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호 정의식⁄ 2013.08.26 11:28:20
국내 최대의 호텔 체인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권대욱 사장(63). 사실 그는 지난 2011년 KBS 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에 출연해 ‘노래하는 CEO’로 더 유명하다. 화제를 모았던 오디션 통과 뒤 다양한 합창 미션에 도전해 마침내 연말 ‘2011 KBS 감동대상’까지 수상했던 청춘합창단 일원인 그가 8월 15일 희망을 담은 에세이집 ‘청산은 내게 나되어 살라하고’를 출간했다. 호텔 경영자와 합창단원, 대학교수와 멘토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CEO’ 권대욱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대욱 사장의 프로필은 언뜻 보아도 굉장히 화려하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불과 35세 나이에 한보건설 사장을 맡았다. 이후 유원종합건설, 극동건설 사장을 역임하고, 호텔업에 뛰어들어서는 호텔서교 하얏트 리젠시 제주 사장을 거쳐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CEO로 근무 중이다. 그런 가운데 KBS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작가로서 4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강연과 멘토링도 열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선택받은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떠한 좌절도 어려움도 겪지 않고 살아왔을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픔 없는 인생은 없다”고 권 사장은 말한다. ‘1951년생’이라는 프로필 첫 줄은 그가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대사의 질곡 한 가운데에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어머니께서는 스무 살에 결혼하셔서 아들 하나 낳고, 스물하나에 남편을 잃은 뒤, 6.25 전쟁 와중에 정말 많은 고생을 하시며 힘겹게 저를 키우셨습니다.” 재작년 82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동대문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그를 키웠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은 단 하나 ‘외아들 잘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고,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졸업 후인 1974년 바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생활 시작이 공무원이었다는 것은 지인들도 잘 모르는 얘기다. 하지만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농림부에서 농지개량조합 관련 업무와 간척사업 등의 업무 담당했다. 하지만 3년 만에 공무원을 그만두게 된다. “봉급이 너무 적었어요. 당시 월급이 5만2700원이었는데, 가장으로서 가정을 꾸려가기에는 너무 힘든 금액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편법을 써서 돈을 벌고 싶지도 않았구요. 결국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건설회사에 취업했지요” 건설 회사의 첫 봉급은 이전 공무원 시절의 3배라서 그를 들뜨게 했다. 이후 초고속으로 승진가도를 질주하게 된다. 입사하자마자 주임을 달고 6개월 뒤엔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35세에 한보건설 사장으로 임명됐다. 초고속 승진의 비결에 대해 권 사장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로 “일에 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직급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직급에 있던 일을 끌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에 끌려가서는 일에 종속되는 사람이 됩니다.” 요즘도 후배 직장인들에게 ‘일이 주는 행복의 의미’와 ‘일터를 대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해외 공사에서 명성을 날리며 실적을 쌓았지만 IMF 때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그가 CEO로 있던 극동건설은 해외 건설 위주로 운영되는 건실한 회사였다. 하지만 동서증권 부도와 함께 계열사들이 한꺼번에 법정관리를 받게 되고, 하루아침에 사장에서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초고속 승진, 성공신화 창조와 좌절 “명함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서,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권 사장은 당장 다음날부터 어디 나가기가 싫었다고 고백한다. 명함 교환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모임 같은 곳에 나가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옹골치 못했습니다. 계급장 떼고 자연인으로 호호(浩浩)하고 당당(堂堂)하고 담담(淡淡)한 인간이 되어야 했는데, 뭐 지금도 완벽하게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일이 없고 명함이 없는 상황을 참지 못해 ‘전문경영인이 아닌 내 사업을 해보자’라는 결심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조급한 마음으로 준비없이 의욕만 가지고 시작한 사업은 잘 되지 않았다. “투자금 유치는 쉬웠어요. 이틀 만에 전화만으로 12억원을 유치했으니까.” 2000년 도시생활이 싫어지고 남들 보기가 미안해져 강원도 산간에 조그만 집을 짓고 2년을 살았다. 혼자 고독함을 즐기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처절하게 자신과 부딪혔다. 이 시기를 “사람이 되는 기간이었다”라고 회상한다. 우울함이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주저앉거나 하지도 않고, 그는 ‘긍정의 힘’을 믿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러던 가운데 친구들이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다. 친구인 아주그룹 문규영 회장이 그에게 “호텔에 와서 사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처음에 거절했다. “나는 호텔의 ‘호’자도 모르는 건설만 해온 사람인데 어떻게 호텔 경영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 회장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니다. 권 사장은 할 수 있다”라고. 호텔 사업 뛰어든 후 마음의 평화 얻어 호텔서교 하얏트 리젠시 제주의 사장을 맡으며, 호텔사업에 투신한 권 사장은 현재 아코르 앰버서더 코리아 호텔 매니지먼트(AAK, Accor Ambassador Korea Hotel Management) 대표를 맡고 있다. AAK는 프랑스의 세계적 호텔체인 ‘아코르’와 56년 역사의 국내 최대 호텔그룹 ‘앰버서더’가 합작으로 세운 호텔경영 전문회사다. 앰버서더는 한국 최대의 호텔 체인이다. 아코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넘버1 호텔 체인으로, 앰버서더는 국내에서 11개의 아코르 브랜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아코르의 대표 호텔 브랜드는 소피텔(Sofitel), 풀만(Pullman), 노보텔(Novotel), 머큐어(Mercure), 이비스(Ibis) 등 5종이다. AAK는 현재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다. 아코르 브랜드 호텔은 9월말이면 12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5년까지 한국 전역에 20개 호텔 체인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AAK의 계획이다. “건설회사 사장 시절엔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 매일매일이 사건들과 자금난의 연속이었지요. 호텔업에 온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호텔 역시 매일 여러 일들이 발생하지만, 아코르는 업무 배분이 잘 되어있다고 한다. 현장의 일은 총지배인이 전담하고 경영자인 그는 큰 전략을 짜고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 임직원의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일에 집중한다. “돈 걱정을 안 하는 것도 크지요. 다른 사장들이 돈 빌리려 은행 찾을 때 저는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을 찾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사장들이 부러워하는 사장이다. 현재 한국의 호텔 산업은 지난 해 호황에 비해 조금 줄어든 상태지만, 큰 위기는 아니라고 그는 진단한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담담하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론 관광한국의 호텔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여행객에 비해 호텔이 부족하고, 그나마 쏠림 현상이 심해 명동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만 호텔이 밀집되어 있으며, 지방은 여전히 심각하게 부족하다. AAK가 지방에 호텔을 많이 설립하려는 이유다. 색다른 도전 ‘청춘합창단’ 어린 시절 좋아하던 ‘노래’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도 AAK의 사장으로 재직하며 여유를 얻은 덕분이다. “젊었을 때 건설업 대표직을 맡을 때는 쉴 틈이 없었고 쉴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저도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주주들이 흔쾌히 동의해준 덕분에 청춘합창단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소는 무모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었던 그의 엉뚱한 도전은 의외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청춘합창단의 국민적 인기 덕분에 노래하는 60대 CEO가 하루아침에 연예인 수준의 지명도를 얻게 된 것이다. 호텔을 방문한 사람들 중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고, 이는 호텔의 지명도와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 그리고, 권 사장은 무엇보다 큰 것을 얻었다. “합창단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젊은이들에게 멘토링을 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겠다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얻게 됐지요.” 방송에서 놀라운 노래실력을 보여줬지만, 사실 그가 성악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노래를 잘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청춘합창단에 참여하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지금도 그는 합창단 활동을 계속 진행중이다. 청춘합창단 멤버들과의 활동이 방송이 종료된지 2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학창시절 동료들과 만든 KBF 남성중창단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호텔 경영과 합창단 활동만으로도 바쁜 권 사장의 갑작스러운 산문집 출간은 다시 한번 그를 아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길래 책을 쓸 시간이 났을까? 권 사장은 매일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이 조용한 그 시간엔 읽고 쓰는 거 밖에 할 일이 없다고. 주말엔 무조건 강원도 원주 문막의 산막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색하며, 글을 쓴다. 새벽4시에 하루 시작, 책 4권 출간 권 사장이 출간한 책은 이번이 네 번째다. 첫 번째 책은 지난 1997년에 출간한 ‘개방시대의 국제건설계약’이라는 전문서적이다. 국내 건설 기업들이 해외에서 계약 노하우가 부족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 집필 동기다. 두 번째로 내놓은 책은 번역 서적이다. ‘The New CIO Leader’라는 IT전문서적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것은, 영어 실력이 퇴화하는 것을 다잡고 싶어서였다. 세 번째로 내놓은 책은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 도전기’로 합창단에 참여하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과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활동 중에 틈틈히 적은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한 것이 바로 희망을 담은 에세이집 ‘청산은 내게 나 되어 살라 하고’다. 이 책에 대한 권 사장의 소회는 남다르다. “이번 책은 제 얘기를 적은 것입니다. 그만큼 조심스럽습니다. 학생들, 직장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권 사장에 따르면, 글이란 것은 원래 그 사람의 현실보다는 이상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을 결심한 것은 나름대로 살아온 과정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과 사람, 자연과 음악, 삶과 행복, 가족과 친구, 일상의 이야기들을 호호(浩浩)와 당당(堂堂), 담담(淡淡)의 세 항목에 나누어 담았다. 건설회사 CEO 출신으로 산막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해 헤맸던 이야기, 다섯 살 꼬마 시절 고려대 학생들 앞에서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구성지게 부르고, 환갑이 넘어서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팠던 꿈을 이룬 이야기, 중요한 면접을 앞둔 아들을 위해 쓴 편지와 머나먼 요르단의 댐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일기를 복원하며 그리움과 후회를 느꼈던 일, 현대사의 슬픔이 담긴 가족사 이야기 등등 이 책에는 그가 살아오며 겪고 느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다. 평생 3권의 책을 쓰고 싶었던 권 사장은 이미 4권의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집필 욕심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도 대학 강의에서 후학들에게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제가 해보니까 좋아서 권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참 좋은데, 자신이 글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오랫동안 몰랐었습니다.” 그는 산막에서 홀로 글을 쓰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책을 쓰고 나면 그동안 어질러졌던 것이 정돈되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잃어버리기 아까웠던 것들,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것들이 잘 갈무리되는 느낌이지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다고 한다. “쓰고, 말하고, 놀고, 저는 ‘쓰마노’라고 말하는데, 쓰마노 인생을 살고 쓰마노 클럽도 만들 생각입니다.” 그의 쓰마노 인생계획에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로 ‘세상에 공헌하는 삶’이다. “재능이 있다면 나눠야 합니다. 앞 세대가 얻은 삶의 경험과 지혜는 뒤 세대에 전수되어야 합니다.” “쓰마노 인생 살며 세상에 공헌할 것” 그가 멘토링에 전념하고 있는 이유다. “멘토링 소사이어티는 국가적 과제입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사람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죠. 그렇다면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지혜와 경륜을 가진 앞 세대가 멘토가 되고, 열정과 꿈이 있는 젊은이들이 멘티가 되어, 멘토들과 멘티들이 거미줄처럼 얽히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강국으로 갈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젊은이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실제 만남도 지속적으로 가져왔다. 열정과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을 만나 함께 얘기하고 조언하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전쟁의 가난 속에 태어나, 화려한 호텔의 경영자가 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추구하며, 후학을 위해 조언하는 권대욱 사장의 현재는 어쩌면 대한민국의 가장 이상적인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세상을 향해 열린 따뜻한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로 배달되기를 기대해본다. -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