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식시장을 절대 이길 수는 없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전오종 유리치투자자문(주) 대표이사의 말이다. 전쟁터와 같은 주식시장에서 반평생이 넘도록 혈전을 펼쳐오며 오직 팩트만의 승부사로 살아온 달인이 전한 말이어서 의외였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이해가 됐다. 전 대표는 “과거에 조직에서 책임자로 일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는 자만심으로 주식시장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더욱이 지난 2009년(당시 56세)에 직접 창업을 하고 보니 내가 도저히 피해나갈 수 없는 절대 고독이 찾아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부터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비로소 주인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대한투자신탁(현, 하나대투증권과 하나UBS자산운용)과 인연을 맺은 이후, 오직 투자전문가로서의 외길을 한 눈 팔지 않고 달려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매우 겸손해하면서 이제부터가 자그마한 시작이라고 했지만, 그간의 경험과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전문가로서의 장인정신은 물론 인문적 소양이 어우러진 뚜렷한 가치 철학이 스멀스멀 피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전 대표는 적지 않은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30여 년 동안 배우고 익힌 금융기술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자본시장에서의 좋은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이제는 유리치를 통해 시스템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전 대표는 주식시장이라는 정글을 헤쳐 나오면서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대투에서 책임자로 일할 당시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와 대우사태가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통제할 수 없던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 전 대표는 처음에는 환경 탓을 했다. 하지만 1년여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후에 돌이켜보니 결과가 나쁜 것에 대한 모든 원인은 결국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전 대표는 외환위기 여파로 외환은행이 외국의 코메르쯔 은행에 인수되고 자산운용사가 설립되면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연봉을 보장받고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운용자산이 약 2000억 원 규모에 불과했지만, 전 대표는 특유의 성실함과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3조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또 전 대표가 랜드마크 자산운용(모건스탠리그룹)과 ING 자산운용 부사장을 지낼 때에는 선진금융기법과 기본원칙을 중시하는 조직문화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전 대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쓰기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 쓰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이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 자기를 성찰해 볼 수도 있고,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때로는 아이디어 뱅크 역할도 하더라”면서 “인간에게 세월이 지나면 실제로 남는 것은 사람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일관성 있게 같은 색깔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브랜드는 일관되게 같은 색깔을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 전 대표는 “유리치를 창업할 당시 나는 설립 자본금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창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때 오랜 기간 서로 알고 지내면서 절친한 두 명의 후배 기업인이 창업에 대한 나의 플랜을 듣더니 각각 상당한 금액을 출자한데 이어, 서울신용평가정보를 인수해 공동경영하고 있으며, 향후에 유리치 등이 성공해서 잘 되면 공동으로 사회사업을 위한 재단 등을 설립해서 사회공헌에 기여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회고했다. 전 대표는 이어 “유리치는 경험과 지식만으로 주식시장과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시장과는 싸워서 이길 수도 없다. 진정한 브랜드란 일관되게 같은 색깔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기 스스로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품을 브랜드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고객을 위해 시스템을 통한 안정적 수익을 일관성 있게 내는 브랜드 상품을 만들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전 대표는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그는 그 이유로 클래식을 들으면서 스스로 평정을 찾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전 대표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와는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리더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물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도 생각이 다른데 모두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버리면 나도 편해진다. 결국 진정한 평정을 찾는 모멘텀은 다른 것을 인정하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전 대표는 과거 조직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할 때와 현재 직접 창업해서 오너로 일하는 것에 특별한 차이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같은 경영자라고 해도 오너와 월급쟁이는 천지차이인 것 같다. 내가 전문경영인으로 일할 때는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성과를 창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오너로서 일을 하다 보니 오너는 ‘무에서도 유를 창조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오너가 아무리 비리비리하다고 해도 최고의 스펙을 보유한 전문경영인 10명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 같다. 이는 주변에서 오너로 경영하는 지인과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는 지인들을 살펴보고, 또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니 이제는 이해가 되더라”고 말했다. 평정을 찾는 모멘텀…다른 것을 인정해야 전 대표는 또 교보문고 독서경영대학과의 인연에 주목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교육기관을 전전하면서 배움을 확장하려고 노력했지만, 강의를 듣다가 10분만 지나면 쏟아지는 졸음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교보에서의 강의는 내가 거의 세 시간 동안을 몰입해서 듣게 됐으며, 여기에서 인문적 소양을 쌓음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 철학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그곳에서 기자와 만난 인연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며 앞으로 서로 좋은 인연으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전 대표는 “유리치 비전 2020을 준비했다. 최근 전 세계적인 장기 불황과 더불어 주식시장도 좋지 않고 채권 수익률도 변변치 않다. 결국 앞으로는 헤지펀드가 대세로 떠오를 전망이다. 헤지펀드는 기본적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익률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나름 전문가 집단인 우리를 믿고 귀한 돈을 맡긴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고 본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잘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전오종 유리치투자자문(주) 대표이사 ·현) 서울신용평가정보 부회장 ·솔로몬투자증권 부사장 ·ING 자산운용 부사장 ·랜드마크 자산운용(모건스탠리그룹) 부사장 ·외환 코메르쯔 자산운용 전무 ·대한투자신탁(현, 하나대투증권과 하나UBS자산운용) 법인본부장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