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의 원산지는 이란 북쪽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 소아시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가 홍수가 끝난 뒤 정착했다는 아라랏 산 근처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성경구절과 일치하고 있다. 성경에는 노아부터 시작하여 모세와 이사야, 예수 그리고 제자들의 선교활동에 이르기까지 포도나무와 와인에 대하여 수백 번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확실한 역사적 근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구분하였고, 와인에 세금을 부과할 정도로 산업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초기에는 왕족사이에서 고급음료와 의약품으로 사용되다가 점점 일반인에게 퍼지게 되었다. 소아시아 문화가 그리스, 로마에 흡수되어 발달하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헬레니즘 시대에는 신화와 더불어 와인이 전성기를 맞게 된다. ‘바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라는 술의 신으로, 최초로 인류에게 와인 담는 법을 가르쳤다.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바탕으로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 등 예술의 발달과 공연, 집회, 축제 가 빈번했다. 당시는 문화적인 환경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함께 시와 음악 그리고 철학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 후 유럽을 지배한 로마인들은 포도품종의 분류, 재배방법, 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와인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무통을 사용하여 와인을 보관, 운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와인은 로마의 중요한 무역상품으로 유럽전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당시 식민지이던 프랑스, 스페인, 독일남부까지 포도재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쇠퇴해 가면서 점차 농업이 감소되었고, 와인산업도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다만 교회의식에 필요한 와인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긴 동면에서 수도승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안정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는 황무지가 많았고, 수도원은 세금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와인은 교회의식에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고, 판매수입원으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방법을 도입하여 근대 와인제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중세이후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시민계급이 형성되면서 와인의 수요가 증가하고, 거래가 활발해져 와인은 중요한 무역상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는 아무도 와인의 발효원리나 오염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품질이 불안정하여 장기간 보관이나 운반이 어려웠다.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어렴풋이 당분이 변하여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1860년에 이르러 유명한 파스퇴르가 “미생물에 의해서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을 주장하여, 와인제조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발견으로 순수효모의 배양, 살균, 그리고 숙성에 이르는 제조방법을 개선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발달된 기계공업을 도입하여, 비교적 싼값으로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어, 와인은 일반대중의 생활 깊숙이 침투하게 되었다. 오늘날 와인은 이러한 오랜 전통과 자연과학이 빚어낸 걸작으로,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김준철 한국와인협회장