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집 태생으로 풍류에 도가 튼 멋쟁이 젊은이가 기생을 데리고 단풍놀이를 가는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기생은 집이 없는 가마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간다. 갓이 벗겨질까 보아 잡고 가는 젊은이의 옷깃이 나부끼듯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면, 고갯마루의 가을바람이 몹시 세찬 것 같다…….중략"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가을 진경시대 궁중 미술가였던 화원들의 작품들을 선별해 13일부터 27일까지 '진경시대화원전'에 등장하는 혜원 신윤복의 ‘휴기답풍’작품의 설명이다. 진경시대란 조선왕조 후기문화가 조선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면서 난만한 발전을 이룩했던 문화절정기를 말한다. 숙종(1675∼1720)에서부터 정조(1776∼1800)에 걸치는 125년간으로 숙종 46년과 경종 4년의 50년간은 초창기에 해당하고 영조 52년은 절정기이 정조 24년은 쇠퇴기이다. 진경문화가 이 시대에 이르러 절정기를 보인것은 조선왕조가 국시로 천명했던 주자성리학이 조선전기 200여년 동안 제구실을 다한 다음 노쇠화 현상을 보이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의해 심화발전된 조선성리학이 대체 이념으로 부상해 인조반정(1623)을 통해 주도이념의 자리를 차지한 다음 이 시기에 완벽하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약관 29세로 인조반정에 참여했던 청강 조속(1595∼1668)은 반정 성공 후에 벼슬과 작위를 던져버리고 명산대첩을 찾아다니며 시(詩), 화(畵)로 이를 사생해 진경시와 진경산수화의 단초를 열었다. 고유이념이 생겼다는 자긍심이 자기애를 싹트게 하고 자기애가 민족애, 국토애를 불러와 우리 국토와 그 속에 사는 우리 민족의 풍속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내면의 정신성까지 묘사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이다. 이 전통은 삼연 김창흡(1653∼1722), 죽천 김진규(1658∼1716) 등으로 전해오다가 진경시대 초반에 이르면 삼연 문하에서 진경시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1671∼1751)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배출되어 진경시와 진경산수화를 완성해낸다. 진경산수의 주역들은 초기 진경풍속화 창시자들이 아닌 단원 김홍도(1745∼1806), 고송유수관 이인문(1745∼1824) 등 도화서 화원 화가들이다. 이번 전시는 진경시대 회화사의 흐름 속에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경시대 화원화가들의 그림들 중에서 각 시기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그림들 84점이 공개된다.
진경시대 초기부터 영조(1725∼1776)초까지 활동한 벽은 진재해(1661∼1729)부터 시작해 겸재를 따라 배운 불염재 김희겸(1710∼?)을 거쳐 현재를 모방한 호생관 최북(1712∼1786), 겸재의 정밀사생화풍을 본받은 화재 변상벽(1730∼?), 겸재와 관아재를 계승해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장식한 단원 김홍도와 고송유수관 이인문, 한양서울의 도회풍속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원 신윤복(1758∼?), 겸재와 관아재 및 화풍을 아울러 독자적인 진경풍속화풍을 이룩했던 긍재 김득신(1754∼1822), 초원 김석신(1758∼?), 김건종(1781∼1841)일가 등의 작품은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전시는 27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의 02-762-0442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