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각인된 주름에는 한 사람의 삶과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자신이 걸어온 과거의 모습을 감추려해도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유명 인물들의 얼굴에는 그가 살던 당시의 흐름까지도 유추할 수 있어, 과거를 꿰뚫어볼 수 있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도 제공한다. 극사실적 초상화로 잘 알려진 화가 강형구(58)가 초상화라는 장르로 시대상을 표현한 신작 13점과 드로잉 30여 점을 작품을 '각인(刻印)' 이라는 제목으로 11월 8일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 갤러리에 걸었다. 2011년 싱가포르 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대규모 개인전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에는 과거와 현재, 서구와 동양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인물 작품들과 로댕의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 작품 3점도 함께 놓였다.
전시장에 걸린 대형 초상화들은 감상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붉은색으로 그려진 화가 강형구의 자화상은 색채와 너무나도 선명해서 화면 밖으로 나올 것처럼 강렬함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나 자신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나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전시 주제 '각인'처럼 스스로를 채찍하고, 잘 팔린다는 주위의 부추김에 나를 바로잡고자 경고하는 의미로 빨간 색의 물감으로 그려봤죠" 화가 강형구가 그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극사실화가로 고착되는 자신을 깨우려는 의미의 작품 설명이다. 그간 강형구의 작품 대다수가 얼굴이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구성에 있어 묘사는 10퍼센트 정도의 비중에 그친다고 말한다.
"사실 머릿속에 다 그려 놓고 난이도가 해결된 상태에서 실제로 작업을 하는 시간은 정답을 이미 알고 있는 수험생처럼 그냥 즐거운 노동의 시간인 셈이죠." 라며 "얼굴은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게 생겼다는 그 자체가 다른 물성적 소재와 엄청난 차이를 보일뿐 각각의 인물과 해석까지 감안하면 무궁무진한 소재인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일관성을 가지고 진행해 온 과정을 선보인다는 강형구, 캔버스에 낙서하듯 그린 드로잉과 알루미늄 패널에 그린 것들을 통해 자화상 작가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주려는 그의 생각도 펼쳐낸다. 다양한 유명 인물들의 얼굴에 한국인이 별로 없다는 지적에 대해 전시에 윤두서의 초상화를 선보인다. 그가 그린 구도와 동일한 작업이지만, 크기가 윤두서의 원작보다 더 크고 강렬하다. 한지에 면봉을 이용해 수염의 한 올 한 올을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윤두서의 초상작업을 계기로 강형구는 윤두서가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마릴린 먼로 등을 그리는 작업을 구상중이라는 귀띔도 해준다. 조선시대 최고의 얼굴 그림을 그렸던 윤두서와 맞짱 승부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예고하는 것이다. 또 얼굴 외에 손의 모습을 그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손이란 것인 얼굴의 각인된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는 아웅산 수지의 승리를 기원하는 브이 자를 보고 그린 손 그림도 걸렸다.
서울에서 오래간만의 개인전을 연 그가 미술시장에서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자신이 경매의 최대 수혜자라는 세간의 질시에 대한 속내다 "나는 일 년에 딱 두 차례만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을 합니다, 경매의 낙찰되는 금액은 별 관심이 없죠."라고 말한다. 경매를 위한 5일간의 프리뷰 전시가 그의 궁극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짧은 전시 기간이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장소에서 자신의 그림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낙찰되어 소장하는 사람은 1인 이지만, 내 그림을 보는 사람과 매스컴의 관심은 엄청납니다. 모터쇼에 신차를 발표하는 것이, 현장 판매보다는 미래의 구매자들에게 자사의 새로운 제품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와 삶의 기록을 한 점의 그림으로 집약한 최고의 초상으로 평가받는 윤두서의 자화상처럼, 화가 강형구는 12월 20일까지 진행되는 '각인'전시를 통해 초상화를 통해 시대상을 표현하는 작가로 각인되고 싶어 한다. ☎02-541-5701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