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호 최정숙⁄ 2013.08.26 11:29:42
“그동안 북한은 아스팔트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남북 대화의 싹을 틔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은 토양에 심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였기 때문이다. 십 수 년 간 깔려 있던 견고한 아스팔트를 박근혜정부가 6개월 만에 걷어 내기 시작했다. 앞으로 박근혜정부가 뿌린 ‘대북 씨앗’이 아스팔트가 아닌 토양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본다.” 전지명 동국대 사회과학대학 겸임교수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을 이같이 평가했다. 광복절 전날인 8월14일, 남북은 북한의 일방적인 폐쇄조치로 중단됐던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중단 133일 만이었다. 그 사이 야당에서는 양비론을 내세워 우리 정부의 양보를 촉구했다. 상당수 언론은 대북관계가 얼어붙었다고 했고,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을 거론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면서 ‘재발방지 우선’이라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전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 북한의 외국인 투자제도(2011년, 삼영사)’를 통해 북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조세제도 등을 진단한 바 있다. 전 교수가 말하는 최근 북한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8월20일 전지명 교수와 CNB의 일문일답. - 지난 14일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공단 정상화의 청신호가 켜졌다.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사필귀정이다. 개성공단 중단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는 북측이 늦게나마 우리 정부의 의지를 이해하고 수용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합의에 전향적으로 나온 배경에는 북한이 지금 직면해 있는 최악의 국내 정치와 경제 상황을 들 수 있다. 간접적이겠지만 중국의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요구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근혜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즉 확고한 대북정책 원칙이 북한의 자세를 처음으로 바꾸게 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시 우려되는 점이 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근로자들이 일을 하다보면 우리에 대한 우호적 인식의 확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알게 모르게 피부로 느끼게 돼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바뀔 수 있다. 그 점에 대해 북측에서 견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우리 입주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숙련된 근로자들이 그대로 투입될지, 새로운 근로자들이 투입될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비숙련 근로자들로 대체된다면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북 합의 사항을 이행할 ‘남북공동위원회’ 구성도 조만간 이루어질 전망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여러 논의가 나올 텐데 특히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나. 합의서를 보면 ‘남과 북은 개성공단 내에서 적용되는 노무·세무·임금·보험 등 관련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부분이 있다. 국제적 수준이라고 돼 있는데 북한 근로자의 임금은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 범위 내에서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2005년 개성공단 가동이 시작될 때 북한 근로자의 기본임금은 월 50달러로 설정됐다. 그 이후에 북한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68.1달러에서 2007년 71.0달러, 2008년 74.1달러, 2009년 80.3달러, 2010년 93.7달러, 2011년 109.3달러, 지난해 128.3달러로 꾸준히 상승했다. 불과 7년 사이에 최초 임금에서 약 2.5배나 올랐다. 더군다나 임금은 우리 측 입주기업이 북측 근로자가 아닌 당국에 달러로 지급한다. 이 가운데 55%만 그들에게 생활필수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이나 북한 돈으로 지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측은 앞서 6차 회담 때 공단 재가동 조건의 하나로 근로자의 임금을 크게 올려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는 말이 있다. 북한 근로자 임금의 거의 절반은 북한 당국이 사회보험료 등의 명목으로 떼어가고 있다. 개성공단은 이른바 3통(통행, 통신, 통관)의 제약 등에 따른 간접비용이 크기 때문에 입주 기업 가운데 만족할 만한 이익을 내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는 공단 입주기업더러 도산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임금은 해당국의 국민소득과 연계돼 있다. 북측이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고 싶다면 자국의 국민소득을 올려야 한다.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기보다 개성공단 활성화와 국제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나라 기업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업도 마음 놓고 투자를 할 수 있다. - 북한이 추석 명절 이산가족 상봉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유가 뭘까(남북은 다음달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열기로 23일 합의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사안이다. 북측이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수용한 것은 남북 화해와 단합을 위해서 성의 있는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대북지원을 막고 있는 ‘5·24 조치’ 해제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사면초가에 놓인 북한의 입장에선 정국 변화가 필요한 차제에 남북 관계 개선이나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피하면서 경제적 실익 극대화 의지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러한 예측의 바탕위에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연계하려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지. 당연히 분리 대응해야 한다. 이미 북측은 개성공단 실무 협상 와중에 금강산관광 재개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고 한다. 인도주의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정치적 사안인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동시에 논의하자고 한 것은 그만큼 금강산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절실함이 크다는 의미다. 금강산 관광을 통한 경제적 실익, 즉 한 해 수백만 달러의 현금 수입이 말해 주듯 북측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현실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재개는 지난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 재발방지 등 3가지 사항에 대해 북한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 이후 전개될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 우리 정부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5·24 조치’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 등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의 잠정적인 중단 조치다. 우리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 및 가시적인 선행 조치가 있어야만 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박근혜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이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비유적으로 말해 아스팔트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남북 대화의 싹을 틔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은 토양에 심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아스팔트였기 때문이다. 아스팔트에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린다고 싹이 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다. 돌이켜 보면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기반으로 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아스팔트 포장공사에 일익을 맡은 격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되레 이용만 당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돼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십수년 간 깔려 있던 그 견고한 아스팔트를 박근혜 정부가 6개월 만에 걷어 내기 시작했다.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는 전과는 달리 이제 우리가 쥐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변할 수가 없지 않은가.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뿌린 ‘대북 씨앗’이 아스팔트가 아닌 토양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북한으로 하여금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어 한반도의 평화 무드를 만들어 낼 것이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기반도 조성할 것이라고 본다. 남북 당사자 간 대화와 협상에 있어서 협상을 어떻든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양보도 필요하다. 북측은 지금껏 한 번도 우리 요구를 제대로 수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북측에서 우리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건 북측의 숨어 있는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대응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 그 동안의 남북대화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 3년 전 지방선거 때 야당은 ‘1번 찍으면 전쟁, 2번 찍으면 평화’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은 당시 야당의 구호를 무색케 했다. 북한은 그동안 전쟁발발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이른바 ‘벼랑끝 전술’을 펼쳐왔다. 이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상투적인 전략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는 이에 휘둘렸다고나 할까. 과거에는 북한이 갑이고 우리가 을인 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사실 북한은 전쟁을 치룰 능력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한 전쟁을 일으킬 입장이 결코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의 경제도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굶주림 때문에 탈북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의 심각한 경제난을 미루어 보아 국지적 도발이 아닌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은 세습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대내적 긴장조성을 위해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높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시 야당의 구호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현실과 무관한 선거 홍보용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 북한 김정은 정권이 계속 유지가 될까. 북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정권이 유지될지 속단은 어렵다. 사회주의를 표방해 온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봉건적 3대 권력 세습으로 가고 있는 정권이다. 원칙적으로 세습은 공산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공산국가에서도 세습에 의해 권력 승계를 한 나라는 없지 않은가. 북한은 이미 2010년 개정된 당 규약에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란 용어를 삭제했다. 이는 3대 권력 세습에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북한이 살 수 있는 길은 우선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신뢰획득과 개방정책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제는 체제유지만을 위한 폐쇄적 정치노선을 과감히 버릴 때라고 본다. 그리고 북한사회에도 자유로운 정치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저서 ‘북한의 외국인 투자제도’를 보면 북한의 조세 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세금이 없다. 세금제도를 1974년에 폐지했기 때문이다. ‘세금’이라는 명목 대신 ‘국가예산수입’이란 명목으로 바꿔 여느 국가나 다름없이 사실상 세금으로 징수하여 국가예산에 충당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예산수입’은 국가기업과 협동단체의 이익금, 부동산 사용금, 사회보험금, 기타 수입 등을 말한다. 단, 국가기업과 협동단체 소유가 아닌 합영회사나 외국인 투자기업 등은 예외적으로 ‘외국 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 법’에 따라 소득세를 내도록 돼 있다. 한 예로 지금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들이 북측에 우리나라의 ‘법인세’ 개념인 기업소득세를 내고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선동에 불과하다. 모든 국가기업과 사회협동단체가 국가소유인데 세금이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세금이 없다곤 하지만 자본주의의 세금과 같은 세입은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그들의 노동력이 바로 세금인 격이다. - 요즘 정치권이 많이 시끄럽다. 여야는 막말을 하며 정쟁에 몰두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앞서 언급한 개성공단 지원법 등도 국회에서 논의가 돼야 하는데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할까. 현 정치권을 들여다보면 조각가 로댕의 ‘지옥의 문’이란 조각 작품이 생각난다. 그 작품을 보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 서로 뒤엉켜 몸부림치며 고통 받는 모습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야수가 서로 함께 물고 뒤엉킨 모습이 떠오른다. 극단적인 우스갯소리로 표현한다면 야수의 세계, 바꾸어 말해 ‘너 살고 나 살자’라는 ‘상생(相生)의 정치’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살든지, 아니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상사(相死)의 정치판’ 같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줄인다면 우리나라 정치 수준은 아직 선진 정치가 아니라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야가 하루빨리 국회에서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 북한 관련 현안 등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 최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