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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기 문화 칼럼]보리고개 넘긴 新꽁보리밥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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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4호 박현준⁄ 2013.04.29 14:13:32

보리고개, 송구죽, 보리개떡, 꽁보리밥, 보리방귀, 아이의 볼록한 개구리배, 냉수로 배 채우고 힘든 봄날의 논밭일... 꽃피고 새우는 봄을 한타령으로 변하게 했던 춘궁기 우리네 조상들의 빈한한 생활모습이었다. 춘궁기에 아침밥을 먹지 못한 아이가 동네 부잣집의 술막지를 얻어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학교에 나온 기억들이 중년이면 한번쯤 생각날 것이다. 가을농사에서 거두어들인 곡식들이 겨우내 다 없어지고 봄에는 식량이 거의 다 떨어진다. 봄철의 첫 수확은 보리다. 그런데 보리가 익을 때까지 양식이 남아있지 않으면 소나무 껍질로 송구죽을 쑤어먹고 쑥을 캐어다가 쑥떡을 해먹거나, 설익은 보리를 베어서 보리개떡을 해먹는다. 물난리나 가뭄이 심한 다음 해의 봄은 그야말로 배고픈 나날들이었다. 그 봄에 아이들의 배는 올챙이배처럼 되고 어른들은 허기진 배를 우물가에서 물 한사발로 채워야 했다. 기억하기 싫은 춘궁기의 추억 양식이 떨어진 때라 처음 수확한 보리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많았다. 어린 보리 싹으로 보리국을 끓여 먹는다. 이른 봄에 된장을 푼 물에다 홍어의 서덜(살을 뗀 나머지)과 어린 보리싹을 넣어 끓이는 전라도 지방의 보리 음식이다. 보리개떡은 보릿겨나 싸래기로 만든 떡으로 손바닥만하게 반대기를 만들어 밥 위에 얹어 찌거나 큰 솥에 정그레를 놓고 채반에 베보자기를 깔고 찐다. 보리를 수확해야 그제 샤 허기진 배를 꽉 채울 수가 있었다.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인 할아버지 진지에만 띄엄띄엄 쌀이 섞이고 그 외의 식구는 꽁보리밥이다. 요즘은 꽁보리밥이 ‘건강식이다, 별미다’ 하여 일부러 음식점에서 꽁보리밥에 된장 상추쌈을 해서 팔지만 보리밥 이외에는 다른 음식이 따로 없었던 시절에는 마지 못해서 먹어야하는 음식이었다. 보리국, 보리개떡, 꽁보리밥, 보리술 등 보리로 만든 음식들을 먹고 나면 왜 그리 방귀가 많이 나오는지 ‘빵구타령’이 나올 정도였다. “시아버지 빵구는 호령빵구, 시어머니 빵구는 잔소리빵구, 빵구타령에 춤 나온다, 동서의 빵구는 욕심빵구, 시누이 빵구는 알랑빵구, 신랑의 빵구는 찹쌀빵구, 시동생 빵구는 사탕빵구, 얼씨구나 얼씨구나 얼씨구나, 태평성대로 놀아보자”

밥 먹을 때 농부의 노고 기억하자 그 고달픔과 인고 속에서도 우리네들은 빵구타령으로 보리고개를 넘었다. 그러나 이제 보리고개의 한타령들은 아리랑의 흥타령으로 변했다. 경운기를 비롯하여 농기구의 기계화, 종자개량 등으로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서 보리고개는 신나는 아리랑고개로 변해갔다. 그래서 십수년이 지난 오늘 어제의 보리고개가 버리는 음식이 수 조원이 이르는 오늘의 처지에서 생각할 때 격세지감이 난다 일찍이 옛 선인은 말하기를 “하루 세 끼의 밥을 먹더라도 매번 농부의 고달픔을 되새기고, 몸에 한 오라기의 옷을 입었을지라도 항상 길쌈하는 여인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라” 고 했는데 배고픔과 헐벗음을 모르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 고달픔과 수고로움을 상상이나 할까! 지게에 똥장군 지고 그 길고 지리했던 보리고개 언덕을 배고픔과 고됨으로 넘던 것이 이제는 경운기에 라디오를 달고 대중가수의 봄노래를 들으면서 널찍한 고갯길을 힘차게 넘어간다, 보리 고개 대신에 아리랑 고개를.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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