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3호 왕진오⁄ 2013.11.18 11:19:12
30년 가까이 환자를 만나고 수술을 집도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그림으로 치유의 길을 걷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의사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걷지 못하는 환자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의술이 아니라 치유다"라는 평소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조세현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고교 은사였던 서양화가 김호걸의 영향이 컸다. 색채에 앞서 빛을 표현하는 것을 강조하는 최고의 인상파 화가였던 스승의 화풍에서 형태를 바로 잡는 정형외과 수술 과정과 매우 유사해 관심과 흥미를 사로잡은 것이다. 타고난 의사이자 화가로 열정을 담은 작품을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선보인다. 작품전과 함께 '치유의 미술'이란 책으로 선보인다. '치유의 미술'에는 그림 치유의 풍경이 되다, 붓을 든 의사의 이야기, 나는 세계의 길거리 화가, 매일이 풍경이고, 그림입니다, 27년 정형외과 교수의 희망일기 등 5개의 스토리가 들어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그림을 통해 치유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이야기가 첫 번째, 그림 그리는 의사의 조금은 소소한 세상살이의 편린이 두 번째, 의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강의를 해온 자기고백이 마지막 이야기다.
“정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걸음걸이를 보기만 해도 그 원인이 척추 디스크인지, 고관절, 슬관절 어디의 문제인지, 또는 신경 마비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다리를 저는 사람을 만나면 또 오지랖이 발동한다. 내 명함을 주고, 한번 연락 달라고 한다.” 27년차 정형외과 전문의의 고백이다. 의과대학 학장까지 지내고 많은 나라에 자신의 새로운 의술을 교육하고 전수한 약력을 보면 체면 때문에 목뒤가 뻐근할 것 같은 대의학자의 대사치곤 친근하고 정겹다. 하지만 조세현의 ‘의사가 그리고 쓴 치유의 미술’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의 저자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적인 선의가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국제선 항공기의 스튜어디스는 이착륙시 각각 3분 정도 비상구 옆 승무원 자리에 안전벨트를 매고 승객들을 향해 앉아 있는데, 화가의 입장에서는 이때 이들이 좋은 스케치 모델이다.” 누가 들으면 붓 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화가의 말이거나 어느 곳에서나 감을 잃지 않고 혹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과 풍경을 관찰하는 꽤 성실한 화가의 고백이려니 할 것이다. 헌데 또 이것이 의사 조세현의 말이다. 27년간 환자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1973년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하니 올 해로 40년째 화폭을 챙기는 그에게 그림 또한 생활의 한 축을 고스란히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고백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타고난 열정가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한 직업인이며 그에 못지않게 차근차근 그림 실력을 쌓아온 솜씨 좋은 화가다. 길 가다 다리 저는 사람 보면 명함 건네 때문에 그의 수술실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의술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가 붓을 드는 곳은 도시의 카페요, 여행지의 광장이며 거리의 복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생활을 살펴보면 진료와 수술, 그림 그리기의 일상으로 빼곡하지만 피로한 기색이 없다. 심지어 해외로 떠난 세미나와 비행기에서조차 틈틈이 스케치와 크로키가 빠지지 않는다. 카페나 지하철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는 언제나 붓을 들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언제나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실력이 있다.
그림 그리기가 직업인으로서의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림에 온기와 인간적인 색체를 부여하고 또 거리에서의 스케치와 화실에서의 데생이 환자들과의 교감에 여유와 활력을 제공하는 이유다. 적어도 그에겐 그림과 수술이 서로에게 상생의 효과를 주고 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있고 또 풍경을 향해 있다. 일과는 빈틈없이 짜여 있고 긴장감이 일 수 밖에 없는 생업의 현장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며 또 눈은 언제나 타인과 자연으로 뻗어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생활을 간결한 글과 그 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풍경을 담아낸 책에는 인간을 향한 온기와 따뜻한 시선의 그림들이 담겼다. 의사이자 화가인 조세현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진주 국립 경상대 의대 정형외과학교실의 창설 작업을 시작으로 27년 동안 외길을 걸었다. 많은 환자를 수술 치료하면서 수술과 미술이 공통적 감각을 공유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틈틈이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이번에 세 번째 개인전을 출판 기념회와 함께 개최하며, 현재 서울 가락동 소재 서울 스카이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