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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 - 17]전쟁과 미술

임안나 사진작품, 사회부조리에 대한 고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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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6호 박현준⁄ 2013.05.13 14:27:35

요즘 뉴스는 온통 전쟁 관련 내용이다.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한껏 조성한 탓이다. 대다수 국민은 전쟁 발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잦은 전쟁 협박에 이미 단련된 덕 혹은 탓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사일을 쏠 것인가?” “전쟁은 과연 일어날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필자도 전쟁 관련 소식을 영화 속 이야기로 치부할 정도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협적인 일을 두고 심각해지기보다는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걱정을 하는 친구를 오히려 순진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허무맹랑한 긍정적인 상상을 해본다. ‘일 욕심으로 피곤한 일상을 다 내려놓고 쉴 수 있겠다’ ‘사회적 지위가 무의미해지니 계층 간의 힘겨루기도 사라지겠다’ ‘편견이나 갈등 따위로부터 자유로워지겠구나’ 등이다. 이런 ‘쓸데없는 상상’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전쟁으로 말미암은 미술의 운명도 생각해볼 문제다. 회화나 조각은 전쟁과 함께 훼손되거나 소멸하기도 한다. 반면, 디지털 사진작품은 원본 파일만 있으면 된다. 전산망이라는 비물질적인 공기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높고 낮음의 경계도 무너진다. 희소성에서 회화가 사진을 두고 우월한 입지를 과시하는 일도 전복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왕좌의 주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필자가 상상한 것들은 모두 전쟁 때 존재감의 상실이나 재정립에 관한 내용이다.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씁쓸해진다. 미술은 전쟁에서 하찮게 치부될만한 부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술이 한순간 초코파이 하나보다 못한 존재로 밀려난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허무할 수 없을 것 같다.(전장에서 군인에게 초코파이 하나는 무엇보다 귀중한 식량이다) 이런 허무함을 다시 미소로 채워주는 것은 역시 미술작품이다. 전쟁을 주제로 작업하는 임안나 작가의 사진작품은 필자의 의문들이나 상상에 대해 다시금 물음표를 달게 한다. 실제 군부대의 군용기를 촬영한 작품들에는 광고촬영용 조명과 기기들이 노출돼 마치 전쟁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킨다. 음식을 제외한 공간과 사물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작품도 있다. 여기서는 장난감 병정들이 음식에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임안나가 구성한 이미지들은 그동안 전쟁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각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가 전쟁의 실상이라고 믿는 것들은 영화나 매스컴에서 접하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전쟁에 실제로 가담하지 않은 대부분은 보도자료 이면의 실상을 알 수 없다.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일 앞에 나라는 개인의 의지는 영향력이 없다. 대중은 무기력해지는 한편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판타지를 키우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개인은 자신이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게임과 영화라는 공간에서 전쟁이라는 소재를 끊임없이 다루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게임이나 영화가 만들어놓은 판타지에 익숙해지면서 비판의식 없이 즐기는 대상으로 전쟁을 바라보게 된다. 임안나의 작업은 이러한 현상을 포착한다. 실제 군용기가 잔인한 무기라기보다는 멋진 영화의 소품으로 느끼는 현상, 장난감 병정들이 맹목적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게임이나 놀이의 한 장면으로만 인식하는 현상은 실재 전쟁을 두려워하는 인간 최대의 부조리를 녹여낸다. 인생의 공허함을 의미있게 채워주는 게 예술 이처럼 비평적 시각을 쌓아가도록 자극하는 것에 시각적 유희를 더한 것이 미술의 ‘쓸모 있음’이다. 모두가 그저 자연스럽게 여기는 현상들의 이면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드러내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민을 사서 하는 것, 인생의 공허함을 의미 있게 채워주려는 것이 바로 예술이고 철학이다. 따라서 미술에 관련된 일들도 결코 허무한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위안으로 삼는다. 제안하고 싶다. 전쟁 자체를 유희와 감동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부조리한 시각을 끄집어내는 미술작품에 진심으로 반응해보면 어떨까. 전쟁에 비평적 시각을 가진다 한들 당장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삶의 의미나 존재감을 좀 더 소중하게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냉소주의, 허무주의 보다는 이 시간 속 건강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 신민 진화랑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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