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캘리포니아 도로에서 벤츠나 BMW보다 자주 눈에 띄는 색다른 자동차가 있다. 흡기 그릴도 배기 머플러도 없지만 무서운 가속력과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세련된 슈퍼카 ‘테슬라(Tesla) 모델 S’가 그 주인공이다. 이 차의 폭발적 인기 덕분에 2003년 설립된 테슬라모터스는 ‘자동차 업계의 애플’로 주목받으며 미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CEO 앨런 머스크 역시 제 2의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고 있다. 전기차를 먼 미래의 일로 여겼던 자동차업계도 태풍의 눈 ‘테슬라’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미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중인 ‘테슬라’와 경쟁자들에 대해 알아보자. 100년 전에도 존재했던 전기차들 전기자동차는 사실 가솔린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83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1881년 9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전기박람회에서는 프랑스 발명가 구스타프 트루베가 만든 삼륜자동차가 작동되기도 했다. 1895년에는 전기삼륜자동차가, 1899년에는 10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전기자동차도 개발되었다. 1897년에는 전기차가 뉴욕의 택시로 채택되었고, 1900년에는 미국에서 전기차 점유율이 38%를 차지하기도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를 누른 것은 1920년대에 포드자동차가 ‘모델T’를 대량생산을 시작한 이후였다. 미국 서부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저렴한 연료 공급이 가능해지자, 가솔린 차량은 대량생산을 통해 한 순간에 자동차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기차의 강점은 다른 방식의 차량들보다 소음과 진동, 냄새가 적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기어 조작이 필요없어 상류층 및 여성 운전자들에게 인기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속도는 대부분 시속 30Km 내외였으며, 충전 장소도 부족했고, 충전 시간도 길었다. GM의 EV1, 전기차를 현대에 되살리다 지난 2006년 크리스 페인 감독은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라는 제목의 색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개했다. 이 영화에 따르면 전기차는 1996년 GM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정부와 업계의 음모에 의해 매장된다.
실제로 1996년 미국의 빅3 자동차 업체 GM(제너럴모터스)은 ‘EV1’이라는 혁신적인 전기차를 출시했다. 수십 년간 발전된 새로운 배터리 기술과 모터 기술의 집약체인 EV1의 성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충전시간은 4시간 정도로 줄었고, 1회 충전으로 208km를 달릴 수 있었다. 속도는 시속 150km까지 가능했다. 배기가스와 소음이 전혀 없고 빠른 속도감을 누릴 수 있다는 이용자들의 입소문이 퍼지자, 가격이 3만4000달러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수천대가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GM은 2000년 돌연 EV1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해고해버렸다. 이미 판매된 수천대의 전기차는 FBI까지 동원해 회수한 뒤 폐차시켜버렸다. 전기차에 배터리 등 문제가 많고 시장수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영화는 그 이유가 석유업체와 자동차업체, 그리고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기차의 성공으로 석유판매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 석유업체와 유류세의 세입 감소를 우려한 정부, 그리고 전기차로 인해 기존의 가솔린차량의 판매가 줄고, 수많은 부품업체와 수리업체, 주유소 등으로 구성된 자동차산업의 생태계가 붕괴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GM이 전기차 포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짧은 판매기간에도 불구하고 EV1은 전기차가 이미 기술적으로 충분히 완성되었으며, 가격만 저렴해지면 기존차량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테슬라, 전기차 시장을 열다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경쟁자로 교류와 무선통신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긴 크로아티아 출신의 천재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테슬라모터스는 자동차기업이라기보다는 IT기업에 가깝다. 회사도 디트로이트가 아닌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있다. 애초에 전기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에 가까운 구조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2003년 설립된 테슬라모터스는 짧은 역사속에서 이미 두 대의 전기차를 출시했고, 시장에서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테슬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다른 모든 전기차 기업들이 충전의 어려움과 느린 최대속도라는 문제 때문에 통근을 위한 보급형 차량으로 상품화를 고민했지만, 테슬라는 급가속이 가능하다는 전기차의 강점을 살려 고가의 슈퍼카로 상품화했다. 테슬라의 처녀작 ‘테슬라 로드스터’는 영국의 로터스 엘리제를 기반으로 만든 후륜구동 스포츠카로, 노트북 배터리 사이즈의 리튬이온 배터리 6800개를 장착해 최고 시속 320㎞를 낸다. 시속 100km를 돌파하는데 4초면 충분하다. 스포츠카답게 10만9000달러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번 충전에 약 400km를 달릴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라는 강점으로 미국내에서만 1200대 가량 판매되어 신생기업 테슬라를 전기차 분야의 강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테슬라 모델 S, 고급형 세단 시장에 안착하다 지난해 출시된 ‘테슬라 모델 S’는 테슬라모터스에게 현재의 명성을 안겨준 히트작이다. 최고 출력은 416ps/5000~6700rpm, 최대 토크 61.2kg·m/5,100rpm이며, 주행거리는 최대 500km에 달한다. 우수한 성능과 디자인, 배터리 대량탑재를 통한 주행거리 향상, 무료 충전소인 슈퍼차저 운영 등을 통해 ‘모델 S’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앞서의 테슬라 로드스터가 페라리 등 스포츠카를 주요 경쟁자로 삼았다면, ‘모델 S’의 경쟁자는 벤츠, BMW, 아우디 등의 프리미엄 대형 세단이다. 전기차답게 막강한 급가속능력으로 드래그 레이스에서 제원이 앞서는 BMW의 M5를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최고의 찬사는 미국의 소비자 전문 평가잡지 ‘컨슈머 리포트’로부터 100점 만점에 99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는 렉서스의 LS460만이 기록했던 점수로, 사실상 만점에 가깝다. 컨슈머 리포트는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 포르쉐에 필적한 핸들링’이라며 ‘모델 S’를 극찬했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도 ‘스포츠카처럼 재빠르며, 롤스로이스처럼 부드럽고, SUV만큼 짐을 실을 수 있고, 도요타 프리우스보다 효율적인 차’로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판매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13년 1분기 미국 시장의 프리미엄 대형 세단 판매량을 살펴보면 테슬라 모델 S의 판매량은 4750대로 벤츠 S-클래스 3077대, BMW 7시리즈 2338대, 아우디 A8 1462대를 훨씬 능가했다. 모델 S의 판매호조로 테슬라모터스는 창사 10년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테슬라모터스의 3단계 성장 로드맵은 1단계 고가격 소량생산(로드스터), 2단계 중가격 적정량생산(모델 S, 모델 X), 3단계 저가격 대량생산(모델 T)로 구성됐다. 로드맵에 따른 차기작, 모델 S를 베이스로 하는 4륜 구동 CUV ‘모델 X’는 내년도 출시 예정이다. 2017년에 출시될 보급형 ‘모델 T’는 3만달러대 가격에 주행거리 320km의 성능으로 전기차 시대의 대중화를 이룰 전망이다. 닛산·GM·BMW 등 경쟁사들의 대응 테슬라의 질주를 경쟁사들이 마냥 지켜보기만 할 리 없다. 보급형 전기차 ‘리프(Leaf)’를 출시한 닛산과 EV1으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볼트(Volt)’를 출시한 GM, 2014년 출시 예정인 보급형 모델 ‘i3’로 전기차 시장 진입을 준비중인 BMW가 대표적인 전기차 분야의 경쟁자들이다.
토요타와 폭스바겐, 현대기아자동차는 조금 다른 전략을 채택했다. 먼저, 토요타는 ‘프리우스’로 얻은 ‘하이브리드카’의 우위를 지속시켜나간다는 전략이다. 토요타는 지난해 9월 “순수전기차 시장은 불확실하다”며 하이브리드를 중심으로 기존 가솔린/디젤 차량과 수소연료전지차량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 하에 토요타는 지난해 12월 순수전기차 ‘eQ’의 시범 판매를 북미와 일본에서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신모델이 아닌 기존 성공 모델에 전기차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중심으로 차세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울산 5공장에 투싼ix35 수소연료전지차 생산라인을 완비하고 양산을 시작해, 연내 1000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전기차 전략은 기아차를 통해 진행중이다. 2012년 ‘레이EV’를 출시했으며, 내년도 미국시장에 ‘쏘울EV’를 출시할 예정이다. 닛산 ‘리프’·쉐보레 ‘볼트’·BMW ‘i3’ 닛산의 리프는 2010년 12월 출시된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다. 중형 5인승 5도어 해치백 스타일로 리튬 이온 배터리를 채택했으며, 1회 충전으로 160km를 주행할 수 있다. 지난 5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에 의해 ‘가장 안전한 차’로 선정되는 등 많은 평가기관과 언론매체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현재 테슬라 ‘모델 S’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전기차로 평가받고 있다.
‘볼트’는 2010년말 미국에서 출시된 GM의 전기차로,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지만 하이브리드가 아닌 순수전기차로 분류된다. 하이브리드 차량들과는 달리 전기 모터 위주로 구동되고, 배터리가 다 소모되었을 때만 추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을 가동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4시간에 완충되는 16kWh 배터리로 최대 80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161km다. 80km를 넘게 주행하여 배터리가 다 소진되면 가솔린 엔진을 가동하여 최대 530km를 추가로 운행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세련된 미래형 디자인에 전기차 특유의 가속력과 편안한 주행능력을 갖춰 미국 소비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BMW는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자사 최초의 전기차 ‘i3’를 공개했다. 11월 유럽 출시를 앞둔 i3는 일반 환경에서는 130~160km까지 주행 가능하지만, 레인지 익스텐더 엔진을 가동할 경우 최대 300km까지 늘릴 수 있다. - 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