느의 화면에서는 유려한 리듬은 볼 수 없다. 그의 회화는 그렸다기 보다는 축조했다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일반적으로 서예의 미는 선의 리듬에 있는 것으로 보는데, 완당의 예술은 리듬보다도 구조의 미에 있다" 서화는 심신 수양의 방편이며 그 도구와 재료에서 비롯된 '체득의 미학'은 얘기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명리에 뜻을 두지 않은 채 자기수양의 도구로 삼은 선비정신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어록이다. 김종영이 남긴 수많은 드로잉 작품 들 중 작품 제목이 '방고화'(倣古畵)인 것과 겸재의 '금강산 전도'와 같이 '임모'(臨模)하는 자세를 그린 수채화작품들, 그리고 추사의 '세한도'를 모티브로 집 주변의 풍경을 그리고 동일한 제목을 정한 것을 통해 '온고지신'하고 '법고창신'하려했던 김종영의 예술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함께한다. 그는 수묵화에 대해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한 즐거움과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는 자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다분히 예술의 바탕과 상통된다고 보겠다."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현실적인 이해를 떠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유희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없이는 예술적 진전을 볼 수 없다. 조각에 있어 김종영이 추구한 목표는 전인적 자기수양과 '통찰'이었다. "나는 완벽한 작품이나 위업을 모색할 겨를도 없었고, 거기에는 별로 흥미도 갖지 않았다"며 평생을 추구한 불각의 미가 돌과 나무 등 범속한 일상의 질료에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전시는 1950년대 자각상을 시점으로 김종영의 초기 작업과 대표작품들을 본관 불각재에서 감상하고 이어지는 신관 사미루에서는 김종영의 후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각각 1전시실에서는 주요 추상 작업들과 스케치를 살펴본다. 2전시실에서는 2012년 창원 MBC 제작 방송됐던 우성 김종영의 생애 동영상과 전시작품 영상을, 3전시실에는 김종영이 사용했던 지필묵과 서첩을 다양한 크기의 족자와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비판과 반성이라는 예술가의 정신적 조건을 실천했던 김종영이 현대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이되 모방이 아닌 창작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던 정신적 토양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